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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i Aug 05. 2020

4일: 보지 못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시시각각 변하는 장마의 하늘을 보면서

 이번 장맛비는 예측하기 참 어려워요. 곧 비를 뿌릴듯 시커먼 얼굴로 불안에 떨게 하다가 햇빛이 비쳐 안심하는 찰나에 와장창 쏟아붓는 비. 하루 종일 하늘과 눈치싸움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 정도라니까요. 기상청도 예보에 애를 먹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거겠죠. 기상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면서 한국의 장마가 ‘국지성 폭우’의 양상을 띈다고 분석합니다. 이전의 장마전선이 한반도 전체에 걸친 폭넓은 비구름 띠였다면 이제는 덜 명확한 형태지만 수증기량이 많다고 해요. 그래서 지형의 영향을 많이 받아 특정 지역에 순간적으로 강도높게 내리게 되는 거죠. 이런 형태는 폭우 피해를 입은 곳에 계속해서 호우가 집중되어 피해를 가중시키죠. 



  ‘국지성 폭우’는 좁은 지역에 강한 비가 쏟아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게릴라성 집중호우’는 비가 순식간에 이리저리 이동하여 예측하기 어려운 양상을 의미할 때 쓰여요. 흔히 최근의 장마를 열대 지방의 소나기인 ‘스콜’같다고 말하고들 하죠? 현상은 동일하지만 엄밀하게는 다른 형태입니다. 열대 스콜은 일반적으로 돌풍 같은 강한 바람이 지속되는 현상을 의미하고, 이때 찬 공기와 지면의 뜨거운 공기가 만나 강수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한국의 비는 형성된 전선의 이동에 따라 국지적이고 초단기적인 폭우가 쏟아지는 형태예요. 그래서 최근에는 이를 구분해 ‘한국형 스콜’라고 부른다고도 합니다. 



 어쨌든 예측이 어렵고 순식간에 왔다 사라지는 폭우로 모두가 얼떨떨한 기분을 느낄 거예요. 매순간 확연히 달라지는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더라구요. 이런 날에 떠오르는 일화가 있어요. 회사에 갓 입사한 신입 때의 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어느 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지고 있었어요. 그때 다녔던 회사는 버스와 지하철, 다시 버스로 갈아타 내려서도 한참 걸어야 하는 멀고도 불편한 위치였어요. 여유있게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그날 저는 우비에 우산, 무릎까지 오는 장화로 완전 무장했지만 그럼에도 쫄딱 젖었어요. 그런데 회사에 도착할 쯤 되니까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날이 쨍-하고 개더라고요. 얼마나 억울하던지요. 집이 멀지만 않았어도 이런 고생은 안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사무실에서는 종일 젖은 옷을 말려야 했고 어느 덧 퇴근시간이었습니다. 한 선배가 제 옷차림을 보고 놀라며 놀려댔어요. ‘오늘같이 화창한 날에 무슨 패션이야? 장마기간이라고 유난떠는 건가?’  그 말엔 은근한 비아냥도 섞인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 선배는 회사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살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도 새벽에 쏟아진 비에 대해선 알지 못했죠. 근무시간에 늦지 않으려 물난리 속에서 힘겹게 출근한 고생이 놀림감이 되자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그때 절실하게 느꼈어요. 우리 모두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세상에 한계된 존재라는 사실을요. 그러나 세계는 이전에도, 앞으로도 절대 경험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앎조차 불가능한 면이 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무지와 미지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무언가를 판단하거나 평가해서는 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타인의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듯이 내가 경험한 세상만이 전부인 것도 아니잖아요. 



 대단할 것 없는 일상에서도 체험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더 거대하고 충격적인 사건은 당사자와 제삼자의 차이가 얼마나 클까요. 그 깨달음 이후로 저는 어떤 사람을, 어떤 사건을 쉽게 단정짓고 판단하는 일을 경계해 왔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면들이 많다고 전제하게 되면 원래 나의 시선과는 다른 각도로 더 신중하게 바라보게 돼요. 세바시 강연에서 이슬아 작가는 이를 '마음을 부지런히 쓰는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누군가가 힘들고 괴로운 일을 털어놓을 때 ‘나도 그게 뭔지 알아’,  ‘네 마음 이해해’ 라는 위로의 말은 하지 않아요. 그 손쉽고 간편한 말이 때론 슬픔에 빠지고 힘겨워하는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 그건 예측할 수 없는 장마의 하늘만큼이나 헤아리기 어려운 타인의 깊은 마음을 존중하는 길일거예요.   







참고:

김종형 기자, <부슬비’였던 한국 봄비, 이젠 ‘스콜’처럼… 아열대화?>, 국민일보 (2018.5.17)

김성한 기자,<장맛비, 왜 국지성 폭우로 바뀌었나?>, KBS NEWS (201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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