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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당호수 나동선 Sep 28. 2021

떠나는 것들을 무엇으로 채울까?

      살면서 정말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 空手去).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세상 말입니다. 이제까지 내 곁에 있는 것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나둘씩 떠나가고 있습니다. 내가 어떤 의도를 가졌거나 역할을 한 바도 없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이제 주변을 살펴보니 떠나가는 모습이 하나둘씩 눈에 보입니다. 그때는 그것들이 소중하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일상의 것들이 내 곁을 떠나고 나니 그 공간이 이렇게 크다는 걸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때 조금만 더 신경을 쓸 걸, 좀 더 잘해줄 걸,  더 겸손할 걸, 지난 일들이 한결 같이 ~할 걸 하는 후회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1   나는 사십 대 초반 때 연세 많으신 대 선배님과 같이 일본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다른 일행과 달리 그 선배님은 한사코 같이 사진 찍기를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자네들도 내 나이가 되면은 알게 될 거야"하시면서.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 자신도 어딜 가면 사진 찍기가 싫어졌다. 가능하다면 그 사진 찍는 순간만은 피하고 싶어 진다. 사진 속 내 모습은 볼수록 실망스러움만 더해간다. 어쩔 수 없다는 체념으로 변해간다. 어쩌다 사진을 찍을 때는 의도적으로 더 웃는 모습을 지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사진 속 내 모습은  찍기 전의 의도와는 너무도 다르다. 웃고 있다는 것이  어색함 그 자체다. 사진 속 금년의 나는 작년과 또 차이가 난다.  갈수록 중년 때의 모습마저 저 멀리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간다. 


☞2   "저는 금년을 마지막으로 이목회장직을 내려놓겠습니다."  나는 퇴사한 지 벌써 수년도 넘었지만 삼 년 전까지만 해도 현직 때부터 이어져온 골프회 모임에 참석하곤 했다. 그런데 그 골프회를 맡아 이십 년 가까이 이끌어 오던 오 회장이 나를 비롯해서 초기 멤버들한테 보낸 메시지다.  2000년 초 여름 어느 날부터 우리는 부장들 몇 명이 이목회를 만들어 한 달에 한 번씩 운동을 하고 있다. 당시 오 부장이 회장을 맡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처음 시작에는 두 팀(8명)으로 시작했는데 차츰 퇴직한 분들이 동참해서 많을 때는 여덟 팀(32명)이 참석한 경우도 있었다. 오 회장의 끊임없는 노력과 훌륭한 리더십 덕분이었다. 그런 그가 회장직을 내려놓고 이제 후배들한테 맡긴단다. 초창기 멤버들이 언제부터인가 하나둘씩 빠지더니 이제는 모두 참석치 않고 객들만 남았단다. 나도 물론 3 년 전 위암 수술을 받은 뒤로는 참석치 못했다. 사임한다는 의지가 확고하니 만류해도 소용없다. 이렇게 이목회는 내 곁을 떠나가고 있다. 


☞3   최근 일주일 사이에 부고 알림을 여섯 건이나 받았다.  단 하루 빼고 거의 매일이다. 모두 가까운 지인들이거나 그 부모님들이다. 요즘 아침에는 영하 12도로 날씨가 몹시 추워졌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심하다 보니 노인분들이 견디기가 더 힘든 것 같다. 더구나 코로나19까지 대유행으로 요 며칠 사이 확진자가 천명을 넘고 있으니 우리 삶은 더 힘들고 고달프기만 하다.  마스크 쓰는 일은 이제 우리 삶에 필수요 의무가 되었고 5인 이상의 모임도 금지한단다. 모든 활동이 제약과 속박 속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살아있는 자들의  삶이 이럴진대 망자들의 마지막 순간은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고인 중에는 내가 부장으로 모셨던 박 부장님도 계신다. 코로나로 문상도 가지 못하고 아들에게 위로의 문자를 보냈다. 회신은 살아생전에 다하지 못한 효도로 큰 자책감과 후회로 가득하다. 후회스럽고 죄스러운 마음이 어디 당신뿐이겠는가? 언제나 조용하고 훌륭한 인품을 지니셨던 분인데 너무나 아깝고 그립다. 팔십도 되기 전에 이렇게 내 곁을 떠나셨다.   


☞4   며칠 전에는 모 은행으로부터 카드 갱신을 종료한다는 문자가 왔다. 현역 때 같으면 자주 사용했을 텐데 실적이 없으니 자동으로 해지가 되는 듯싶었다. 시간이 갈수록 활동영역은 좁아지고 만나는 사람은 적어진다. 나는 가급적 옛날 사용했던 카드는 기회가 되면 가끔씩 사용코자 했다. 직장이 없으니 이제 은행에서 신규로 카드 발급도 해주질 않는다. 그런데 아내는 뭐하러 연회비 내면서 여러 카드를 사용하느냐고 불만이다. 내 뜻과 상관없이 그간 지녔던 카드마저도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가고 있다.  


        떠나가는 것들을 무엇으로 채울까? 정녕 채울 수는 있기라도 할까?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것이라곤 없다. 그런데 인생 한 바퀴를 다 돌고 칠순이 돼가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다. 눈감아 보니 내게도 아직 하나는 남은 게 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내 안의 내면세계다. 젊은 시절의 패기와 용기는 사라졌어도 내 안의 마음만은 여전히 청춘이요 활화산이다. 주변에 보이는 것들이 시나브로 하나씩 하나씩 떠나간다. 떠나는 것들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댐이라면? 철조망이라면? 가둬지고  막아질까? 그러나 오직 나만의 세계는 아직도 내 안에 그대로 살아남아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만의 것이 오롯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이. 그것도 싱싱한 채로.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이런 하찮은 이야기라도 내 마음껏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  이건 하나님이 내게 주신 큰 축복이요 행복이다. 이제는 내 곁에 있는 것들이 하나둘 슬픔과 아쉬움으로 떠나더라도 과거로 묻어야겠다. 떠나가는 것들을 어쩌랴.  어차피 공수거(空手去) 아닌가?  지난날의 후회스럽고 슬펐던  추억마저도 즐겁고 아름다웠다고 생각하자. 내게 남은 삶을 더 아름다운 내면세계로 한가득 채워나가자.  내 코 끝에 숨이 멈추는 그  순간까지 푸른 창공처럼 맑은 정신의 세계가 내 안에 가득하기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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