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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10. 2024

당신이기에, 당신아

사랑을 끝낸 당신이기에 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

사랑은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한 덩어리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각자의 이야기일 뿐이고 그래서 슬프고 충분히 쓸쓸하다.

- 이병률 「그리고 행복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신은 아름다운 사랑을 한 적이 있는가. 사랑이란 것은 우리 도처에 존재하며 이와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도처에 존재하는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 즉 부모님과의 혹은 친척들 간의 유대감이 넘치는 사랑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친구들과의 사랑, 사회와 인종을 넘어선 사랑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현대인들은 사랑하기에는 턱없이 여유가 없다. 항상 업무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며 어이없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치이게 되어 사랑(愛)을 느낄 새도 없이 혼자가 되어 외로움에 사무치게 된다.


내가 자주 가던 오도리해수욕장의 한 카페를 들러, 이병률 작가님의 책을 하나 읽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여러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 내려간 작가님의 책을 읽고 있자니 내가 알고 있던 사랑의 의미와 식물형 또는 동물형 인간의 개념도 다시 알게 되었다.


사랑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저 사람과 사람을 사랑하며 그 끝에는 생명잉태를 통한 유전자 전달이라는 것은 정말 생물학적인 목적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나의 세상에 다른 이가 융합되는 고결한 자세이며 또한 다른 이의 세상에 내가 융합되는 아름다운 형태를 의미한다. 그런 사랑의 의미에 한 번이라도 동화되었다면 당신은 사랑할 자격이 있고, 동시에 사랑을 받을 자격도 있는 거다.


하지만 사랑의 형태는 왜곡성과 변질성이 강하여 상당히 취약한데, 요즘 다양한 매체에서 흘러나오는 스토킹 관련 범죄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듯이 본인이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태도가 상대방을 억압하고 마음의 유리창을 산산조각 내는 것이다.


당신이 잠시 머물다 가는 이 별에서의 나는 추워하는 사람 하나 데우는 의자면 어떨까, 땀 흘리며 모래먼지 같은 꿈에 쫓기는 사람 하나 식히는 그늘이면 어떨까 싶다.

아름다운 사랑을 했다면 위의 구절처럼 추워하는 사람 하나 데우는 의자, 땀 흘리는 사람을 식혀주는 그늘처럼 은은하고 배려심 넘치는 자세가 되어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현실세상에 은은함과 배려심만이 넘치는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나로 예를 들자면 나는 충분히 어른스러웠다고 생각했고 속으로는 수십, 수백 번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끝에선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어찌 보자면 '나'라는 자존감이 상대방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자존감이 되지 않아 그 사람에게 오히려 상처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 꿈에 아른거리는 그대를 바라보고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함을 느꼈음에도 현실에서까지 그 기억을 가져와 현생의 나를 괴롭히곤 한다. 확실히 대답할 수 있는 건 난 아직 어른은 되지 못했다는 거다.


그 사람은 거기까진 알지 못할 겁니다. 그 풍경을 봤을 때, 그 사람을 조금 생각했다는 걸 말입니다. 언젠가 더 멋진 풍경 앞에 섰을 땐 그 사람과 함께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었는데.......
우리는 별일 없이 지나갈 겁니다.

하지만 별일 없이 지나갈 것이고, 별일 없이 지나가고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이라곤 외로워지고 말 수가 없어지고 상대방이 열과 성을 다해 이야기해도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것이나 이도 결국 별일 없이 지나갈 것이다. 그때는 항상 좋은 곳, 좋은 맛집, 좋은 카페를 갈 때마다 함께라서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다.

그게 독이 되었을까, 이제 혼자가 된 나에게는 그 모든 풍경이 눈앞에 보여도 쓸쓸함만이 주위에 배회할 뿐.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왜 파도를 당겨서 열고 들어간 사람이 파도를 버리고 빠져나오려 하는가. 당신만큼은 이번 바다에서 나를 보호자 삼아 잘 지내다 오기를, 당신만큼은 푹푹 물들었다 지상에 잘 나오기를,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랑의 파도 앞에서 당부하려고 한다. <중략> 당신이 파도였다. 당신이 높고 짙푸른 파도였다.

