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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23. 2024

겨울이 스쳐 지나갈 때의 냄새

코튼향과 너의 이름

 영하의 온도. 이른 시간부터 행사 준비 근무를 위해 맞춰놓은 알람 때문에 눈을 뜨자마자 엄습해 오는 이 한기가 날 이불속에서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부랴부랴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르며 아직 정신 차리지 못한 온수로 씻은 후 휴대폰으로 언뜻 봐뒀던 영하의 날씨를 기억해 내고는 두꺼운 옷을 껴입기 시작했다.


운전을 위해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얼굴을 찢는 듯한 칼바람이 온몸을 찔러댔다. 목도리에 장갑까지 중무장했어도 이 추위는 어쩔 수 없으리라.  아직 6시가 되지 않아서인지 세상은 까맣기만 하고 가로등의 외로운 불빛만이 칼바람에 치이듯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간간히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고는 "이 날씨에 대단하시다..."라는 짧은 탄식을 내뱉으며 급하게 차에 몸을 실었다.




오전 행사가 마무리된 후 산등성이 너머로 떠오르는 해가 나에게 인사하듯 얼굴을 내민다. 그 까맣던 세상은 이제 저 멀리 뒷걸음치듯 사라지고, 밤의 주인이었던 달빛은 마치 아무것도 껴입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운지 창백한 모습으로 하늘에서 고정되어 있다. 그렇게 사무실로 출근하며 정말 오랜만에 새벽녘의 풍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바라보게 되었다. 몇 년 전 선거 지원근무나 수능 지원근무 때만 겪어봤던 추위가 기억나 나도 모르게 온몸을 떨어댔지만 그 당시의 냄새가 기억나곤 한다.


겨울이 스쳐 지나갈 때의 냄새.

 공기는 한없이 차갑고, 칼바람이 불어오는 그 와중에도 겨울만의 냄새가 있다. 코로 한껏 들이마시면 폐가 찢어질 것만 같은 날카롭기 그지없지만 겨울만의 독특한 상쾌함이 내 코를 돌고 온몸 곳곳을 돌아 다시 세상밖으로 돌아 나오는 그 느낌을 난 기억 한다.


겨울의 냄새는 비단 이것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없이 추운 날 노상분식집에서 풍겨오는 붕어빵 냄새나 떡볶이, 호떡, 국화빵, 땅콩빵, 계란빵 냄새 등과 길거리에서 간혹 군고구마, 군밤의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면 방금까지만 해도 배가 불렀는데 금세 배가 헛헛해지고 마는 것이다. 참 희한한 경험이 아닐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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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때, 가을이 지나 초겨울로 들어갈 때. 너랑 나는 겨울에 무엇을 하며 지낼지 카페에서 얘기하고 있었다. 너와 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겨울을 상상하며 시간이 나면 반드시 붕어빵을 원 없이 먹을 거라며 행복한 웃음을 지어댔으며, 집에 귤을 한 박스 구매한 다음에 해리포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를 보내자 약속했었고 그 웃음에 함께 곁들인 너의 인디언 보조개는 겨울이 오든 다시 봄이 오든 더운 여름이 오든 서늘한 가을이 오든 돌고 돌아 내 눈앞에 지금 존재하고 있음에 감사했다.

그때 그 당시 그 시점. 잡았던 너의 손길에서 나던 은은하고 달콤했던 핸드크림의 코튼향이 나의 겨울 냄새에 추가되었다.


 이제 겨울이 스쳐 지나갈 때의 냄새에는 핸드크림의 은은하고 달콤한 코튼향이 입혀져 살아나기 시작한다. 겨울의 냄새는 한없이 차갑고 칼바람처럼 날카롭기 그지없지만 그 코튼향은 저 멀리 어디선가, 아주 약하디 약한 농도로 내 후각세포를 건드린다. 실존하는지 안 하는지는 고려하지 않겠다.

그저, 그때의 내가 기억나고 그때의 너가 기억나므로 코튼향은 적어도 나에게는 기분을 좋게 하고, 불안했던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에 틀림없다. 물론 코튼향의 주인은 내 곁에 없다는 사실만은 가슴 아프지만 난 그럴 때마다 너의 이름을 조용히 되뇌곤 한다. 이 추운 겨울날만이라도 따뜻했던 추억으로 가슴만이라도 따뜻하게 유지하고 싶어서일까.


겨울 한가운데 코튼향과 너의 이름 두 글자가 합쳐지는 그 순간.

겨울이 나를 스쳐 지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높고 높은 하늘에 휘-이, 소리를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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