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한주소회 09화

주눅 들지 말아야 하는 이유

불과 몇 년 전 이야기

by 염미희


나 그쪽이 글을 너무 못 써서 놀랐어요.

그쪽 스스로가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서요.

부끄럽지 않아요?

라는 말을 들었었던 때에 대한 이야기다.



직업 특성상 매년 자리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는 일을 배우는데 한두 달이 걸렸다. 한두 달이 갓 넘은 시점, 어떤 선배가 나를 찾아왔다. 일을 너무너무 못해서 화가 나서 찾아왔단다. 나에게 친한 선배가 있는지 묻는다. 누구를 말한다. 걔는 개나 소나 친하게 대해주는 애라서 친하게 지내나 보네. 면전에서 눈하나 깜짝도 안 하고 나쁜 말을 내뱉던 그 사람. 블로그도 한다면서? 글을 너무 못 써서 놀랐어. 그걸 사람들 앞에서 내뱉는다. 사람들과 주고받은 선물들도 기억하고 싶어서 올려놓은 것을 보고는 관종년이라고 함부로 말하고 다니던 그 사람. 그 사람이 나가면 나는 언제나 울었다. 어떻게 말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끔은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정신건강의학과도 찾아갔다. 의사 앞에서 엉엉 울면서 잘못한 게 있으면 그것만 지적하면 되는데 자꾸 인신공격을 당하는 게 견디기 힘들다고. 너무 모욕적인 말을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고 나가는 게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사무실에서 그 사람이 나가고 난 뒤 어떤 분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고민 중이라고 대답했다. 고민하지 말고, 그만두지 말라고 말하는 거란다. 근데 너무 힘들어서 못 견디겠어요,라고 말하니 과거 본인이 함께 근무하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쪽이랑 너무 닮은 사람이었다고. 되게 쾌활하고 명랑하고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거 좋아하고 늘 하하호호하던 사람. 근데 비슷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말했다고. 그렇게 그만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사람의 부고를 들었다고 했다. 그만두지 마세요.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며 나에게 늘 초콜릿을 주시던 그분.


지금 생각해도 상대방의 인성에 결격사유가 있었던 것인데 나는 왜 그때 땅굴을 파고 들어갔을까. 그 사람이 사무실로 오면 늘 숨었다. 숨으면 꼭 내 자리까지 와서는 무슨 일을 하냐고 묻고, 그 일 할 줄은 아냐며 비꼬고 또 비아냥거리는 말을 들으면서 일했다. 어디 가서 일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일 너무 못하니까. 진짜 ㅋㅋㅋ 안 부끄러워요? 라며. 매일 와서 그런 말을 했다. 내가 못 견디고 죽으면 너. 너 이름 두 글자는 꼭 적는다. 그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사무실에서 늘 괴롭힘을 당했다. 복도에서도, 휴게실에서도 마주치면 나에게 한 마디씩을 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내가 인사이동으로 그곳을 떠나는 날 그 사람이 나를 휴게실로 불렀다. 너에 대해 뒷조사를 좀 했어. 근데 너랑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이 다 너 안 좋아했다던데? 그래도 나는 사람 평가하지 말아야지 하고 너를 대했는데 정말 예상대로 일을 너무 못해서 정말 사람들이 싫어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했다니까. 아무튼 뒷조사했던 대로 일을 못 해서 그냥 그렇게 대했던 거니까 마음에 뭐 남기지 말고 갔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하. 정말 그 말을 듣는데 분노가 치솟아서 얘를 이 자리에서 목 졸라 죽여도 합법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2년 뒤에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나 누군데 기억하냐며. 어떻게 잊겠어. 아, 네, 기억한다니까 여전히 자기에 대한 마음이 좀 그렇냐며 묻는다. 그 사람은 이렇게 틀어진 사람이 처음이라서 이제라도 잘 지냈으면 좋겠고 이제부터 나한테 안부연락 좀 하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그 사람이 미쳐버린 걸까 궁금했다. 있는 힘껏 불행했으면 좋겠다고 자주 기도했다. 그냥 사는 내내 그 사람이 불행해서 못 견디게 힘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화로라도 사과했었어도 받아줄까 말까였는데 네가 잘못했던 건데 나를 여전히 미워해? 근데 나 여태까지 이렇게 틀어진 게 너 하나밖에 없으니까 네가 안부연락 좀 하고 지냈으면 좋겠다,라는 말은 대체 어떤 사고방식으로 살면 그렇게 되는 걸까.


그런 일을 겪고 처음에는 주눅이 많이 들어하던 일도 못 하고 말까지 더듬게 되었다. 그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 나는 타 부대에서 평가도 좋게 받고, 한 해의 마무리를 짓는다는 상여금 부분에서도 최고 등급을 받는다. 2년이나. 그 이후로 매년 표창은 두 개씩 받았으며 전 조직에서 딱 4명만 선발하던 장관상까지 받았다. 조직 내 개인/팀 공모전에서도 두 번이나 수상을 했다. 그리고 글을 꾸준히 써서 결국 브런치 작가도 선발되었고 문예공모전에서 수상도 하게 되었다.


그때 내가 글을 못 쓴다는 말을 듣고 주눅이 들어 글을 적지 않았다면, 일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직장을 그만뒀거나 사람들을 멀리하고 지냈다면 나는 오늘날 아무것도 못하고 동굴 속에서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내가 가진 재능이나 잠재력을 꾹 숨기고 살았을 것이다.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서 모난 년들이 하는 말에 흔들리지 말고 네가 하던 거 그냥 열심히 해, 그럼 진짜 언젠가 빛을 볼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상처받지 말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깟 거는 너를 전혀 흔들 수 없다고. 아무것도 믿지 말고 꾸준히 무언갈 해내는 너만 믿으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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