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에 여성 화가가 자신의 누드화를 자화상으로 그렸다. 정말 센세이션을 일으킨 주인공은 1876년에 독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난 파울라 모더존-베커(Paula Modersohn-Becker)이다. 그녀는 표현주의에 속하는 화풍에 후기 인상주의 느낌도 묻어나는 화가이다. 아마 영국에서 어릴 때 공부하고 자아가 형성되었을 때는 프랑스에서 그림 공부를 한 영향일 수도 있겠다. 그녀는 20대 후반부터 누드화에 많이 천착(穿鑿) 한 것 같은데, 전통적인 여인상보다는 상반되는 방식으로 누드를 그렸다. 누드화는 전통적으로 예쁘고 누가 보아도 미적 감흥을 느끼도록 여성의 신체를 과도하게 미화하는 방식을 거부했다. 그녀는 투박하지만 튼튼한 신체의 여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스스로의 셀프 누드화나 모델의 누드화에 적용했다. 그의 붓 터치는 정말 투박하고 거칠어서 여성의 섬세한 표정이나 미적 감각을 표현하기에는 단점이 많은 기법이다. 그런데 그녀는 이런 기법을 그녀만의 특징으로 삼아 일가(一家)를 이룬 것이다.
그녀가 미술사에 있어서 최초로 자신의 누드 자화상을 그린 것은 정말 그녀만의 화풍에 대한 자신감과 자기만의 길을 고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서양인답지 않게 온몸의 색감이 온통 붉고 누렇게 채색되었고, 얼굴이나 손의 모양도 투박하지 이를 데가 없다. 알록달록한 꽃을 배경으로 머리에 꽃을 꽂고, 양손에 한 송이씩 들고 있는 포즈이다. 목에는 호박 목걸이를 착용하고, 분홍색 유륜(乳輪)과 빨강 유두가 처녀의 그것 같이 수줍게 미소를 짓는 것 같다. 그녀가 그린 셀프 누드는 에곤 실레(Egon Schiele)가 자신의 누드 자화상을 그린 것보다 빠르다.
그렇듯 그녀는 남편 오토 모더존(Otto Modersohn)의 그늘에 가려지지 않고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30대 초반에 임신중독증으로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그녀가 그린 임신한 셀프 자화상은 그녀가 그토록 갖기를 원했던 딸을 가진 몸을 세밀하게 그린 자화상이다. 꽃을 든 자화상보다는 좀 더 섬세한 붓 터치를 하여 그녀의 행복한 내면의 표정도 살아난다. 불룩한 배를 받쳐 안고 다소곳이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표정에서 에로스(Eros)의 미학을 찾기는 어렵다. 그녀는 최초의 셀프 누드 화가이자, 셀프 임심 누드 화가이며, 여성 화가 최초의 전용 미술관을 가진 화가이다. 독일의 부호 컬렉터인 루드비히 로젤리우스가 그녀를 위해 1927년에 브레멘에 미술관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