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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May 19. 2024

2. 입술의 Eros, 애로서(曖露書)

바나나와 예술세계

입술은 인류에게 원초적인 에로스를 제공한다. 입술을 왜 필요한가? 먹을 때, 말할 때 당연시 입술이 있어야 한다. 옛날 중국 사자성어에 순망치한(脣亡齒寒) 즉 입술이 망가지면 이가 시려지고, 미인을 표방할 때 단순호치(丹脣皓齒) 즉 붉은 입술과 흰 이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했다. 그런 만큼 여성의 섹시한 입술은 분명 넘볼 수 없는 에로스의 원천이다. 그런데 그 입술이 그냥 입술이 아니라 무언가를 음미하는 입술이라면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온다. 폴란드의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예술가 나탈리아 라흐-라코비츠(Natalia Lach-Lachowicz)의 예술을 오늘 소환해 보자. 공산주의 체제하의 폴란드에서 1937년에 태어난 그녀는 체제에 대한 비판과 자신의 예술세계를 만천하에 구현한 예술가였다. 남편 라코비츠(Lachowicz)와 결혼하고부터 이름을 나탈리라 LL이라고 했다. 그녀는 여성의 입술을 <소비자 예술(Consumer Art)>의 테마로 삼아 다양한 창조력을 보였다. 요염한 여인이 바나나, 소시지, 키셀(Kissel)을 먹으면서 섹시한 입술 표정을 짓는다. 더구나 입술 아래로 키셀의 물이 줄줄 흐르거나 뚝뚝 떨어지는 모양이다. 보기에 따라 아주 관능적이고 암시적이다.

결국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그녀의 1973년 작 <소비자 예술(Consumer Art)>은 바나나를 먹는 여인의 사진이다. 이 작품이 2019년 4월에 폴란드의 문화부에 의해 외설적이고 부적절한 것으로 인정이 되어 소장되어 있던 국립미술관으로부터 철거된 것이다. 목줄을 매고 두 남자를 걷게 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 그림과 같이 전시가 금지된 것이다. 보수적인 법과 정의당이 이끄는 폴란드 우파 정부의 부상에 따라 예술과 문화를 둘러싼 대규모 논쟁의 불씨가 된 것이다. 당시 에르지 미지올레크 국립미술관장은 “너무 외설적이어서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철거 이유를 설명했다.

검열에 대한 대응으로 수백 명의 폴란드 사람들이 국립미술관 밖에 서서 항의하며 바나나를 먹고 그 껍질을 모자로 만들어 쓰기도 했다. 현장에는 부드러운 바나나 네일아트를 판매하는 노점도 생겼다. 시위자들은 또한 놀라울 정도로 다재다능한 셀카 소품으로 금지 조치를 조롱하면서 과일과 함께 자신의 누드사진을 온라인에 게시하기도 했다. 매력적인 모델의 섹시한 입술 모습과 바나나의 남근 모양은 명백히 에로틱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작가는 이 예술 작품으로 1970년대 공산주의 폴란드의 보수주의에 도전했다. 제작자 자신은 이 시리즈를 통해 바나나나, 소시지(1975년 작)와 같은 식량이 부족하여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공산주의 체제의 모호함을 조롱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때로는 작품(REJESTRACJA INTYMNA) 중 일부를 남편과 섹스를 하는 모습들을 사진으로 구성하기도 했다.

아무튼 바나나는 생긴 모양답게 양(洋)의 동서(東西)와 시(時)의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에로스의 상징으로 예술 세계에 등장하고 있다. 그중 에로스적인 것이 아닌 해프닝적인 사건도 있었다. 우리 서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엄청난 날벼락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미술계에 도발적이고 풍자적인 작업으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설치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 1960~)이 페로탕 갤러리를 통해 전시한 작품은 벽면에 은색 테이프로 부착한 꼴랑 바나나 한 개였다. 작품 이름도 그에 걸맞게 웃기는 <코미디언(Comedian)>으로 붙여서 세 개의 에디션을 전시했다. 돈 많은 수집가 덕분인지 그중 두 점은 각 12만 달러(한화 약 1억 4천만 원)에 판매된 상태였고, 나머지 하나만 아직 미판매 상태였다. 그런데 미국의 행위 예술가로 알려진 데이비드 다투나(David Datuna)가 나타나 마지막 남은 이 바나나 작품을 벽에서 떼어 단숨에 먹어치웠다. 정말 황당하다. 아니 당연하다. 바나나이니까 먹어야 한다. 안 먹고 방치하면 썩어서 버려야 하는 것 아닐까? 바나나가 에로스의 화신은 맞다고 본다. 남자들끼리 여성을 상품화 알 때 그녀를 먹었다고 표현하니까. 그런데 실제로 먹는 것은 여성인데 왜 남성들이 먹었다고 표현하나? 먹혔다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닐까? 금삿갓의 헛소리이다. 아무튼 바나나와 에로틱 영상에 대한 찐한 욕구가 있는 독자들은 거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이 만든 4분짜리 영상인 <Mario Banana(1964)>을 유튜브에서 찾아보기 바란다.

Mario Banana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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