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잎클로버가 생기는 과정을 아세요?
며칠 전에는 제설을 한다고 해서 따라 나갔는데 진짜 정말 못 참을 정도로 몸이 안 좋아지길래 부끄럽지만 바로 들어왔다. 작년에 삽 들고 다니면서 전대 주변 눈을 신나게 퍼 나르던 내가 일 년 만에 이렇게 되다니! 그날 느낀 감정으로는 아 내가 약간.. 부러졌구나! 근데 식물들을 보면 그렇다. 올곧게 자라기 위해 식물에게 가지치기는 필수다. 한 방향으로 곧게 자라서 높은 방향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도록, 나뭇가지의 일부를 자르고 또 다듬는 일을 반복하면서 가지치기를 '당한' 나무는 가지치기를 '당하지 않은' 나무보다 더 강하고 튼튼하게 성장한다. 늘 많은 생각을 한다. 인생에 굴곡이 생기거나 시련이 생길 때 했던 생각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힘들었던 순간마다 이것 또한, 아 이것 또한이라는 말을 되뇌며.. 어느 때에는 그 말조차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깊은 우울에 빠져든 적도 있었지만. 덧붙이자면 이게 끝나기는 할는지 싶을 정도로 힘든 순간도 있었다. 삶의 모든 순간마다 결정을 하고 또 선택을 하면서, 다시 돌아가도 다른 선택은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결정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선택에 대한 이상한 미화가 생겨서 그러는지 자꾸 '그랬다면?'과 같은 가정을 하게 된다. 내가 했거나 당한 가지치기가 옳았나 와 같은. 내가 영위하는 오늘과 선택되지 않은 과거를 놓고 비교를 해봐도 남는 건 감정에 대한 낭비일 뿐, 이라고 적다가 지금 생각난 것은 미래의 내가 선택함에 있어 조금 더 나은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식견을 가질 수 있다는 그런 정도의 장점이 있지 않을까, 하고 문득 생각해 봤다. 뭐 어쨌거나 모든 순간마다 쉬운 결정은 없다. 그리고 쉬운 가지치기는 없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사람과 저녁을 먹으러 갈 때도 어느 식당이 맛있는지, 거리는 어떤지, 평점은 어떤지 별별 내용을 다 따지면서 아 걔가 좋아하는 취향이 어떤 거였지 예전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술을 좋아하는 걔랑 가기 좋은 장소가 맞는지, 술을 못 먹는 나와도 어울리는 식당이 맞는지에 대한 내용까지 충분히 고려를 하고 약속을 정한다.(물론 나의 선택지는 늘 6번, 아무거 나이지만) 늘 6번을 고를 것을 아는 나의 주변 사람들은 그냥 정말 본인들이 좋아하면서도 내가 물개박수를 칠 수 있을 정도의 식당으로 나를 데려간다. 100이면 100, 나는 늘 만족이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의 약속 사이에서는 적정한 타협을 찾아가며. 우리는 하루에 몇 번씩이나 작은 가지치기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아침에 몇 시에 출근할까? 차에 시동을 몇 분 정도 틀어놓을까.. 지금 2층을 가볼까 말까 3층을 가볼까 말까 엘리베이터를 탈까 말까 와 같은 모든 때에는 선택이 상존한다. 가끔은 이 말을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와 같은 선택도 한다. 이 말을 해서 후련할까? 아닐까? 와 같이 늘 내 마음에 기대어 판단하지만 어쨌든 거의 대다수의 선택지는 어느 방향으로든 내가 덜 신경 쓰이는 방향으로 선택한다. 아마 내가 한 선택으로 만들어진 오늘이 나에게는 최선의 하루였을 것이고, 내가 어떤 하루를 살았든 어쨌거나 과거의 내가 자라서 오늘의 내가 되었으니 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는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조금 부러졌어도 가지치기를 하면 더 튼튼하게 자랄 수 있는 나무들처럼 나도 조금 부러졌어도 멀리 보면 더 튼튼하게 자라는 것 아니겠냐고. 결국 내가 고른 선택지는 모든 순간이 정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쳐낸 가지들은 삶의 부속물이었을 뿐, 주류는 아니었을 것이다. 혹여나 내가 고른 답이 오답이었어도 노트에만 적어놓고 가끔 복기하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덧. 네잎클로버가 어떻게 생기는지 아세요?
사람들이 지나가며 밟거나 외부에서 생긴 공격에 의해 클로버가 상처를 받을 때, 클로버가 성장하면서 생장정'이라는 곳에 상처를 받는다고 해요. 그곳에서 잎이 자라서 네잎클로버가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어떤 생채기는 또 다른 행복을 가지고 올 거라고 믿으며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