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mi Oct 07. 2018

죽음 후에 비로소 시작되는 이야기

박민정 작가의 『미스 플라이트』

 죽음은 인간이 언젠가 이르게 되는 삶의 종착점입니다. 어떤 이는 생의 종말이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저는 죽음의 비극성을 강조한다는 느낌이 들어 이 표현을 좋아하지 않아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없다는 점에서 죽음은 공평하고 평등한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불의의 사고나 참사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죽음은 그리 평등한 게 아니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사회적인 재앙이나 심지어 천재지변으로 인한 재해에서도 위험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은 약자이니까요. 삶의 막다른 지점까지 쫓겨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으로써 한 사람의 삶은 완결되고 종료됩니다. 더는 살아 숨쉬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더는 만들어질 수 없지요. 그러나 여기, 한 여자가 죽고 다시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생겨나는 소설이 있습니다. 박민정 작가의 소설 『미스 플라이트』의 유나는 어떤 예고나 징후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가족과 지인은 그녀가 남긴 유서 같은 글 몇 편 만을 갖게 되는데, 그들은 저마다 유나의 글을 해석하고 유나를 재구성해냅니다. 그리고 그녀의 자살이 그녀가 스튜어디스로 근무했던 B항공사와 관계가 있을 거라는 의심을 품게 되지요. 그들은 감춰진 사실들을 알아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출처: 예스24 도서 상세페이지)






 이 소설에는 우리 사회의 민감한 이슈들이 얽혀 있습니다. 항공사 승무원과 조종사들의 근로 조건이나 대기업의 노조 감시와 억압의 문제가 유나의 직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반면, 장교의 사병 문제, 군대 내 비리,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군대 내 문화는 공군 장교였던 유나의 아버지를 둘러싸고 있어요. 유나는 일찍이 아버지를 통해 그 부조리함에 대한 감수성을 지니게 되었고, 아버지의 운전병이었던 영훈 아저씨와 그의 아내 혜진은 그러한 문제의식에 구심점이 되어주죠. 유나는 아버지가 연루된 방산업체 비리 문제가 터지면서 완전히 그와 갈라서게 됩니다. 이후 10년간 그들은 연락을 완전히 끊은 채 명목뿐인 부모 자식으로 존재해요.


 그러나 유나의 죽음으로, 그리고 그에게 남겨진 유나의 편지 한통을 계기로, 아버지는 서서히 변합니다. 유나의 어머니와 남자친구 준한, 절친한 친구였던 철용까지 그녀의 죽음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저는 아버지의 변화가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아버지 정근은 방산 비리를 언론에 폭로한 내부 고발자 윤대령이 조직 내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을 때에도 그건 그의 온전한 선택이라고 치부했습니다. 그를 죽게 만들었다는 가해의 죄책감을 하나도 가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나의 삶과 유나를 둘러싼 현실을 추적해나가면서 그는 유나의 자살이 오롯이 그녀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녀를 자살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조건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죠. 


 어떤 자살들은 또다른 의미에서의 타살입니다. 죽음의 이면을 보기 위해서는 유나의 아버지가 그래야했던 것처럼, 그 사람의 삶 안쪽을 깊숙이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이전에는 결코 믿을 수 없는 사실들이 놓여있을 지라도 인정해야만 하죠. 유나는 결국 삶을 포기함으로써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멈추었지만, 남은 자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은 우리의 몫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그녀의 죽음은 사실 그대로의 진실에 더 이상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버렸습니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증언될 수 있었던 생생한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위에 우리가 어떤 해석을 드리우고 어떻게 행동할까란 문제가 아닐까요.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는 작업은 과거나 아닌 미래를 지향하는 것일 때 비로소 현재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는거니까요. 



박민정,『미스 플라이트』, 민음사, 2018


*박민정 작가의 이전 작품인 소실집 『아내들의 학교』가 궁금하시다면 이전 글을 읽어보세요 :)


이전 02화 김숨 『한 명』; 단 한 명만이 남게 되었을 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