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한주소회 08화

나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방법

작지만 차고 넘치는 낭만들에게,

by 염미희


군생활 10년 차. 이따금씩 생기는 이벤트를 웃으며 넘기다가도 가끔 답답하거나 싫어했던 모습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를 참지 못 한다. 사람을 보며 늘 연구한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그 사람은 왜 그랬지? 근데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할까 와 같은 고민. 아주 오래전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늘 불행해지길 바랐다. 이유 없이 괴롭히고 폭언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 사람들은 내 소설 속에서 아주 불행했고 그 사람들은 내 소설 속 주인공을 괴롭히는 조연들의 모티브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캐릭터화해서 보다 보니 그렇게 쉴 새 없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신기하게 느껴졌다. 진짜 괴롭히는 것에도 열정이 있어야 저 정도로 괴롭힐 수 있을까? 경이롭기까지 했다. 저 사람은 나중에 어떤 벌을 받을까, 본인이 불행해질까? 남은 삶이 진짜 지독하게 불행했으면 좋겠는데 어떤 삶을 살아야 불행해질까? 와 같은. 공교롭게도 괴롭혔던 사람들은 크고 작은 벌을 받아 각자의 삶의 모양을 겨우 지켜내며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나는 그런 불행함을 겪지 않았는데? 안도해도 그게 언젠가 발현될 거라고 믿는다. 저주하는 건 아니다. 결과론적으로 대부분 그랬으니까.

나는 내가 행복하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바라지는 않았다. 다만 저 사람도 나만큼이나 힘들었으면 좋겠다, 정도의 불행함을 빌어주고 곧 잊었다. 그 잊힘은 그가 불행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이후로 자주 삶의 표면 위로 올라왔다. 알음알음 전해 들게 되었다. 그렇게 불행하다니. 그렇게 불행한 와중에 그 사람들이 업보로 돌려받는다고 생각하길 바랐다. 그래서 나한테 가끔은 미안했으면 좋겠다로 생각이 마무리되었다. 사실 그렇게 불행함을 전해 들어도 큰 감흥이 없었다. 누군가의 불행함이 나에게 구원이 될 수 없었다. 그가 불행한 것과 나의 행복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다만 그저 약간의 후련함과 그곳에서 갑작스레 발현되는 이상한 동정심과 미묘한 감정들이 얽히면서, 찰나였지만 미워했던 나 자신도 반성까지 하게 되는 순간을 경험한 이후로는 타인의 불행이 나의 완벽한 행복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남을 미워하기보다는 나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해보자, 는 생각을 한 게 몇 년 되었다. 그렇게 글을 더 자주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전속이라는 핑계로, 일이 많다는 핑계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늘 뒤로 미루며 살아왔다. 그게 배움이든 여행이든 사랑이든 공부든.

그렇게 운동을 배워보기 시작했다. 처음 배운 것은 골프였다. 재밌었다. 매일 가서 연습을 하고, 나를 따라서 등록해 줬던 후배와 가끔 커피 마시러 걸어 나가는 그때는 내게 작은 낭만의 시대였다. 꽤 당돌했던 후배는 자기 동기가 등록한 학원에 등록하지 않고 내가 등록한 학원을 따라와서 등록하고, 매번 내가 골프 치는 것을 기다려주고 매일 2시간씩을 걸었다. 덕분에 되게 건강해지고 행복했었다. 골프를 생각하면, 또 오래 걷는 것을 생각하면 걔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선배랑 걸으면 2시간을 걸어도, 3시간을 걸어도 다리가 안 아파요라고 하던 걔.

그 이후에 배운 것은 복싱이었다. 복싱은 나에게 작은 구원이 되어주었다. 과거의 기억으로 가끔 주눅이 들 때쯤 배웠던 복싱은 굽은 어깨를 조금 더 당당히 펼 수 있게 만들어줬다. 매일 샌드백을 치고 미트를 치며 언젠가는 링 위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두들겨 패는 꿈을 꿨다. 그러다 몸에 이상이 생겨서 그만두었지만. 수술을 끝내고 오래 걸으면서 복싱을 하던 때를 자주 생각했다. 되게 후련했고. 그냥 좋았다.

그리고 테니스를 배웠다. 두 달 정도 배웠었다. 열심히 배웠는데 다른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크게 집중을 하지 못했다. 가기 싫다, 하면서 다녀와서는 재밌었는데, 하다가 또 가기 싫다, 하다가 아 또 다녀오니 재밌네? 의 연속이었다. 처음 학원에서 성실하지 못한 강사를 만나 흥미를 잃은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렇게 찾은 다른 강사는 빙빙 돌려 말하기를 하고. 그냥 다른 곳에서 제대로 배우자,라는 생각을 하고 흥미를 다 잃은 채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테니스를 배운다면 아마 이곳에서 배울 것 같기는 한데 좋은 강사님을 만나고 싶다. 그럼 흥미가 좀 생길 것 같아.

