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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당호수 나동선 Sep 28. 2021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우리는 누구나 한 번은 저승과 이승의 순간에 서게 된다. 그 운명의 생사여부는 오직 신만이 결정할 뿐이고 우리는 그에 순응할 따름이다.  죽음의 순간은 내가 당사자일 수도 있고 가까운 친지나 주변인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 살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온 것을 끊임없이 목격하며 산다. 이는 우리 인간만의 세상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순간도 매한가지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의 세계는 물론 풀 한 포기까지도  윗 먹이사슬의 의지가 곧 신의 뜻이 아닌가 싶다. 


        신형과 나는 매달 둘째 주 화요일을 정해 놓고 한 달에 한 번 씩 등산을 다니고 있다. 집에서 가까운 남한산성, 검단산 등을 자주 가고 가끔씩은 천호역에서 만나 한강 도보길을 따라 하남 유니온 타워까지 걷기도 한다. 천호역 주변의 슈퍼마켓에서 막걸리 두 병을 사서 등짐에 넣는 건 필수품이 되었다. 둘이서 매달 만나도 항상 할 얘기는 차고 넘친다. 고희가 다되어가는 두 남자들이 무슨 할 이야기들이 그리도 많은지 우리 둘이서의 수다는 끝이 없다. 자식들에 관한 얘기며 집안에 관한 일, 현직 시 있었던 과거사 일 그리고 요즘의 세상 얘기까지 우리 둘의 이야기 세계는 그 영역이 따로 없다. 그저 말해서 즐겁고 들어서 즐거울 뿐이다. 


        신형은 한강변 길이 너무 편하고 좋다면서 다음 달에는 우리와 가끔 어울리는 두 후배들도 초대해서 같이 걷자고 했다. 신형이 제안하고 좋다는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오늘은 일행이 김후배, 서후배까지 넷이 되었다. 년배야 몇 년 후배지 이제는 그들도 어느덧 정년퇴직한 환갑이 넘은 친구들이다. 같은 직장에서 반평생을 같이 지내서 서로의 성격이나 인품도 너무 잘 알고 있다. 언제 만나도 스스럼없이 형님이고 동생이다. 우리 넷이는 벌써 고덕 수변생태공원 입구에 다다랐다. 한강과 바로 접하고 있으면서 잡목들로 숲이 깊어 많은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숲 속의 조류 전망대에는 철새들의 종류, 서식하는 새들의 그림도 있다. 곳곳에 쉴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는 벤치며 맑은 공기 그리고 넓고 풍부한 한강물로 산책하기에 너무 좋은 장소다.


        생태공원에 들어서서 백여 미터를 지나자 앞서 걷던 김후배 하고 신형이 주춤하며 놀라 선다. 자세히 보니 이십여 미터 전방에 큰 새가 길에 누워 퍼덕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길옆 숲으로 숨는다. 자세히 보니 깃털이나 주둥이로 보아 다자란 왜가리 새끼다. 그런데 다리 하나를 크게 다쳐서 질질 끌고 있고 날개도 다쳤는지 날지를 못했다. 숨을 헐떡이며 초롱초롱 눈을 뜨고 있는데 젖어있는 깃털 위로 수십 마리의 쉬파리 떼가 붙어 왱왱거린다. 


        우리 네 사람 모두 말로 표현은 안 했지만 그 마음들만은 측은지심이 가득하다는 것을 이심전심으로 안다. 서후배가 조류 보호소에 전화를 하니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김후배가 구청 환경관련과에 전화하니 전화받는 이가 이곳 생태공원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자기한테 묻고 있다는 것이다. 서후배와 내가 기다리는 사이 신형과 김후배는 관리사무소에 가서 신고하고 왔다. 


        우리 넷이는 이곳 생태공원에서 가장 아늑하고 조용한 벤치에 둘러앉았다. 집에서 각자 가지고 온 과일이며 천호동에서 사 온 막걸리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은 너무 짧을 뿐이다. 자연히 관리사무소에 신고하고 온 이야기가 한창이다. 신형이나 김후배의 마음은 새의 상태가 안 좋아서 그냥 놔두면 죽을 것 같아 빨리 조치를 했으면 하고 신고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신고를 받은 삼십 대 후반의 여직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 성의 없는 표정으로 한 번 둘러보겠다고 했단다. 이십여분 쯤 지나니 그 여직원이 카메라를 메고 우리가 있는 벤치를 지나가고 있었다. 아까 신고한 새는 어찌했느냐고 물으니 이제 둘러보러 간단다. 우리 넷은 저 여직원은 정말 성의 없이 마지못해 일하고 있다는 등 적극성이 전혀 없다며 한참 성토를 했다.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다시 새가 있던 곳으로 가서  조치를 했는지 확인해 보고 가자고 했다. 가서 확인해 보니 새는 더 깊은 숲 속에 숨어 있었고 다친 그대로 죽어가고 있었다. 무심한 쉬파리 떼는 아까보다 더 많이 달라붙어 있었고...  우리는 역시 성의 없는 그 여직원이 새를 더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우고 아무런 조치도 없이 갔다며 무책임한 직원이라고 비난했다. 다시 우리는 넷이 모두 관리사무실로 가서 그 여직원을 만나서 따지다시피 왜 아무런 조치도 않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 여직원은 의외로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런 신고는 늘상 자주 들어온단다.  그때마다 자기들이 새의 상태를 확인한 다음 구조해서 조류보호소 등에 보낼지 말지를 판단한다고 했다. 이번에 우리가 신고한 왜가리 새끼는 자기가 확인해 보니 다리 하나와 날개를 너무 크게 다쳐서 구조를 해도 살 것 같지 않았다고 했다. 그 새는 조류 보호소 등에 갔다주더라도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자연사하게 내버려 두었다고 했다. 


        그녀의 경험에 의한 냉담하면서도 확고한 설명에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을 잊고 있었다.  다시 한강변을 걸으며 우리는 그녀의 설명에 나름대로 일리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렇지. 구조되더라도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은 자연사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것 같다고. 사람이고 동물이고 모든 생명체는 한 번은 죽는다. 그게 운명이다. 살고자 몸부림치던 그 왜가리 새끼의 초롱초롱했던 눈망울이 눈에 어른 거린다. 그 위에 왱왱거리던 쉬파리 떼들의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오버랩되어 온다. 어쩌랴 운명인 것을. 너의 그 모습을 처음 발견한 우리도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에 연민의 정만 가득할 뿐이다.


       예수님 마저도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시는 순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 27장 46절) 하셨는데  필부인 우리가 그 죽음의 운명을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미물인 왜가리 새끼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 것인가?  "죽게 놔두는 수밖에 없어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그 여직원의 나지막하면서도 단호했던 말이 며칠이고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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