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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Mar 31. 2017

3월-아직 완성되지 못한 애도 (2)

한강의 <흰>을 읽고

눈 쌓인 2월에 <흰> 책을 읽었습니다. 전작을 모두 읽었을 만큼 작가 한강을 좋아하지만,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색깔 때문이었습니다. 살짝 구겨진 듯한 흰색의 표지 때문에 나는 책 앞에 멈춰 섰습니다. 곧 내가 만나게 될 백목련이 떠올랐고, 분명 무언가와 결별하는 이야기일 거란 예감이 들었습니다. 들여다보니 <흰> 이란 제목 밑에 조그맣게 영문 부제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The Elegy of Whiteness’. 직역하면 ‘흰 것에 대한 애도’ 였습니다.  


작가는 ‘흰’ 사물들-강보, 달떡, 성에, 입김, 달 등-을 하나 하나 건져 올립니다. 그 흰 것들을 통해 그녀가 만나본 적 없는, 일찍이 죽어버린 자신의 형제를 불러냅니다. 그리고 그가 남긴, 또는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자신의 삶 속 상흔을 어루만지죠. 그것은 생의 세계를 찰나처럼 스쳐갔던 그를 기억하려는 의식이며 동시에 남겨진 사람이 그의 부재를 극복하고 다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노력, 애도였습니다. 


흰색이 순결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아무것도 더해지지 않은 색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끔 흰 것은 색보다 빛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투명함과 치환할 수 있는 색깔은 흰색이 유일할 겁니다. 눈이 부시도록 시린 흰색에는 모두 비워낸 공허가 보이고, 정적인 고요와 평화도 있습니다. 더는 덜어낼 것 없는 흰색의 정갈함에서는 단단한 결의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흰> 안의 짧은 토막의 글들과 그 글에 서린 마음은 고요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책을 덮었을 때, 겨울 마지막의 눈은 서서히 녹고 있었습니다. 눈과 함께 겨울의 엄숙한 풍경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찬란한 색들의 계절, 풍성한 빛의 나날이 시작될 것입니다. 가까스로 차분해진 마음이, 새롭게 시작되는 화려한 계절로 흐트러지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되었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완성되지 못한 애도가 남아있으니까요. 


작가 한강 역시 제대로 추모되지 못한 이들을 대해야 하는 방식을 이 책을 통해 에둘러 말하고 있는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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