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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밍 May 20. 2024

피자

열기를 잃어버린 식은 마음에도 손이 간다는 건.




뜨거운 김도, 혀가 먼저 마중 나갈 만큼 길게 늘어지는 치즈도 없이 밤새 차가워진 공기를 맞아 온기를 느낄 수 없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손이 갑니다, 식어버린 피자에.

물론 압니다, 식은 피자가 맛이 있어도 전날 엘리베이터 가득 고소한 치즈 냄새를 풍기며 현관을 타고 넘어온 뜨끈뜨끈함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요.


처음보다 식어버린 온도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눈을 감고 가만히 손을 가슴께 두고 새로 시작한 게임의 배경 음악을 들으며 캐릭터를 처음 움직여보는 설렘의 온도도, 서점의 커다란 책장에 뺵뺵하게 들어선 두꺼운 책들을 보며 첫 글을 써 내려가던 두근거림의 온도가 조금은 뜨듯 미지근 해졌을 테니까요.







그저 초심을 잃은 게 아니냐, 이젠 실증이 나버린 게 아니냐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단순하게 그런 마음은 아닙니다.

방금 도착해 따끈하던 피자를 한 조각 두 조각 베어 물던 저녁이 지나고 남은 피자들이 잠든 이를 두고 밤을 보내고 아침이 오는 사이 처음의 온도를 잃어버린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그게 피자의 맛이 변하든, 변하지 않든 간에 말입니다.

예전과 같은 온도로 사랑할 수 없다는 사람의 마음도 변하게 하는 시간이 맛있는 피자라고 예외를 두진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어쨌든 손이 간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예전과 같은 온도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든, 조금 덤덤해진 설렘으로 게임을 시작하는 손가락이든, 두근거림이 잦아든 잔잔한 마음으로 써내리는 글이든.

더 이상 치즈는 늘어나지 않는 피자든. 머무르고자 하는 손길이 멈추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손길이 끊어지지 않는 한 온도가 떨어진 사랑도, 덤덤해진 설렘도, 잔잔해진 두근거림도 사라진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조금 차가워도 여전히 입에 맞는 맛있는 피자처럼 말이죠.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지나면 피자는 조금 더 식어버리겠지만 그럼에도 그다음 날에도 여전히 피자로 손이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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