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딸의 성장과 그로 인해 느낀 고마움 그리고 삶의 감사함
결혼하고 첫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세상은 더 이상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니었다.
잠도 부족했고, 수입은 빠듯했고,
방송 현장은 늘 시간에 쫓겼다.
나는 매일 세상과 싸우듯이 살았고,
딸아이는 조용히, 그 곁에서 스스로 자랐다.
어느 날
마당 한쪽에 심어둔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비도 덜 맞고, 햇볕도 반쯤만 들던 그 자리에서
그 녀석은 어느새 보랏빛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내 딸이 떠올랐다.
내가 많이 돌보지 못했던 시간,
그럼에도 스스로 제 몫의 빛을 받아
세상 앞에 당당히 선 모습.
나는 그 가지 앞에서 오래도록 서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딸아,
너는 혼자서도
잘 익는 아이였구나.”가지처럼
첫 딸이 태어났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너무 작고 여려서 품에 안을 때마다 깨질까 걱정이 앞섰지요. ‘
이 아이가 언제 자라 어른이 될까’
그 작은 생명을 바라보며 저는 매일같이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참 묘합니다. 하루하루는 더디게 가는 듯했지만,
어느새 아이는 자라서 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직장을 찾아 멀리 떠나고, 이제는 어엿한 어른이 되어 있습니다.
이제 자식들은 모두 30대에 접어들었고,
우리 부부도 어느새 60대를 넘긴 노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난 40년이라는 시간이 어제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그 흐름이 너무도 조용했기 때문이겠지요.
귀촌하고 나서 텃밭 한 켠에 심은 가지를 보며 저는 문득 그때의 아이 얼굴을 떠올립니다.
손가락 마디만 하던 가지가 어느 날 가보면 손에 가득 쥘 만큼 커져 있습니다.
분명 매일같이 들여다봤는데도 그 변화는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립니다.
‘이토록 조용한 성장이 있었구나.’
불교에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존재는 변한다는 진리를 이야기합니다.
생명도, 감정도, 시간도, 모두 멈추지 않고 흘러갑니다.
우리는 그 흐름을 멈출 수도 없고, 억지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무엇이 우리의 시간을 통제하고,
무엇이 우리를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게 하는가.
그 물음은 결국,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도(道)는 말이 아니며, 법(法)은 형상이 아닙니다.
노자는 말했지요. “무위자연(無爲自然)”, 가장 바른 삶은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이라.
있는 그대로 두었을 때, 가지는 혼자 자라고,
아이들도 각자의 시간을 따라 어른이 됩니다.
우리는 이제 압니다.
앞으로의 우리 삶 역시 혼자 자라는 가지처럼,
억지로 되지 않고, 자연과 함께 익어갈 것이란 걸.
그것은 마치 장자의 ‘물아일체(物我一體)’처럼,
나와 사물의 경계가 흐려지고,
한낮의 나무 그림자도 내 마음이 되는 삶입니다.
작은 가지 하나에도 인생이 담겨 있고,
조용히 커가는 아이의 뒷모습에도 우주의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말없이, 그러나 정확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갑니다.
이제 저는 압니다.
누구든 자기만의 시간표로 익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익어감은, 때로는 우리가 손을 놓을 때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농촌에 살며 배운 이 조용한 깨달음이,
오늘도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싼다.
이제는 내가 딸에게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바쁘게 커버린 아이가
자신만의 생각과 말투로
세상을 향해 말을 걸어온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아버지일지 모르지만
그 아이가 이렇게 자라준 것이
그저 기적 같고 고맙다.
어쩌면 가지는,
햇빛을 조금 덜 받아도
비바람이 와도
뿌리를 내린 자리에서
묵묵히 익을 줄 아는 식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아이도,
나의 삶도,
그렇게 조용히 잘 익어가고 있는 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