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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수영 Sep 01. 2024

대놓고 준비하는 프러포즈

수상한 여자와 눈치제로 남자

 대학생 막바지쯤이었나, 내가 남편에게 보라색 국화를 건네주며 프러포즈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보락색 국화의 꽃말은 '내 모든 것을 그대에게'. 우리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라 생각되어 나중에 이 꽃을 주며 내가 먼저 프러포즈를 해야겠다는 미래의 계획을 세운적이 있었다. 우리가 결혼할 때가 왔다고 생각되었을 때 이때의 기억이 떠올라 옛날의 꿈을 재현해 보기로 했다.


 보통 프러포즈는 남자가 한다지만, 사랑하는 사이에 순서를 정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실 그를 너무 사랑해 허락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예전 꿈을 재현한다는 나의 로망실현과 그를 놀라게 하고 싶은 장난스러운 마음으로 먼저 프러포즈를 하기로 결심했다. 마침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어서 그날 묵을 호텔에서 보라색 국화꽃과 케이크를 주며 반지를 끼워주는 계획을 세웠다. 그에게 비밀이 없기도 하고 항상 붙어다니는지라 입 꾹 다물고 준비하는 게 꽤 어려웠는데 생각 외로 하나도 못 알아채서 결과적으로는 대성공이었다. 내 딴에는 들킬 각오도 하고 정말 대놓고 준비한 건데도 눈치를 못 채는 남편덕에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프러포즈링 쇼핑

 그와 찰떡처럼 붙어있어야 할 주말에 혼자 바깥 구경을 하고 싶다는 핑계를 대고 나 홀로 쇼핑을 나섰다. 그에게 어울리는 반지를 사겠다 의지를 불태우며 열심히 돌아다니다 보니 마음에 드는 몇 개를 찾을 수 있었는데, 열심히 추려 남긴 두 개의 디자인 중에 뭘 선택할지 큰 고민에 빠져버렸다. 하나는 가격도 적당하고 디자인도 무난한 게 호불호가 없을 것 같았고 다른 하나는 전자보다 가격은 2 배지만 디자인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둘 다 그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적지 않은 금액차이에 고민을 계속하다 도움을 구하고자 전화를 하러 나갔다. 반지 주인에게!

 "비싸고 맘에 드는 거랑 가격은 적당하고 괜찮은 거 있는데 뭘 사야 할까?"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으니 내 액세서리를 산다고 핑계를 대며 전화를 걸었다. "가격 괜찮은 걸로 사. 비싼 건 내가 사줄게 다음에 같이 가자" 생각지도 못한 말에 감동을 받으면서도 돈 가지고 고민을 한 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어서 같이 골라줄 테니 사진을 보내달라는 말에 당황해서 전화를 얼른 끊어버리고 조금 비쌌지만 내 마음에 든 반지를 구매했다.

 그리고 더 재밌던 건 반지 사이즈가 필요해서 커플링 몇 호 샀는지 기억나냐 물으니 기억을 못 하더라. 궁금하다는 핑계로 손가락 둘레를 직접 재갔는데도 아무런 의심 없는 모습에 다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건가 좀 의심스러웠던 게 기억이 난다.


 꽃다발과 케이크

 평소에 데이트를 즐겨하던 곳에서 함께 만나서 호텔로 출발하기로 약속을 했다. 약속장소에서 만나기 전에 미리 주문한 꽃과 케이크를 미리 챙긴 채로 그를 만나야 했다! 꽃과 케이크는 내가 주고 싶은 것들을 담은 것들로 골라서 준비했다.

 꽃은 이전에 꿨던 꿈처럼 보라색 국화를 넣은 꽃다발을 요청했다. 직접 받은 꽃다발에는 보라색 퐁퐁국화에 튤립과 아네모네 설유화등 예쁜 꽃들이 가득 담겨 깔끔한 검은색 포장지에 싸여있었다. 내가 봤던 꽃다발 중에 제일 예뻐서 빨리 주고 싶어 마음이 설레었다.

