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 수영 Aug 25. 2024

돈 모으고 결혼하자고? 안돼!

완벽하지 않아도 행복한 우리

 "우리 언제 결혼할까?" 미래를 상상하면서 남자친구에게 질문을 던지면 항상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취업하고 돈 모아서 남 부럽지 않게 시작할 수 있을 때 하자." 빨리 가정을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던 나와는 다르게 그는 안정된 시작을 원했고 결혼시기는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 간격이 잘 좁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미래를 원하면서도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사실 결혼이 당장 눈앞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20대 초반이란 어린 나이에 처음 만났던 우리에겐 당장 눈앞의 과제와 학점이 우선이었고 좋은 직장을 갖는 것이 목표였다. 졸업이 다가오고 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그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시간이 흘러 각각 시험에 합격하고 석사를 졸업한 우리는 각자의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고 이젠 첫 직장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해졌다. 바로 앞에 놓인 과제들만 해결해 나갔을 뿐인데, 손잡고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눈 깜짝할 새에 우리는 어느새 7년 차 연인이 되어버렸다.


 느낌이 왔다. 이제 결혼할 때라고.


이제 결혼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만들어 그에게 던져주기로 결심했다. 이전처럼 두리뭉실한 상상이 아닌 실체가 있는 미래를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을 준비를 시작하자는 나의 말에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딱 5년만 더 준비하고 결혼하자" 안정적인 시작을 하고 싶은 그의 마음은 이해가 갔지만 나는 빨리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5년이라는 시간은 도저히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만은 그의 의견을 듣지 않고 내 생각을 밀어붙이기로 결심했다. 은근히 고집이 센 그는 의견을 잘 굽히지 않았다. 아무리 설득해도 기간을 3년으로 줄이는 게 한계였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결혼준비 시작을 못 박을 수 있었다.


 바로 결혼 박람회장이었다. 결혼 준비를 하는 친구 이야기를 계기로 예산을 파악 겸 함께 박람회장을 가게 되었다. 결혼을 준비하려는 생각보다 결혼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과, 실제로 돈이 얼마나 드는지 궁금해서 방문한 거였는데 생각지도 못한 대어를 낚았다.

 그곳은 스튜디오 촬영사진, 드레스, 턱시도, 예물 등 다양한 업체들과 수많은 커플들이 잔뜩 있는 마음이 들뜨는 곳이었다. 입장 후 첫 번째로 웨딩플래너와의 상담이 필수라 하여 생각지도 못하게 상담석에 앉게 돼버렸는데, 플래너가 웃으며 건네오는 첫 질문에 우리는 당황해 버렸다. "언제 결혼하실 예정이세요?" 이런 박람회에는 결혼이 결정된 사람들만 온다는 걸 몰랐다! 날짜가 있어야 상담을 받고 견적을 뽑을 수 있는데 이걸 몰랐던 우리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며 서로 눈빛만 교환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만약 결혼을 하면 2월쯤 하자는 말이 생각나 플래너에게 자신 있게 외쳤버렸다. "내년 2월이요!" 이 대답을 시작으로 갑자기 모든 일이 진행되면서 8개월 만에 그와 함께 결혼식장에 설 수 있었다.


 갑자기 마음대로 쏴버린 출발 신호탄에 당황했을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도 결혼이 싫은 게 아니라 더 좋은 미래를 그리기 위해 신중을 기했던 거라 이미 벌어진 일에 눈 딱 감고 같이 달려주었다. 남편의 큰 걱정거리는 괜찮은 결혼식을 치르고 살만한 집에서 시작할 수 있을까였다. 하지만 오래 고민했던 기간이 무색하게 막상 결혼 준비를 시작하니 우리에게 이것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 화려한 결혼식과 좋은 집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행복을 찾기에는 충분했고 만족스러웠다.


 결혼식 준비는 남에게 기준을 맞추기보다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 나가기로 했다. 결혼식장은 크진 않았지만 계단으로 내려가는 신부입장이 특별해 보여서 좋았고 작은 식장이지만 웃음으로 가득 채운 결혼식을 할 수 있어 행복했다. 드레스샵은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를 골라 뭘 입어도 맘에 들었고 함께 디테일을 골라가며 남편 몸에 딱 맞는 정장을 만드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었다. 스튜디오는 원하는 분위기를 골라서 맘에 드는 사진들을 실컷 찍어서 즐거웠고 반지는 결혼반지 치고 심플하지만 매일 끼고 다니기 편해서 마음에 들었다. 욕심이라고 생각되는 건 과감히 포기하고 꼭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예산을 조금 넘기더라도 마음에 드는 것들로 골라 모았다. 만약 금전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더 넓은 선택지에서 많은 것들을 고를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가진 선택지 안에서도 충분히 좋아하는 것들로 결혼식장을 채울 수 있었다.


 집도 작았지만 재미있었던 시작이었다. 우리가 처음 시작한 집은 1.5룸의 작은 공간이었다. 혼자 살기에도 좁은 공간이지만 평생 자취 한번 해본 적 없는 우리에겐 두근거리는 시작이었다. 직장인이 되면서 잠깐 만나고 헤어져야 했는데 같이 누워서 속닥거릴 수 있고 심심하면 손잡고 산책을 나갈 수 있는 같은 집에 산다는 게 마냥 좋았다. 근처에 있는 시장에서 같이 장을 보고 조그마한 주방에서 복닥거리며 요리할 수 있었고, 밥상에 우리가 좋아하는 걸 가득 차려 먹으며 기분 좋은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알콩달콩 작은 공간에 찹쌀떡처럼 붙어지내다 조금 더 큰집에 이사 오면서 또 다른 즐거움을 느끼며 지내고 있다.


 더 늦게 결혼했으면 후회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만큼 재밌게 결혼생활을 보내고 있다. 결혼해서 좋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5년 뒤에 결혼하자며!"라고 말하면 "그때 결혼하길 잘했지."라는 웃으며 대답을 해준다. 그가 원했던 만큼 안정된 시작은 아니라 부족한 것들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과제들을 당면하겠지만, 남들을 부러워하기보단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가에 집중하며 함께 잘 해결해 나가서 지금처럼 행복하고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전 01화 마법에 걸린 게 틀림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