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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맘 May 05. 2021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며칠 전부터 직장 내 주차장 일부를 통제하면서 주차 공간이 부족해졌다.

출근이 늦은 직원들은 자연히 이중주차를 하는 일이 늘어났다.


어제는 퇴근 후 부모님 댁에 들러야 해서 퇴근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퇴근 전 미리 이중 주차한 분들께 연락을 드려 차를 이동 주차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대부분의 차가 이동 주차를 했는데, 한대의 차량은 주인이 나타나질 않았다.

관리부서에 확인해도 차량 소유주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차량에 남겨 놓은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지만 수차례의 전화에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기다리실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바쁘고 급해지는데, 이중 주차한 차량 소유주는 아무리 연락을 해도 나타나질 않는다.


옆에서  다른 직원들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봐도 소용이 없다.


30여분이 넘어갔고 다시 전화를 하자 문자가 왔다.

"문자를 남겨주세요."

주차장에 이중 주차를 하고 연락을 두절한 채 30분 만에 온 연락이 문자를 남겨달라는 것이었다.

"뒤편 주차장에 이중 주차된 차량을 이동 주차해 주세요."

이렇게 문자를 남기고 잠시 후 짧은 답이 왔다.

"네"


옆에서 함께 고생한 직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보니 차량은 옮겨졌는데, 차량 소유주는 누군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너무 지체돼서 얼른 부모님 댁으로 향했지만, 내 마음속은 화가 나서 부글부글 끓었다.

'도대체 이중주차를 하고 30분 만에 전화를 받더니 사과 한마디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평소 웬만하면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인데 이 날은 너무 화가 나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 댁에 들러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얼굴을 뵙고 집에 왔다.

저녁을 먹고 평소처럼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폈지만 퇴근길에 그 일 때문인지 마음이 진정이 되지 않아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글이란 게 내 마음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인데, 퇴근 무렵부터 내 마음은 이미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던 터라 글이 제대로 나올 리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책이라도 읽어봐야겠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보다가 류시화 시인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라는 산문집을 꺼내 찬찬히 책장을 넘겼다.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저자가 인도 여행길에 수행자에게서 들었다는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문구에 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인의 눈으로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꽃과 나무와 오래된 건물까지도 새롭게 보인다는 글 귀에  어제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어제 퇴근길에 이중 주차된 차량 때문에 부모님 댁에 늦긴 했지만 무사히 일정을 마쳤고 더군다나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은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늦은 시간까지 이중 주차 차량의 소유주를 같이 찾아주었다.


그런데 나는 함께 해준 직원들에 대한 감사와 나를 반갑게 맞아 준 부모님을 뵙고 온 사실보다 이중 주차 차량 때문에 화가 났다는 사실에 집중하며 저녁 내내 나 자신을 화의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우울한 순간들도 있고 어두운 구석도 있다.
그러나 우리 안에는 느끼고 감동하는 능력이 존재한다.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중에서

어제 하루를 되돌아 시인의 눈으로 보려 생각하니 감사할 일이 참 많았다.


나에게 감사하고 반갑고 즐거웠던 일을 보려 하지 않았던 나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나의 하루를 다시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이중 주차 차량 때문에 잠깐 기분이 상했을 수는 있지만, 그 보다 반갑고 감사한 일들이 많았다.


낮에는 20년 전에 함께 근무했던 선배님께서 잊지 않고 반가운 안부를 전해 주셨고, 엄마표 영어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감사의 글도 받았다. 퇴근 후에는 부모님을 뵐 수 있었고 식구들과 즐겁게 식사도 했다.


잠깐만 시선을 돌려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면 감사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어째서 세상을 어두운 구름으로 싸잡아 보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었을까?


우리는 늘 새로운 삶을 꿈꾸고 원하지만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이다.


오늘 하루 나에게 감사한 일은 무엇이 있었을까?

오늘 나는 얼마나 많이 나누었을까?

오늘 나는 얼마나 많은 감사한 일을 했을까?


'인생의 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얼마나 많이 느끼고 감동하며 살았는가'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오늘도 많이 감사하고, 감동하며 사는 하루를 만들어 가고 싶다.


풀벌레 하나, 꽃 한 송이, 저녁노을, 사소한 기쁨과 성취에도 놀라워하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이다. 감동을 느낄 때 우리는 정화되고, 행복해지고, 신성해진다. 그리고 감동받아야 감동을 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불을 전하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이 불타야 한다. 가장 가난한 사람은 내면의 불이 꺼진 사람이다.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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