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여름의 사랑이 담긴 <8월의 크리스마스>

결실을 맺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한 사랑이 있다

by Limi



며칠전 라방에서 여름의 계절감을 담은 로맨스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죠? 그때 한 분이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를 말씀해주셨어요. 그때 무릎을 탁 쳤죠. 저도 여러번 꺼내어 본 아름다운 영화. 그런데 생각해보니 한번도 여름에 봤던 적은 없더라구요. <8월의 크리스마스>는 가을이 저물어갈 때 즈음, 낙엽이 지며 거리의 풍경이 황량해지는 무렵. 서늘한 밤바람이 하루가 다르게 날카로워져 코트깃을 뒷목 끝까지 덮고 여며야할 때. 그럴때 떠오르는 영화였거든요. 그러니까 제겐 '여름의 사랑'으로 기억되기보다 '늦가을의 죽음'으로 기억되는 영화인 셈이예요. 네. 저는 여태까지 <8월의 크리스마스>를 로맨스를 담은 영화라기보다 죽음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러나 이번에는 죽음보다 사랑에, 겨울보다 여름에 더 집중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정원(한석규 역)과 다림(심은하 역)의 만남은 한여름에 이루어집니다. 정원의 사진관으로 불법주정차단속요원인 다림이 급한 사진을 맡기면서요. 장례식장에 다녀온 정원은 마음도 몸도 헝클어진 상태에서 사진인화를 보채는 다림에게 날카롭게 굽니다. 이내 사과를 하며 관계가 악화되진 않지만요. 다림은 다른 사진을 맡기게 된 어느 날 사진관 쇼파에 지친듯 털썩 앉으며 불평을 합니다. "더운거 이제 아주 지겨워" 정원은 다림의 퉁명스러움과 투정도 너그러이 받아들이며 "힘들죠?"하며 다가갑니다. 그리곤 쇼파 옆에 놓인 선풍기의 전원을 켜 다림에게 바람의 방향을 맞춰주죠. 다림은 매일 뙤약볕을 맞으며 도로에서 일을 하기때문에 무더위가 더욱 괴로울 텐데, 그때마다 정원은 선풍기 바람으로, 자신의 작은 스쿠터로,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다림에게 작은 행복을 선사합니다. 비로소 저는 여름의 불쾌를 천진난만한 미소로 뒤덮는 사랑의 모습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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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빛을 담은, 작은 사랑들의 얼굴들


(한편으론 경쾌하게 스쿠터를 타고 가거나 거리에서 아이스크림바를 먹는 정원과 다림의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도 했더랬죠. (이 영화는 1998년 1월에 개봉했답니다) 1997년 여름에는 한여름에 스쿠터를 타면 그나마 시원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구나.. 최고 습도와 불쾌지수를 기록한 올 여름에는 오토바이를 타도 웃을 수 없었는데.. 1997년 여름에는 밖에서도 아이스크림을 여유있게 먹을 수 있었구나.. 지금은 개봉하는 즉시 녹기 시작하는데.. 기후가 변하면서 계절의 경험이 달라지는 것은 참 서글픈 일입니다)



여름의 무더위와 폭우 속에서 이어질듯 어긋나고 엇갈리면서도 다시 좋아지는 그들은 가을에 접어들며 관계가 깊어집니다. 풍경의 색감이 풍성해지고 짙어진 것처럼 그들은 차곡차곡 추억을 쌓고, 서로를 향한 감정도 무르익어가죠. 그러나 정원의 상태가 갑작스럽게 악화되면서 정원은 병원에 입원해 사경을 헤매게 되고, 그의 시한부 운명을 전혀 모르는 다림은 그의 돌연한 행방불명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녀는 토라졌다가 이해해보려 하고, 그를 믿어보기도 했다가 단념하기도 하면서 혼자 그의 부재를 견딥니다. 마음을 담아 찬찬히 써내려간 편지를 사진관 문틈으로 밀어넣었던 가을의 어느 오후가 있었고, 치밀어오르는 배신감과 분노를 견디지 못해 사진관 창에 돌을 던져버린 늦가을의 밤도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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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호 감독은 영화 제목을 너무 이른 죽음을 맞게 되는 청년을 의미하며 지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도 故김광석의 화사한 미소를 짓는 영정사진을 보고 받은 충격때문이었다고 해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너무 일찍 찾아온 죽음 앞에서 웃으며 마지막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었던 거죠. 죽기 전 입원실에서 나와 삶을 정리할 시간을 갖게 된 정원은 사진관에서 수없이 많은 이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던 카메라 앞에 앉습니다. 그리고 필시 자신의 마지막 사진-영정 앞에 놓이게 될 사진이란 걸 알면서 짐짓 긴장해있다가 이내 미소를 지어요. 그 미소는 서글프다고도 화사하다고도 할 수 없지만 아름다웠습니다. 제게는 말이예요. 그건 사진관 벽면에 새로 걸 수 있는 어여쁜 얼굴의 사람을 알고 있으며, 그 사람으로부터 받은 소중한 편지에 답장을 쓸 수 있기에 지을 수 있는 미소였으니까요. 다림과의 사랑이 없었다면 정원은 아마 끝내 웃는 얼굴로 자신의 마지막을 남길 수 없었을 거예요. 비록 영원할 수 없었지만 순수한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 그들을 한뼘씩 성숙하게 해주었습니다. 마치 여름의 흘러넘치는 태양빛과 생의 에너지가 가을의 결실을 맺게하는 것처럼. 정원의 아름다운 미소는 어느 겨울날 사진관 앞을 지나는 다림의 얼굴에도 똑같이 피어나고 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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