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상'과 '민낯'의 사이에서
오늘 오래된 노트를 정리하면서 쓰여진 기록들을 다시 읽어보았어요. 그중에 <원격 사랑>이라는 단편소설에서 따온 구절도 있었습니다. 볼리비아 작가인 에드문도 파스 솔단(Edmundo Paz-Soldan)의 단편은 문학동네에서 2008년에 출간된 라틴아메리카 단편선 <<침실로 올라오세요, 창문을 통해>>에 수록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함께 실린 작품들 중에서 단연코 가장 짧은데, 저자가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의 연인에게 부치는 편지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마지막에서는 '결코 이 편지를 네게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하며, '차라리 신문의 문학 지면에다가 허구를 빙자해 출판'하는 편이 낫다고 자조하죠. 그 이유는 그가 어느 파티에서 만난 매력적인 여성과의 일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이야, 비비아나, 갑자기 어느 순간 내가 기분이 들떠서 춤을 추고 있는거야. 그 파티에서 너무 즐기다보니 그곳과 미래, 즉 원격 관계의 사람이 거주하는 영토와 시간대의 다양성을 망각하고 이곳과 지금에 집중해버리고 만거야. 이윽고 죄책감이 들었어. 너 없이 잘 지낼 때마다, 세상사에 몸을 맡기고 너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늘 느끼는 죄책감이지.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사랑의 신화들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그 진실은 고뇌와 씁쓸함을 불러일으키는 법이야. 신화를 곧이곧대로 믿는 상황에서 사랑을 발견하게 되면 신화가 옳다고 생각하지. 사랑하는 사람 없이는 살 수 없고, 그 사람이 곁에 없으면 (베개가 감수해야 할 일이지만) 내내 잠도 이루지 못하고. 또 가슴이 찢어지는 적막한 절망감을 맛보게 되지(이따금 그리 적막하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데, 사랑하는 이 없이도 살 수 있고, 그런 무자비한 삶이 계속되어도 살아야만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나 마나 하거나 아니면 없으면 안 되는데 없어도 되는 그러한 세계를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고뇌와 씁쓸함을 느끼게 되는 거야. 그리고 그토록 위대했던 우리의 사랑은 그저 흔한 일개 사랑이 되어버리고 말아, 비비아나. 우리야 운명이 우리 두 사람을 점지했다고 믿지.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시작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사랑이고, 무수한 타인들의 사랑처럼 유약함과 망각과 배신으로 점철된 사랑이고, 어쨌든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사랑이면서 또한 유일하게 우리를 유약함과 망각과 배신으로 점철된 인생에서 구원해줄 그런 사랑일지도 모르지.
주인공 남자는 말합니다. 대부분의 이들이 스스로 현대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진정한 사랑이라면 정조와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말입니다. '억수로 정조를 높이 평가하고 억수로 상대방을 신뢰하는'사랑을 만들어내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이미지를 창조해냈다고요. 소설 속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화'같은 사랑인거죠. 신화같은 사랑을 지켜내기에 그들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시간대에서 기껏해야 한주에 몇 번 통화를 하고 그리 별다를게 없는 일상 이야기를 되풀이하며 보고싶다는 말로 마무리 짓죠. (소설이 쓰여진 때만 해도 화상통화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남자는 말해요. 이러한 원격 관계는 이상적이고 완전한 사랑을 하는데는 불가능하다고 말입니다. 원격 관계는 '결국은 성격 테스트이고, 도덕성 테스트'인데, 대부분이 끊임없이 찾아드는 유혹을 견디지 못한다고요.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그의 자기변명만은 아닙니다. 그는 그의 연인인 비비아나 역시 자신과 비슷할 것이라고 짐작하며 '계속 관계를 유지하려면, 기를 쓰고 각자의 비밀을 지켜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곁에 있고, 사소한 배신들이 발생하지만 여전히 지속되는 사랑. 거기에는 어떤 비밀은 감춰져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요.
작가가 편지와 문학, 자전적인 것과 소설적인 것들을 대비시키면서 이 작품은 단순히 이상화된 사랑의 민낯을 폭로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문학의 허구'에 대한 의미심장한 시사를 던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평적인 분석까지 하지 않더라도 코로나로 언택트 세상이 되어버린 지금, 사랑과 관계에 대한 생각할 거리들을 안겨주는 듯 해요. 요즘은 기술이 워낙 발달해 인프라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고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화상 통화가 가능하죠. 일상을 더욱 밀착하게 공유할 수도 있고요. 원거리의 사람과 이어져있다는 감각을 주는 경로는 놀랍만큼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원격' 관계의 한계는기술의 발달 만으로 해소되거나 완화될 수 있는 문제였을까요? 매체나 기술로 매개된 방식의 관계는 또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일까요? 저자는 사랑이 '유약함과 망각과 배신으로 점철'되었지만 동시에 '유약함과 망각과 배신으로부터' 구원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지적해요. 모든 것들이 내재하기 마련인 모순적인 속성을 어떤 균형점에서 잡고 유지하느냐가 관건일 텐데, 현실에서는 너무나 어려운 과제입니다. 심각해진 코로나 상황에서 이번주 잡혀있던 약속이 모두 취소된 오늘, 더 심난한 문제처럼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