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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30. 2024

번아웃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중

재미없다, 노잼이다, 흥미 없다.

지금 나의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랄까.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까지는 번아웃이 오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모든 것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똑같은 하루하루, 매일 똑같은 사람들, 매일 같은 일, 매일 같은 시각에 출근과 퇴근 등...

번아웃(Burnout Syndrome, 소진(燒盡))
어떤 직무를 맡는 도중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직무에서 오는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의 통칭. 정신적 탈진이라 생각하면 편하다.
- 나무위키

사람들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번아웃이 온 것일까.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 생각했는데?


나에게 2024년은 하나도 신나지가 않았다.

김광석 가수의 '서른 즈음에'의 서른이 되었던 만큼 기념비적인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고, 그저 똑같은 1월부터 12월까지의 일정을 또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그 지겨움이, 그 괴로움이,

그 고독감이, 그 허탈감이,

그 외로움이, 그 불행함이, 그 허무함이

내 그림자 뒤편에서 슬금슬금 살아나 내 목을 옥죄어 오고 있었다.


그래, 잠시만 이런 것일 거야라며 날 위로했다. 2023년에는 정신없이 바빴고 심적으로 기쁜 일, 슬픈 일도 많았기에 잠시 거센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거라며 나에게 혼잣말을 해대고 브런치에도 글을 쓰며 조만간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아니었다. 오롯이 나만의 착각이었다. 나는 나를 잃어가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제 나도 모르겠다고 나지막이 말해본다.


제일 먼저 나타난 증상은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자취를 감추는 일이다.

그냥 나타나기가 싫었다. 아니, 내 모습을 드러내기엔 나는 너무나도 나약하고 취약하기에 내 일그러진 마음상태를 상대방이 알아채기라도 할 땐 그 창피함과 부끄러움이 날 가만히 두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 날, 회사동기인 친구 녀석이 사내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이미 그 친구랑은 단체대화방에 초대되어 있었기에 개별적으로 연락이 올 계기가 없었으나 출근 후 멍한 상태로 책상정리를 하고 있던 화면 우측에 반짝반짝 알림창이 와있었다.


"요즘 무슨 일 있어? 괜찮은 거 맞지? 요즘 들어서 너가 아예 사라진 느낌이라 걱정되네. 무슨 일 있으면 말해줘."


친구의 걱정 어린 안부인사는 나를 충분히 감동시키기에 그지없었지만,

바보 같던 나는 나를 드러내기가 싫었다.


"어, 오랜만이네, 잘 지내지? 너는 별일 없지? 나 그냥 그럭저럭 지내. 걱정 안 해도 돼"


"다행이다. 조만간에 만나서 술이나 한잔 하자"


그렇게 나는 친구의 약속요청에 답을 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친구의 걱정에 감동하면서도 난 나를 드러내기가 싫다. 그냥... 혼자서 모든 것을 삼키고 속으로 삭이며 지나가고 싶다.


이러다 모두에게 잊힐 만큼 나에게서 관심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고 적어도 내가 회복할 만큼만 날 잊어줬으면 좋겠다는 비겁하고 약삭빠른 생각만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차 날 잠식하고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번아웃이 온 것인지, 아니면 번아웃이라는 이름의 우울감이 날 잡아먹고 있는 건지. 도대체가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면 좋은 건지. 주말마다 드라이브를 핑계로 바깥공기를 맡고 돌아다니고 집에 돌아오고 나면 그놈의 적막감 다시 날 머저리로 돌려놓는다.


인생 참

.

.

.

재미없다. 




 그나마 브런치에 여러 작가님들과 소통하고 작가님들의 감동 어린, 전문성 있는,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수많은 글들을 접하고 나 또한 나의 마음속에 가라앉아있던 감정을 글로 써 내려갈 수 있다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평상시엔 강렬하고 강한 비트가 내재된 음악만 듣던 내가 이젠 통기타의, 혹은 잔잔한 피아노의, 혹은 무반주에 가까운 담담한 인디가수들의 목소리에 꽂혀 심신의 위로를 얻는 취미가 생긴 것도 매한가지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런 행동마저 없었더라면 정말 나의 우울감은 내 자존감을 모두 갉아먹고 나의 생명마저 갉아먹을 것임에 확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서도 한층 가라앉은 인디밴드들의 플레이리스트를 고집하며 듣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요즘은 정말 고요한 감정을 일렁거리게 만드는 곡도 많이 찾은 것 같아서 그런 음악을 찾은 나에게도, 그런 음악들을 만들고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준 그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특히 신지훈이라는 가수를 알게 된 것은 내 지루하고 무기력한 일상 속에서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여러분들도 기회가 된다면 신지훈 가수의 플레이리스트를 찾아서 들어보길 바란다. LP판에서 재생되는 듯한 담담한 감성표현이 너무나도 나의 현실과 맞닿은 느낌이 들고 가사 속의 소절마다 울려 퍼지는 내면의 울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즐겨 듣는 신지훈 <시가 될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고 난 물러나겠다.

오늘도 잠에 드는 마지막까지도 번아웃이라는 외투를 뒤집어쓴 우울감과 고즈넉이 고갯짓을 함께 할 것이기에.

속절없다는 글의 뜻을 아십니까
난 그렇게 뒷모습 바라봤네
고요하게 내리던 소복눈에도
눈물 흘린 날들이었기에

많은 약속들이 그리도 무거웠나요
그대와도 작별을 건넬 줄이야
오랫동안 꽃피우던 시절들이
이다지도 찬 바람에 흩어지네

천천히 멀어져 줘요 내게서
나와 맺은 추억들 모두
급히 돌아설 것들이었나
한밤의 꿈처럼 잊혀져가네

날 위로할 때만 아껴 부를 거라던
나의 이름을 낯설도록
서늘한 목소리로 부르는 그대
한번 옛 모습으로 안아주오

천천히 멀어져줘요 내게서
나와 맺은 추억들 모두
급히 돌아설 것들이었나
한밤의 꿈처럼 잊혀져가

별빛도 슬피 기우네요
서서히 내 마음 비추던 첫 모습의 당신
아름다웠네 그늘진 날마저
난 한 걸음마다 회상할 테죠

우리 참 많이
미련 없이 커져서
한없이 꿈을 꾸었네
별을 참 많이
세고 또 세어서
시가 되었네

- 신지훈 <시가 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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