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밍 May 10. 2024

파스타

속마음을 포크로 둘둘 말아봅니다.




아직 나를 숨기고 싶을 때 먹는 편입니다, 파스타는.

그러니까 정석대로 젓가락질을 하지 못해 젓가락 사이로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두꺼운 가락국수면을 놓치는 모습을 보여주기엔 아직 어색한 사람과 식사를 해야 할 그럴 때말입니다. 물론 가락국수와 같은 면종류이지만 파스타는 일반적으로 포크로 말아먹는다는 조용한 규칙이 있으니 젓가락을 잠시 숨겨두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젓가락질을 못하는 사람의 유별난 생각이어도 별 수없지만 훑어보니 다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한결 놓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포털 사이트에 소개팅 맛집을 검색하였을 때 몇 페이지 가득 파스타 가게가 그렇게 많이 나올 수가 없을 테니 말입니다.

어지간하게 진부할 수도 있지만 몇 페이지 가득한 파스타 가게의 용기를 얻어 소개팅 상대방과의 식사자리를 파스타 가게로 향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자리도, 처음 식사를 같이하는 자리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직 포크로 말아먹는 파스타 한입에 공기보다 어색함을 더 많이 삼킬 뿐이었죠.

다른 맛있는 음식들도 많았지만 그때까진 파스타를 먹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맞은편에서 건너오는 목소리에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젓가락을 쥐고 있었다면 분명 파스타는 아직은 시린 밤바람에 파들파들 속절없이 떨고 있는 이파리 같았을 테니까요.

젓가락보다 빠르게 후루룩 포크로 꾸덕한 파스타 면을 말아 올리고 면을 떨어트릴 찰나를 주지 않고 야무지게 벌린 입으로 말아둔 파스타를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곤 조심스레 손바닥을 뻗어 살짝 입가를 가리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들어 한번 웃어 보이면 꽤나 자연스럽게 긴장을 숨기는 데에 성공했구나 마음으로 안도의 숨을 내뱉었습니다. 알고 보니 포크도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전반적으로 괜찮았던 그날 약간의 실수라고 한다면 새우가 올라간 파스타가 아닌 다진 고기가 들어간 파스타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통통한 새우가 서너 마리 올라간 파스타는 깔끔하게 포크로 한 번에 툭 집기도 좋고 맞은편 상대방과 나눠먹기도 편한 파스타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한입에 넣고 다시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는데 최소한의 시간만이 걸리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날은 잠시 그 사실을 잊은 채 토마토소스에 버무려진 다진 고기가 들어간 파스타를 주문했습니다.

포크로 한 개 두 개 찍어먹을 수 없어 숟가락의 힘을 빌려 조금씩 모아서 입에 넣었어야 했는데

순간순간 맞은편에서 건너오는 목소리보다 숟가락과 포크가 접시에 부딪히는 소리가 더 크게 귓가에 맴돌아버렸습니다.


그렇게 파스타를 먹어야 하냐, 내숭을 너무 떠는 거 아니냐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그게 맞습니다, 내숭을 그것도 꽤나 많이 떨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젓가락 사이로 흐르는 가락국수면을 보고도 나를 흘겨보지 않을지, 김치찌개 한 스푼을 마시며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시원함 찌푸린 미간으로 보여주는 나를 보며 찌푸리지 않을지, 아직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을 그 정도로 알지는 못했으니까요.


그렇게 내숭을 떨면서 먹으면 무슨 맛이 느껴지나 싶겠지만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파스타는 맛있었습니다.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고 해서 그 사람과 나눈 대화가 지루하다고 할 수 없듯이,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포크로 먹은 파스타는 조심스럽지만 맛있었습니다.

그저 그 어색하지만 설레는 시간을 보낼 기회가 한번 더 생기길 바라는 조심스러운 마음을 꾸덕한 파스타 크림에 얹어보았을 뿐이랄까요.


다음번엔 기회가 된다면 또 파스타를 먹으러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어색하지만 그럼에도 한 뼘 가까워진 마음으로.

그때는 포크가 아닌 젓가락으로 후루룩 먹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이전 01화 케이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