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한주소회 07화

주제파악에 대한 고찰

주제를 모르세요. 부디

by 염미희



과거 나는 여러 실패로 인해서 한계를 알고 주제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과거 일기에는 나 스스로 주제 파악을 해야 한다며 이런 글을 적었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주제를 알아서 자신의 한계는 여기 까지라며 선을 긋고 그 아래까지만 뛰는 사람들이 있다.(그중에 하나가 나였다.) 마음은 아프지만 여러 실패와 많은 좌절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게 최선이다. 삶을 대하는 최선의 태도가 그렇다는 것이다. 망망대해에서 우연히 발견한 배 한 척에 금은보화가 들어있을 확률과 오랜 시간 걷다가 정말 죽을 것 같던 사막에서 우연히 발견한 오아시스, 그 오아시스 안에 있는 물을 먹고 아무 일이 없거나 되레 힘이 펄펄 났다는 이야기는 정말 드라마 속에나 있을 일이다. 이혼한 외국 작가 한 명이 카페에서 쫓기듯 적은 소설 한 편이 대흥행을 해서 전 세계 사람들이 그녀를 알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떤 삶은 동경을 뛰어넘어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 또는 가능한 일로 나뉘는데 이것은 각자의 성장배경에 따라 확신과 불확실이 나뉜다. 예전에는 그런 꿈을 꿨다.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고 늘 행복할 수 있는 삶. 살아보니 세상에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주제를 알아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멀쩡하게 근무하고 있는데 나에게 평가권으로 협박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매일매일 폭언을 듣고 죽을까 말까에 대한 기로에 서있기도 했으며 또 어떤 병을 얻고 그 병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기도 하는 여러 변수 가운데에서 나는 이렇게 살아남아 글을 적는다. 그 많은 변수를 다 이겨내고 결국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끔 나도 그런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꿈을 꿨다. 되게 달콤한 꿈이었다. 그런 일대기를 들으면 온갖 시련과 좌절들은 성공을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그런 이야기들은 늘 마약 같았다. 언론이나 기사, 매체를 통해서 전해지는 성공스토리를 따라 하다 보면 나도 그 성공의 첫 시작에 발을 디딜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이상을 좇다 청춘을 다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 세상은 자극적이고 멋있고 화려한 것만 찾으려고 하니까 나의 실패는 가장 밑바닥의 삶 같았다.


여러 실패를 해봤다. 재수를 해서 어디 대학을 갔다. 자율전공으로 학교를 갔는데 2학년이 되면 학과를 선택할 수 있었다. 다들 입결이 높은 과를 선택했는데 나만 다른 과를 선택했다. 언론과 관련된 과였다. 동기들은 나보고 왜 굳이 그 과를 선택했는지 물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입결 높은 곳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하여 이방인, 학력을 조금이라도 높이지 못한 특이한 재수생이라고 말했다. 그곳에서 교수님들은 유난히 열심히 하고자 하는 나에게 가끔 열정페이를 강요하며 출판사나 자기가 꾸릴 회사로 들어오라고 했는데 월급은 80만 원이었다. 식비도 포함이지, 라며. 너희를 알려주는 거니 사실 돈을 받는 게 맞는데 주는 게 어디냐며. 차근차근 올려주겠다며. 나름 곤조가 있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그 회사에 들어가긴 아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당돌했다. 주제파악을 못 하는 순간이었다. 사회생활을 해본 적도 없는 게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교수님에게 아, 저는 그 직장 가고 싶지 않다고 말을 하다니.


그 직장으로 들어갔던 선배들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100만 원 언저리의 돈을 받으며 월급을 가장한 열정페이를 받으며 일을 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에게 열정페이라든지 청춘을 갈아 일해 보라던 사람들과 인연을 끊었다. 학교를 다니며 군에 대해 꿈이 생겼었다. 군대를 들어가기 위해 어떤 동아리에 들어가게 된다. 그 동아리를 맡으셨던 교수님이 학생들의 능력을 자꾸 후려쳤다. 우리 학교에서는 어떤 신분들은 나올 수 없으니 이쪽으로 지원을 하고, 사람들을 많이 뽑는 어디를 지원해라. 그때 나는 주제파악을 못 하고 유일하게 혼자 다른 곳의 다른 신분의 시험을 치게 된다. 그렇게 합격을 하게 되었고 교수님은 나에게 끊임없이 연락을 했다. 와서 강연을 해달라, 어떻게 붙었는지 이야기 좀 해달라, 꾸준히 전화가 왔다. 나는 내가 가진 자료들을 전부 보내주고 번호를 차단했다. 나의 능력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너는 이 정도까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보기 좋게 좋은 방향으로 성장해 나가자 다시 연락을 해서 잘 된 너의 덕을 보자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할 수 있는 선까지만 해주고 사람들을 그렇게 쳐나갔다. 그때 나는 주제파악이 뭘까, 생각했다.


가끔 직장생활에서 나의 주제를, 나의 한계를 정해주는 사람들은 만난다. 너는 여기까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이야. 주제파악을 할 줄 알아야지. 나도 대학시절에는 주제 파악을 하는 사람이기도, 주제 파악을 못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직장에 들어와서도 어떤 때는 주제파악을 하기도, 또 못 하기도 했다. 그런 여러 면을 거치고 살아온 결과 느낀 점은 나 스스로 주제파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못하는 것이 있으면 해 보고 그때 못 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됐다. 지레 겁을 먹고 못하겠다, 라든지 나는 이 정도까지만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리는 순간 나는 정말 그 정도까지 밖에 못 하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나는 당신이 주제파악을 못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사실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내 주제를 모르고 높은 곳으로도 뛰어보고, 내 주제를 모르고 어려운 일도 맡아보고 내 주제를 몰라 실패도 많이 해보고 시련도 겪어봤으면 좋겠다. 주제파악을 못 한 덕분에 이따금씩 즐겁게,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그냥 조금이라도 어릴 때 많은 것을 해보고 못 할 것 같아도 그냥 해봤으면 좋겠다. 그게 업무든 일이든 직장이든 사랑이든 인간관계든. 그래서 언젠가 풀 썰이 많은 할머니가 되었을 때, 나는 내 주제파악을 하지 못해서 덕분에 너무 많은 일을 해보았고 그 결과 이렇게 이야기보따리를 매일매일 푸는 할머니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남들이 그어주는 한계선 아래로만 뛰지 마세요.

스스로 주제 파악하지 마세요.

우리는 의외로 대단한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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