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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밍 May 22. 2024

도시락

눌러 담은 챙김은 꼭꼭 씹어먹어야 제맛입니다.




유달리 사건사고가 많을 예정이라고 귀띔이라도 하듯이 작년에는 새해가 밝자마자 병실에서 뜨고 지는 해를 보았습니다.


이전까지는 통원치료로 컨디션이 회복되었던 가벼운 접촉사고만을 경험했었던 터라, 일주일 이상 병원에 입원하여야 한다는 사실이 진즉 병실에 홀로 누워 창밖을 바라보면서도 실감이 잘 나지 않더군요.


더군다나 반갑지 않은 코로나가 여전히 주변을 맴돌고 있을 때라 잠깐의 면회도 허용하지 않는 병실 안에서의 하루는 지루하다고 말하기에도 지루했습니다.

이렇게 병실 침대 매트리스 위에서 지루하게 절여져 있을 정도로 아프지는 않은 거 같은데,라는 생각마저 들정도였으니 말입니다.


병실 티브이 채널로 바꾸기 귀찮을 정도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병실에서 재빠르게 몸을 일으키는 순간은 하루 세 번, 놓인 도시락을 먹는 끼니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입원했던 병원은 병원에서 직접 식사를 만들지는 않지만 하루 세 번 따뜻한 밥과 국을 포함한 든든한 도시락을 병실에 놓아주었습니다.


첫날엔 생각보다 꽤 괜찮네,라는 생각으로 도시락을 비웠습니다.

병실에서 먹는 밥은 남아있던 밥맛까지 앗아간다는 무시무시하게 들렸던 이야기들과는 달랐거든요.

별로 좋아하지 않던 반찬이었음에도 꼭꼭 씹어 남기지 않고 먹었습니다. 다음날,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놓인 도시락은 만족스러웠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한 칸 한 칸 꾹꾹 눌러 담겨있는 밥과 반찬들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생각보다 더 따뜻했어서 그렇습니다.



어느 곳, 어느 시간에서든 이  도시락을 받아 든 이에게 몇 가지 반찬과 밥, 그리고 국으로 챙김을 전하는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감사해지는 순간이었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당연한 사고의 흐름이기도 합니다.

도시락을 준비하는 사람은 손끝하나하나에 도시락을 받아 든 이에게 챙김을 대신 전하는 전하는 사람일 테니까요.

도시락을 받아 든 이는 누군가의 챙김이, 그것이 비록 이십 분이 조금 안 되는 한 끼로 끝나는 짧은 순간임에도, 필요한 사람일 테니 말입니다.


챙김, 그러니까 누군가의 한 끼를 대신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당장 오늘 저녁 밥상을 준비한다고 한들 서너 가지의 반찬과 밥, 그리고 국 이렇게 한상을 준비하여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테니까요.

김치에 라면 하나 끓여 먹는 일정도면 충분히 저녁을 챙겼다,라고 말할 수 있는 바쁘고 정신없는 삶을 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작년 일주일 동안 모르는 이의 챙김을 두둑이 받고 무사히 퇴원을 할 때, 병실의 작은 창문으로 답답하게 바라보던 풍경을 직접 눈으로 넓게 바라볼 수 있어 너무 반가웠지만 챙김을 꼭꼭 씹어먹던 그 순간은 가끔씩 그리워하겠구나 하는 마음에 집으로 가는 길에 몇 번을 돌아봤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때도 지금도 챙김이 그리운 건 변함이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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