왜 나란 파도를 열고 들어와 온 세상을 흔들고 뒤집어 놓은 당신이 다시 그 파도를 버리고 육지로 돌아가려고 하는가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의 바다를 홀로 두고 당신은 왜 육지로 돌아가 외로운 바다를 더욱이 적적하게 만들어버리는가. 그렇게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음이 아팠고 괴로웠고 또한 증오심에 불탔다가 다시 침잠하며 스스로 자격이 없었다고 자조하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웃기게도 나는 '나'를 사랑한 적은 손꼽으면서도 '나'를 원망하고 자조할 때는 무슨 일만 있으면 또다시 '나'를 찾는지.


그러나 당신도 '또한' 바다였다. 당신 '또한' 높고 짙푸른 파도였으며 그 파도는 당신이기에. 당신이라서 파도 자체로 돌아간 것뿐이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나를 '떠나간'것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에게 '돌아간'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울게 되더라도 나는 당신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닐 것이다. 당신의 여백과 여운을 울게 될 것이다. 사랑이 끝났다는 사실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몸을 숨기고, 당신을 통곡할 것이다.

많이 울었었다. 슬픔이 가득 차서, 한 때 나에게서 멀리 떨어졌던 외로움이 다시 나를 찾아와서, 고독한 새벽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을 때가 많아서. 그러나 나는 당신 때문에 운 것은 아니었다. 당신이 나의 손가락지를 잡았을 때, 내가 힘들어할 때 당신이 진정 어린 눈동자로 바라봤을 때, 당신이 아무 말 없이 갈비뼈가 으스러지듯이 안아주며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을 때. 그 여백과 여운으로 인해 눈물을 흘렸다.


사랑이 끝났다는 것에 모든 세상이 무너질 듯이 괴로웠지만 인사이동을 통해 새로운 업무를 미친 듯이 머릿속에 입력하고 밤늦게까지 야근하고 있는 나의 현실에선 퇴근 후 혼자 박힌 방에서 희미해지고 있던 추억이 상기되며 또다시 당신을 통곡하며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며 그리워할 것이다.



그대가 떠나갈 적에 나한테 했던 마지막 말.

 "소개팅도 다시 하고, 좋아하는 사람 다시 만나서 행복하게 건강하게 지내야 해. 난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당신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차라리 싸우고 다투고 떨어질 정 다 떨어지고 헤어지는 거라면 속이라도 편할 텐데. 우린 그런 결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여운과 여백이 더 넓게 퍼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를 놓지 못해 홀로 통곡하며 있는 이 행동은 올바르지는 않다. 허나, 우리는 사람이기 전에 동물이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랑하는, 누구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사람을 돌려보내는 이 감정을 속인다면 AI로봇과 다름없기에 우린 절절히 슬퍼해야 하고 그리워해야 한다.(사회법규가 용인될 만한 범위 안에서)


그러니까 당신아, 우리는 그 페이지를 따라 여행해야 하고, 그 길에서 나 자신을 에워싼 모두를 괴롭혀서라도 영혼을 다 소모할 수 있을 때만 이번 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주인공 말고 주인이.

이병률 작가님의 책 속 구절에서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을 뽑는다면 결국 이 구절이 아닐까 싶다. 사랑은 도처에 존재하고 있고 그 사랑은 페이지를 이루어 우리 근처를 감싸 안고 있다. 당신아, 당신은 당신이기에 그 페이지를 여행해야 하며 영혼을 다 소모할 만큼 열정을 태워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맹목적인 목표를 눈 가린 경주마처럼 추구하다 보면 결국 당신은 페이지 속의 주인공만 될 뿐이다. 죽어도 좋을 사랑을 해보고 사랑을 통해 그대를 통곡하며 그리워도 해보고 여백과 여운을 느끼며 고독을 음미해 봐야만이 페이지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페이지 밖에서 인생을 달관하며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 페이지 속의 주인공의 삶을 살고 있는 듯하나, 언젠가 그대를 다시 만나 내가 하고 싶었던 말, 그대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쏟아내고 나서 가벼운 포옹 한 번만 한다면 페이지 속의 주인공에서 벗어나 주인이 되는 항로에 몸을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여리고 감정 기복 많은 30대의 나이로서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는 밤이다.


자, 나의 글을 읽은 그대들은 앞으로 어떤 페이지를 여행할 것인가. 짙푸른 파도로서의 당신아, 당신이기에 사랑할 자격이 있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먼저 무너지지는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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