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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림 Oct 19. 2024

한강을 질투하냐고?(1년 만에 친구와 통화한 썰)

질투는 인간적이다

휴대폰 벨이 울려서 보았더니 은영(가명)이라는 이름이 떠있었다.

방송작가 일을 하는 은영은 몇 안 남은 비혼 친구였고, 

서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말이 ‘나 결혼해’라는 말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친구였다. (나 두고 너까지 가버린다고? 대충 이런 느낌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데 근 1년 만에 전화란 걸 해서는 대뜸 하는 말이 “나 결혼해”였다.


친구는 재차 말했다. "나 결혼한다고" 

나는 곧이듣지 않고 말했다. "놀고 있네, 뭔 결혼을 해"

친구가 아무 대꾸 없길래 “왜 말이 없어?”라고 했더니 

“너 진짜일까 봐 3초 짜증 났지? 내가 대답을 안 하니까 (결혼) 진짜일까 봐 짜증 났지?”

라고 하며 깔깔대는 친구였다.

“그래, 안 믿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진짜일까 봐) 두려웠다”라고 하며 나도 같이 웃었다.

어쩌다 우리한테 “나 결혼해”라는 말이 농담이 되었으며

그게 이렇게 재밌을 일인가 싶긴 했다.

어쨌든 우리는 말하다 깔깔거리기를 반복하며 통화를 이어갔다.


친구: 어쩜 1년이 다 되도록 연락 한 번을 안 하냐? 나도 나지만 너도 너다. 

나: 올해는 일이 좀 잘 안 돼가지고...

친구: 그치, 잘 돼야 전화를 하지. 나 약 올려야 하니까. 

나: 그래, 너를 약 올릴만한 좋은 소식이 없어가지고 연락 못했다!

좋은 소식이란 말이 ‘노벨상'을 떠올리게 했는지 친구가 갑자기 한강 작가 얘길 꺼냈다. 

친구: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탔잖아. 

나: 그래

내 대답에 그럴만한 어떤 단서가 있었던 것 같진 않은데, 친구가 정곡을 찌르듯 말했다.

친구: 너 질투 났지? 

나는 용한 점쟁이를 앞에 둔 사람처럼 말했다. 

나: 너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나 한강 질투나. 

우린 또 깔깔깔 웃었다. 그리고 ‘한강’과 ‘질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친구: 야, 내 보기엔 무슨 비교 대상이 되나 싶은데 내 주변 문인들은 (한강을) 다 질투해, 

심지어 문인이 아닌 사람도 질투해. 글은 쓰기 싫은데 그 영광은 너무 질투 나는 거지. 

나: 아주 연로한 작가가 받았으면 모를까, 젊은 작가가 받았으니까.

친구: (웃음) 맞아, 한강이랑 우리랑 나이 차이 얼마 안 나. 

아무튼 내 주변에 한강과 관계된 사람이 많아.. 한강이 가르친 제자들도 있고, 

인연 있는 문인들도 있고.. 축하는 하지만 내가 그들의 욕망을 봤어.

꿈은 크게 가지랬다고 너도 알다시피 나도 인세 받아먹고 사는 작가가 꿈이잖아. 

그러니까 (한강의 수상이) 너무 행복한 거야, 뽕 맞은 애처럼 너무 신났어. 너무 신나서 

주변에 막 알리고는 그러는데 우울하지, 난 뭐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안 나겠냐? 

급이 맞아야 질투라는 것도 한다지만 그런 거 다 떠나서 모든 인간의 저변에는 질투가 있잖아, 

너도 인간이니까 분명히 배 아파했을 것 같아서 내가 물어본 거고. 

친구 말을 듣고 보니 감히 드러내지만 못했을 뿐

부러움인지 질투심인지 모를 마음이 없진 않았던 듯하여

친구의 통찰(?)을 인정해 줬다.

나: 아무도 나한테 너처럼 묻지 않아서 나 혼자 무덤까지 가져갈 질투심이다 했건만, 넌 역시 예리해.


친구는 내 근황 얘기하다가 한강 얘기로 빠졌다는 걸 잊지는 않았는지

다시 내 얘기로 돌아왔다.

친구: 그래서.. 올해 무슨 일이 잘 안 됐는데? 

나: 나 1년 내내 백수로 있었잖아.

친구는 그게 뭐 새삼스럽냐는 듯 말했다. 

친구: 너 그동안 계속 백수이지 않았어? 간헐적으로 니가 먹고살 만큼만 일 하는 거 아니었어? 

나: 야, 먹고 살만큼만 벌었던 건 맞는데, 본격적으로 백수 된 건 오랜만이거든!

오랜만에 백수든 주구장창 백수든 친구보다 나은 처지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일은 없고 꿈만 있는 나는 일도 있고 꿈도 있고 돈도 있을 친구가 부럽기만 했다.

나: 그나저나 넌 돈 많이 벌어놨겠다. 넌 쉼이란 거 없이 계속 일했잖아. 

친구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친구: 나는 돈을 벌어도 돈을 써 없애는 게 목적인 사람이라...

나는 친구가 가진 명품백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나: 너 좀 많이 쓰긴 하더라. 

친구: 많이 쓰지, 돈 모일 새라 쓰고, 또 돈 모일라 치면 화들짝 놀래가지고 쓰고... 

그러니까 넌 내가 너보다 엄청 부자 될 걱정은 안 해도 돼. 행여라도 그런 걱정하지 마. 

나: 다행이다. 나 진짜 니가 돈 많이 벌까, 되게 불안했거든. 

친구: 그래, 넌 나 결혼할까 봐 불안하고.. 나 돈 진짜 많이 벌어가지고 일 안 하면서 

그 돈 쓰고 살까 봐 걱정하잖아. 

나: 맞아, 니가 좀 안 좋은 소식을 전해 줘야 내가 두 다리 쭉 뻗고 자지.

친구가 욕하며 웃었고 나도 웃었다. 나는 농담이라 웃었는데, 친구는 진담으로 알고 웃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친구가 잘 되면 배 아프기로서니 아무렴 안 좋은 소식을 바랄까. 배가 좀 아픈 게 낫지...


전화를 끊고 나는 다시 한강한테 질투 났냐는 친구의 질문으로 돌아갔다.

이 나라 신춘문예 등단도 요원한 나(또는 우리)에게 너무 민망한 질문이 아니었나 싶으면서도 

최근 들은 질문 중에 가장 인간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우린 서로에게 훌륭한 친구는 못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친구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도...


인간적이라는 말... 좀 못난 구석이 있긴 하지만 마음에 드는 말이다.



#친구

#질투

#인간적



연재일을 월, 목에서 토요일로 변경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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