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기대어
작은 노트를 만들었다. 필사노트를 만들고 싶어서 직접 오리고 자르고 구멍을 내고 바인딩을 했다. 투박하게 잘린 모습이 꼭 나 같다. 덤덤하고 담담하게 생긴 게 꼭 그래. 아무튼 오늘은 글을 쓰고 싶어서 굳이 나왔다. 이런 일이 있었다. 그 일의 자초지종을 듣고 싶어서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계속 시선을 피하고 눈가가 촉촉해지길래 피곤한가 싶었는데 갑자기 우는 거다. 너 이렇게 울면 내가 울린 줄 안다고 하면서 토닥이는데 걔 우는 모습 보니까 또 마음이 짠해져서 눈물 나려고 하는 거 꾹 참았다.(주책바가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어느 외딴곳에 던져진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많이 울었다.(지금은 안 우는 척)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런 걸로 힘들어했지 싶지만 그때는 하나하나가 너무 크게 다가왔으니까. 하나하나 대답해 주는데 또 손을 들고 또 궁금한 게 있습니다, 해서 대답을 해주고 또 궁금한 게 있다길래 또 대답을 해주고, 또 궁금한 게 있다길래 왜 이런 걸 물어보지 싶었는데 진짜 몰랐던 거다. 혼자 아하 아하 하면서 이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니 고생깨나 했겠다 싶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도 언젠가 "내가 원하는 걸 네가 맞춰봐"의 시기를 지나고 굳이 그렇게 힘들게 배울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이 들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내 마음도 모르는데 네 마음을 알면 내가 사실 돗자리를 펴는 게 맞지 여기서 문서를 만드는 게 맞을까요, 하는. ‘내가 바라는 걸 네가 만들어와’라든지 '내가 무슨 생각했는지 맞춰봐'의 업무가 소모적이고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배우기 위해서 그런 순간들도 필요하다고 하지만 적어도 배우려는 의지가 꺾여 사라지지는 않도록 옆에서 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업무를 지시할 때 방향만 명확하게 짚어주면 된다. 잘못 가고 있으면 다시 바른 길로 인솔하는 것은 관리자의 몫이다. 업무를 떠먹여 주고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그때 평가 하면 된다. 이 사람은 씹어 넘기지도 못하는 사람. 알려주지도 않고 이미 많이 배운 사람의 눈높이에서 너는 왜 이걸 모르냐며 타박을 하면 마음이 더 굽는다. 차마 펴지지 못할 정도로. 종이를 구겨버리면 아무리 펴도 작은 구김살이 있듯 일할 때 너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버릇하면 아마 영영 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네 업무 네가 하고 네가 책임지라는 말 자체가 이제 막 들어온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포로 다가오는지 알까. 사람들은 다 똑같은 과정을 겪어놓고는 그때 그게 두렵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똑같은 상황을 답습하듯 만들어낸다. 내가 겪은 걸 너도 똑같이 느껴보라는 놀부심보인 걸까. 언젠가 결재선을 잘못 지정해서 손톱만 물어뜯으며 누가 툭, 치면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을 때 J선배가 뭔데 하면서 결재선을 수정해 줬었다. 이거 이렇게 빼서 하면 된다고. 근데 그때 그 선배 뒤에서 빛 같은 걸 봤다.(신흥 종교의 탄생) 그래서 처음 만났던 선배와 옆 자리 주무관님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한글을 다루는 법, 단축키를 쓰는 법. 어떤 체계를 이용하는 법과 같은 것들을. 그때 주무관님이 몇 번씩 튕기면서 내가 군생활 하면서 스스로 깨우친 건데~ 하면서 온갖 비싼 척은 다했지만 결국 내 빠른 손은 그 주무관님으로부터 나왔다. 많은 것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분이 퇴직하실 때 그렇게 많이 울었다. 아니 뭐 나 죽는 것도 아닌데 뭐 이렇게 우냐고 주무관님이 당황할 정도였다. 진짜 그때는 마음에 구멍이 난 것 같았다. 내가 처음 경위서를 써야 할 때 선배가 나와 함께 따라 나와서 나를 달래주던 날들도 기억이 났다. 선배에게 뭐 하나 보고하다가 잘못한 게 하나 걸려서 된통 혼나긴 했지만 선배는 지금까지도 나에게 이정표가 되어준다. 어렵게 일을 배운다고 해서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쉽게 알려줘도 두 개를 배우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내가 뭘 알려줘야 하는 상황이 되면 먼저 알려주고 믿어보고 결정할 것 같다. 왜냐면 조금이라도 더 잘 아는 내가 더 여러 측면으로 더 여유로운 상황일 테니까. 평가하는 사람보다 격려하는 방향이 더 좋지 않을까. 이미 삶은 늘 너무 팍팍하고 힘들어서 다른 걸로 소모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냥 의미 없는 육탄전이랄까. 구멍 난 마음을 메꿔줄 자신이 없다면 적당히 해야 한다. 나는 잘했어 잘했어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왜 이렇게 했어? 설명해 봐 네가 나를 설득해봐 와 같은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며칠 전 K선배랑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다. 업무는 설득시키는 게 아니라고. 그냥 원칙대로 하고 결과로 증명하면 된다.(707 인척) 물론 언젠가의 나 또한 감정에 호소하고, 즙을 짜면서 업무를 어렵게 했던 때도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아니 사실 겁나 많이 얘기함) 고백한다. 본인이 가진 편견으로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꺾지 않았으면 좋겠다. 편견을 굳이 전염시킬 필요가 없다. 그리고 조직에 있어서 어떤 사람의 입맛을 맞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사람은 나와 입맛이 딱 맞는, 엄마가 끓여준 국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러니 지금 좀 힘들어도 언젠가는 진짜 좋은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킵고잉. 기약 없는 희망에 지친다면 내가 어디에 있든 언제나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비빌 언덕 만들어서 지내면 된다. 내일 기대되는 일기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