그러다 이제 필라테스를 배운다. 어제 처음 가본 필라테스는 전부 레깅스를 입은 여자들이 곧은 자세로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레깅스 복장이 어색한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들어갔다가 가장 열심히 수강하며 첫 수업을 마쳤다. 필라테스가 뭔 운동이 되지?라고 말했던 과거의 나를 원망하며. 하루가 지난 오늘 엉덩이가 등에 붙은 느낌을 받으며. 사실 처음 결제하게 된 계기도 강사님들의 곧은 자세에 반해버려서 홀린 듯이 결제한 것도 있다. 그리고 좋아하는 동기가 필라테스를 강력하게 추천해 주어 50회권을 끊어버렸다. 반년을 수강하며 성장일기를 또 적을 예정이다.

그렇게 운동에 빠져서 몇 년을 지내다 요즘은 기타도 배우고 있다. 기타를 두 시간씩 친다. 그렇게 치다 보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침에 힘들었던 순간? 점심에 힘들었던 순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내 치고 있다가 시계를 보면 두 시간이 흘러있다. 사람들은 뭐 입시라도 준비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 뭐 준비해요? 뭐 그렇게 열심히 하냐면서. 이 세상에서 나랑 기타만 있는 기분이 든다. 내가 기타를 치면 소리는 귀로 흘러들어오고 손가락은 얼얼해진다. 그걸 두 시간을 반복하면 귀에는 소리만 남아있고 손가락은 얼얼해서 악보를 넘기기도 힘들어진다. 그렇게 기타를 내내 치고 숙소로 들어오면 씻을 때도 손가락이 아프다. 이걸 주 4회, 5회를 반복한다. 지금은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혀 타자를 칠 때도 감각 없이 칠 수 있게 되었는데 나에게 그 기타 치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되었다. 그런데 기타를 그렇게 오래 치다 보니 다른 중요한 것들을 또 미룬다. 그래서 결국 기타를 따로 사서 독학을 하고 학원을 가는 시간을 줄이고 운동을 더 하는 방향으로 한 달을 구성하기로 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던 것들을 하나씩 하면서 나는 나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유난히 쓴 하루를 보낸 날이면 퇴근길에 에그타르트 맛집을 검색하고, 한 주가 유난히 힘들었다면 주말에 나를 위로해 줄 이 쪽 지역 맛집을 찾는다.(편도 20km까지는 가능) 하루가 고단했으면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오일을 바른 뒤 오랫동안 누워있고 뭔가 답답하면 기타를 치러 가거나 몸이 무거우면 운동을 간다. 나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그때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다. 되게.. 간단한 공식이다. 힘들다는 핑계로 내가 사랑하는 일들을 자꾸 미루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들다는 핑계로 내가 하고 싶은 것까지 포기하는 것보다는 내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를 위로해 주는 방법을 많이 만들어놨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 틀기. 자기 전 베개에 좋아하는 향수 뿌리기. 머리를 꽉 묶고 차가운 팩 하기. 다리 마사지 하기.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틀어놓기. 따라 하기. 섬유유연제 많이 넣고 빨래하기. 캔들 켜놓기. 가끔 옷장을 뒤집어엎어 아주 깨끗하게 정리하기. 방이든 마음이든 비워내기. 좋아하는 팩 사놓고 마음에 드는 걸로 붙이기. 이번 주에 너 혹시 약속 있어? 묻는 사람에게 아마 너랑 밥 먹겠지?라고 대답하기. 늘어지게 잠자기. 자고 일어나서 쭉쭉이체조하기. 대충 입고 나가서 맛있는 거 먹기. 차려입고 나가서 맛있는 거 먹기. 맑은 날 선루프까지 열고 선글라스 끼고 드라이브 가기(머리끈 챙기기) 퇴근길 달이 예쁘면 어느 공터에든 차를 세워놓고 달 구경하기. 퇴근하고 글쓰기,라는 문장을 적어놓기.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그렇지만 점수에 연연하진 않기. 이것이 요즘 나의 낭만. 작지만 차고 넘치는 낭만들이 나에게 힘을 준다.

하고 싶은 걸 해서 나에게 힘을 주자, 가 이 이야기의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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