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도 그런 집이 있어,라는 집에 아직도 살고 있는 저에게는 매년 이레적으로 겪어오고 있습니다. 꽁꽁 얼린 빙판과 스케이트화가 없이 맨발만으로도 쭈욱 미끄러지는 미끌미끌한 바닥과 시장 골목 어느 전집의 벽지를 떼어다 붙여놓은 듯한 기름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을 하는 일을 말이죠.
양파, 당근, 버섯을 넣어 씹는 재미를 주는 야채 전, 담백하고 고소한 살을 이로 부드럽게 씹어 넘기는 동태전 그리고 육즙이 가득한 동그랑땡으로 커다란 전 소쿠리를 하나 가득 채우는 걸로 끝나진 않습니다. 이윽고 널찍한 녹두전과 새콤한 김치전, 그날그날 슈퍼에서 신선한 재료를 사와 만든 자투리 전으로 집안의 모든 쟁반과 접시에 가득 채워야 하니 말입니다. 그렇게 식탁과 김치냉장고 위를 모든 전들이 점령하고 나서야 한껏 달아오른 프라이팬도 연신 불꽃을 뿜어내던 가스레인지도 얼굴에 흐르는 것이 땀인지 기름인지 모를 저와 엄마도 한숨 돌릴 수 있게됩니다.
그렇게 하루 반나절을 전을 부치는 일이 생각보다 억울하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땀을 흘리고 애를 쓰는 모습은 엄마가 언제나 보여주시던 모습이니까요. 오히려 아직은 부족한 솜씨로 엄마의 노고를 흉내라도 내보는 시간 같아 괜히 우쭐해지는 마음이 앞서기도 합니다.
억울한 부분은 이렇습니다. 그렇게 온 집안의 쟁반과 접시를 가득 채운 전은 엄마의 젓가락이 향하기도 전에 텅 비어버린다는 것, 거실부터 주방을 가득 채우는 그 많은 검은 머리들 중에서 아무도 이를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이 광경이 언제부턴가 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 스스로가 가장 억울한 부분입니다.
다른 집 귀한 자식이 땀 흘려 만든 음식을 먹고만 있는 자신들의 자손을 바라보는 어르신들의 마음은 풍요로운지 썩 궁금하지는 않지만기회가 된다면 여쭤보고는 싶습니다, 그분들의 입장에서도 이 광경이 정녕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인지 말입니다. 제가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마음은 그렇습니다.
한껏 길어진 해에 자연스럽게 다가올 무더위 걱정이 앞서고, 한차례 무더위가 지나가면 당연하게 다가올 벽지에 다시 기름 냄새가 배어들 날을 떠올리는 스스로가 조금 기름진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