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Mar 28. 2024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아주 단순한 삶을 살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회사로 가고 회사에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 뒤에는 곧바로 집으로 복귀하고 몇 시간 남짓 나만의 시간을 보낸 후엔 눈을 감으면 다음날 또다시 쳇바퀴.


너무 무료한 삶이 지속되기에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요즘은 도서관에 들러 책을 대여해서 틈틈이 읽곤 한다. 그러다 내 흥미 자극하는 책을 하나 보았다. 그것은 전승환 작가님의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였다. 이 책 제목을 보자마자 이건 그냥 나를 위한 책이라고 느꼈다.


홀린 듯이 데스크로 다가가 책을 대여하고 집으로 돌아와 커피 한잔과 함께 찬찬히 읽어보았다. 사실 이 책 이전에도 여러 에세이들을 읽어보았지만 작가 본인의 삶만을 그려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집중하지 않는다면 에세이 중간을 비워내고 책을 읽은 듯한 찝찝한 기분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작가님의 진솔한 에세이뿐만 아니라 여러 시인, 철학자, 영화 등등의 짧지만 울림을 주는 구절을 인용하여 흩트려질 듯한 집중력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역할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면서도 인용된 여러 철학자들의 명언을 곱씹어보기도 하고, 인용된 시나 에세이의 구절을 통해 이 작품도 언젠가는 읽어봐야겠다는 목표의식이 생기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인상 깊다고 생각한 구절은 아래와 같은데,

큰 병이 아니더라도 자잘하게 아픈 곳이 생기면 그 자리에 몸과 마음이 묶여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 (······) 아프다는 것은 이겨내야 할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겪다, 보내야 하는 것이다.

 - 박연준 시인, 「소란」-

항상 사람들은 아프기 시작하면 얼렁뚱땅 넘어가는 식이 없다. 작은 동네병원에서부터 큰 대학 병원까지 자신의 병명을 대며 치료하기 위해 여념이 없는데, 그렇기에 아프다는 것은 항상 이겨내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박연준 시인의 소란의 한 구절을 통해 작가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픈 것을 굳이 굳이 이겨내려고 악다구니 쓰지 말고 지혜롭게 겪을 수 있을 땐 겪고, 또한 잘 보내주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자는 것이다.

본인들의 몸이 아프면 나이가 노쇠한 동네 의사에게도 자초지명을 대가며 하나하나 병을 설명하면서도 왜 본인의 마음에 대해선 그만큼의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에게 왜 이리 엄격한지.


그렇기에 본인의 마음에 대한 상태를 잘 인식하고 힘들어하는 것은 무엇이고 슬픈 원인은 무엇이며 이를 누구보다 지혜롭게 겪어야 하고 마지막엔 잘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상시엔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을뿐더러 가까운 지인들에게 왜 나의 이런 마을을 알아차려주지 못하느냐고 핀잔을 준 적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정말 철없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승환 작가님의 책을 읽어가며 느낀 것은 나뿐만이 이런 삶을 사는 것이 아니었구나, 사람들 다 똑같이 사는 구나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마음이 아플 때도 있었고 흔들거리며 바람에 쓰러질 듯이 나부낄 때도 있었던 것이다. 단 한 명의 인간도 고통과 힘듦 없이는 성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관통하는 에세이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에세이를 읽으며 인생의 큰 위안을 얻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러다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한 구절이 내 마음에 강렬히 각인되었는데,  

"인생은 뒤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되지만, 우리는 앞을 향해 살아야만 하는 존재다."

정말 내가 평상시 생각하던 그 문장이었다. 항상 우리는 앞을 향해 나아가지만 불확실하기에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우습게도 이런 걱정 속에 흠뻑 빠져 앞을 가늠할 수 없다 생각해도 순간은 내 곁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비로소 인생을 뒤돌아볼 때 이해가 되곤 한다.


왜 그 당시엔 이해가 되지 않았을까. 그때 이해가 되었다면 후회하는 일도 없을 텐데. 그래서 항상 생각하곤 한다. '지금, 현재'라는 개념은 실존하는 것일까? 타자를 치고 있는 순간마저도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다. 인간을 기준으로 잡는다면 오로지 미래와 과거뿐만이 존재하는 듯하다. 지금이라는 순간은 단순한 기준이 되어버리고 찰나 같은 순간은 이미 지나가버리고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에서 후회할 수가 없다. 오로지 뒤돌아볼 수밖에 없으며, 과거 속에서 후회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래를 알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니 논외로 두고, 과거를 후회하는 일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십수백 수천 번의 후회를 그저 스쳐보네기만 해선 안된다. 작가님은 후회를 통해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후회의 빈도를 줄이고, 더 좋은 후회를 하여야 한다고 하신다. 그래, 좋은 후회. 무엇인가 모순적인 것 같지만 후회를 할 바에는 차라리 좋은 후회가 훨씬 나을 것이다.




아직 책을 완독 하진 못했기에 더 짬을 내서 열심히 읽을 생각이다. 그러나 내가 하나 확신하는 것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기에 충분한 책이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시간이 난다면 풍경 좋은 카페에 가서 향긋한 커피 한잔과 책 한 권의 풍미를 느껴볼 생각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다면 책 제목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알 수 있을까?

걱정 반 기대반으로 오늘도 책을 펼쳐본다.

작가의 이전글 울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