 케이크는 우리가 좋아하던 가게에서 자주 먹던 것으로 결정했다. "나랑 결혼해 줘!"라는 문구를 쓴 딸기 초콜릿 케이크와 함께 꽂을 귀여운 곰돌이초 두 개와 하트초 하나를 준비했고 빨리 이벤트를 하고 싶어서 두근거렸다. 케이크를 픽업할 때 다소 난관이 있기도 했는데, 가져가려고 박스 손잡이를 들어 올리니 안에 문구가 다 보여서 호텔로 가는 중에 들킬 것 같았다. 다행히 사장님의 도움으로 박스는 안이 안 보이게 꽁꽁 닫고 비닐에 담아서 내용물을 숨긴 채 가져갈 수 있었다.

 갑자기 들고 나타난 꽃다발과 케이크에 그가 의문을 표했지만 꽃은 그냥 주고 싶어서 샀고 케이크는 기념일이라 같이 먹으려고 샀다 하니 다행히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목적지로 향할 수 있었다.


 이벤트 세팅

 "밖에 편의점이랑 음식점 뭐 있는지 한번 보고 와줘." 호텔방에 들어서고 그에게 처음 오는 동네니 주변을 둘러봐 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때도 순순히 알았다고 문을 나서는 모습에 다 아는데 모르는 척해주는 거 아닌가 의심이 들었지만 일단 시간이 없으니 갖고 온 것들을 준비하는데 집중했다.

 이날을 위해 준비해 놓은 글자풍선과 컨페티풍선에 바람을 넣으면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주인공을 기다리며 초조하게 움직였다. 커튼엔 MARRY ME 풍선을 붙여놓고 소파와 바닥엔 동그란 풍선들을 잔뜩 쌓아놓았다. 꽃다발, 반지와 함께 테이블에 올려놓은 케이크에 귀여운 곰돌이 초와 장난감 반지를 올려놓는 중 그에게 연락이 왔다. 올라오고 있다는 전화에 얼른 초에 불을 붙이고 꽃다발을 든 채 문 앞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를 기다렸다.

 드디어 문이 열렸고 노래를 불러주며 건네주는 꽃다발에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내가 이끄는 손을 따라 케이크 앞에 서서 반지를 받더니 연신 이게 뭐야 하며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케이크 위에 초도 불면서도 계속 어안이 벙벙한 모습에 즐거워 웃음이 나오고 행복이 차올랐다.


 앞으로 굴러도 뒤로 구르면서 봐도 성공적인 프러포즈였다. 누가 봐도 수상하게 준비한 것 같은데 이벤트에 성공하고 나니 엄청난 쾌감이 일었다. 나는 평소에 남편한테 비밀이 생기면 괜히 말해주고 싶어서 스스로 밝히곤 한다. 이런 탓에 준비하면서도 입이 근질거려서 힘들었는데 잘 참은 내 모습이 뿌듯했다. 하지만 나는 역시 재밌는 건 빨리 공유해서 같이 즐기는게 좋아서 앞으로 깜짝 이벤트는 없을 것 같다.

 뿌듯함에 남편에게 정말 몰랐었냐고 물어보니, 내가 먼저 프러포즈를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해서 하나도 의심할 수 없었다고 했다. 재밌는 건 이후에 남편도 프러포즈를 준비했는데 내가 중간에 눈치채버렸다. 평소와 다른 느낌에 왠지 모를 수상한 행동들이 보여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프로포즈를 받는 순간에 전달되는 마음과, 그가 신경 쓰며 준비했을걸 생각하니 똑같이 감동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일생에 한 번뿐인 프로포즈 이벤트가 끝난게 아쉽긴 하지만 앞으로도 우리에게 찾아올 일들이 이날처럼 즐겁고 행복한 시간으로 남을 수 있도록 더 사랑하고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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