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위로 얇게 펴지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흰밥. 아삭하고 새콤한 단무지 하나, 달큼한 당근은 한 줌 쥐어 올리고 폭신폭신한 계란 지단 조금, 짭조름한 우엉조림 반 줌, 빼놓으면 아쉬운 김밥 햄까지. 양손으로 한꺼번에 야무지게 말아가다 보면 어느새 원래 하나였듯 두루두루 뭉친 속이 알차고 고소한 참기름을 묻힌 손가락으로 무심하게 훑어내리고 마지막으로 엄마의 한마디가 얹어지면 김밥 말이는 끝이 납니다. 엄마 없어도 이렇게 해먹으면 된다,는 덤덤한 한마디가 엄마표 김밥의 마지막 양념입니다.
엄마 없어도,라는 이 말은 정말 물리적으로 엄마가 집에 계시지 않을 때 김밥이 먹고 싶은 날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도 기댈 수 있는 엄마가 없는, 엄마가 이름처럼 아름다운 꽃으로 돌아간 훗날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원하지 않았겠지만 벌써 20년 가까이 제사상을 차려오면서 엄마는 엄마의 미래의 본인의 제사상을 미리 떠올리곤 했었나 봅니다. 제사상에는 이것도 올라가야 하고, 저것도 올라가야 한다는 그런 번거롭고 귀찮은 관습을 무척이나 귀찮아하던 엄마라서 그런가 보다 싶습니다. 이어서 엄마가 차분히 먹기 좋게 김밥을 썰어내면 옆에서 한 개 집어먹으며 그렇습니다, 참치김밥 하나 야채김밥 하나 이렇게 말겠다고. 어차피 꽃으로 돌아간 엄마를 기억하기 위한 날, 엄마가 좋아하고 엄마가 생각나는 음식으로 상을 차리는 일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마냥 알겠다고 대답만 하곤 옆에서 김밥을 집어먹는 일이 전부였지만 요즘은 조금 다른 마음이 듭니다. 그러니까, 엄마가 집에 없는데 김밥이 먹고 싶어지는 날이면 엄마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했던 마음이 이제는 엄마가 오기 전에 김밥을 만들어두자, 엄마도 먹기 좋게.라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아쉽게도 아직은 손이 많이 모자랍니다, 엄마의 김밥처럼 속이 든든하고 다정한 김밥을 만들기에는. 그저 엄마의 김밥을 흉내 내는 정도로 어딘가 조금 힘이 없는 김밥이 완성되지만 집에 돌아온 엄마는 그마저도 좋은지 한입 가득 김밥을 드시곤 합니다.
금방 비워지는 접시를 보며 엄마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지만 아직까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특별한 말은 아닙니다,
그저 김밥 맛이 좋냐는 평범한 말이지만. 김밥 맛이 아직 모자라다는 말도, 김밥 맛이 아주 맛있다는 말도 모두 아직 엄마 입에서 듣기에는 왠지 조금 서글픈 마음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둘 다 엄마의 빈자리를 등 떠미는 조급한 기분이 들어서, 그 기분 앞에서 덤덤해질 수가 없는 건 어쩔 수가 없어서 그런가 봅니다.
오늘도 김밥이 먹고 싶은 날입니다,
그리고 엄마는 집에 계시지 않습니다. 한 줄을 말아두고 기다려볼까 합니다. 남은 한 줄은 엄마의 손을 빌려, 그렇게 한 끼를 함께하고 싶은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