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한주소회 06화

나 자신에게 확신 갖기

네 인생에 느낌표만 던져

by 염미희

함께 근무했던 후배와 오랜만에 통화를 하게 됐다. 선배도 나랑 같은 자리에서 일할 때 많이 힘들었냐 묻길래 내가 몇 년 전 겪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근데 내가 매일을 울고, 퇴근도 못 하던 걸 같이 일하는 사람이 이야기를 해줘서 이미 알고 있었단다. 그때 그 사람 엄청 고생했었다며. 새벽 여섯 시 반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는 삶은 일상이었고 24시간 근무를 한 다음 날 오프를 하는 것은 사치였다. 몸이 너무 힘들어 힘든 내색을 하면 불려 가서 늘 혼났다. 니 퇴근 못 하는 거 내색하지 말라고. 그냥 사무실에서 나오지 말라고. 사람들 눈에 띄지 말라고. 늘 나에게 너는 사람을 믿냐 물었다. 나는 사람들을 믿었다. 사람들을 믿는다는 게 나는 저 사람 믿으니 보증까지 서줄 수 있을 것 같아! 의 믿음과는 다른 결로, 그냥 못 믿을 이유가 없었던 거다. 그러니 나는 사람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었고. 늘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어도 나는 사람을 되게 좋아했던 사람이라 같은 부서원들이 실수를 해도 제 잘못입니다, 제가 늦게 봤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에는 나에게 너는 사람을 믿냐, 다시 물었다. 아무 말을 못 했다. 답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정해진 답을 하지 않으면 나의 남은 하루가 너무 힘들 걸 아니까. 너는 사람을 믿는 사람이야. 근데 사람 믿을 거 못 돼. 믿을 건 문서고 규정이다. 그게 맞다고는 알고 있었는데 매일 같이 나와 그 주변 사람들을 갈라치기하는 말을 듣고 있으니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네 새끼들이나 신경 써. 니 새끼들. 내 부서원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나도 그쪽 부서원이라 신경 써줘야 하는 사람인데 왜 매번 그렇게 경멸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지 묻고 싶었다. 근데 어제 후배가 나에게 본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서 사람이 참 바보 같아지는 것 같다고 말을 하길래 어떤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몇 년 전 그때,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서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내 주변 사람과 맞지 않으면 그냥 그 사람들과 결이 맞지 않는 것이다. 늘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어디선가 인정을 받았고 또 어떤 조직에서 근무하며 좋은 기억이 분명히 있었다면, 지금 함께 일하는 사람과 그냥 맞지 않는 것이다. 퍼즐의 크기가 맞지 않는데 욱여넣으면 내가 가진 조각들이 부서지듯이(그게 장점 조각이라면..), 그 사람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모자라거나 부족하다고 확언하기 어려울뿐더러, 나는 병신이라며 땅만 파고 있으면 나아지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진짜 말도 안 되는 명령을 하고 이유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폭언을 일삼는 사람들과 함께 근무하게 된다면,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자주 합리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준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 같다는 작은 낙관마저 없던 그때 덕분에 오늘보다 내일은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는 작은 믿음이 생겼다. 그때만큼 최악의 매일매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 후배 일 잘하고 싹싹하고 성실했다. 자기계발 열심히 하던 친구라 같이 운동도 하곤 했던 친구인데 그곳에서 되게 힘들다고 하길래 너 예전에 누구한테 인정받아서 아마 그 자리에 가있는 거 아니냐며, 한 사람이 하는 평가에 덩달아 흔들려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을 하며 내가 진짜 못 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에 확신을 가지면 안 된다고 말해줬다. 차라리 저 사람이 평가하는 것을 의심하고 내가 가진 신념에만 느낌표를 던졌으면 좋겠다.

어떤 선배는 본인의 가정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짜증을 내고, 본인이 집에서 싸우고 오면 후배에게 폭언을 했다. 우리는 늘 오늘도 싸우셨대? 물었고 부부싸움을 했는지 안 했는지의 여부로 그 사람의 기분을 파악했다. 어떤 부서장은 주식이 하락장이면 보고를 못 들어오게 했다. 사람들은 아침마다 주식장을 확인했다. 어떤 사람은 매번 사람들을 평가했다. 걔는 고졸이라서 뭘 모르잖아, 걔는 지잡대 출신이라서 그렇잖아. 걔는 그냥 병신 같잖아 라며. 걔 약간 모자라지 않아? 걔는 애새끼가 참 지질하지 않냐면서. 항상 그런 말을 들으면서 이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늘 궁금했다. 늘 긴장됐다. 나도 병신이나 모자라지 않아? 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이지 않을까, 내 잘못이 아닌 상황에서도 나는 내가 어떤 평가를 들을까 지레 겁을 먹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잃었고 늘 예민하게 지내곤 했다. 근데 그게 내 잘못이었을까? 내가 선배들의 기분과 비위를 맞춰줬어야 했을까. 사적인 일을 끌고 들어와 다른 사람들에게 짜증 내고 화풀이하는 행동들을 지켜보며 나는 왜 저 사람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일까 끊임없이 자책했었어야 했을까. 사람들을 평가하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전전긍긍하던 때의 나를,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때 그 사람을 겪고 난 뒤에야 깨달았다.

외골수가 되라는 뜻은 아니다. 과거 포스팅에서도 말한 적 있지만 누구도 나에게 나쁘게 말하고 평가할 권리는 없다. 조직사회에서 평가는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 사람이 내 능력에 대한 평가보다 정말 그냥 짜증 나는 상황들에 대한 화풀이를 위해서 나를 혼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냥 그 짜증과 폭언을 덜 들었으면 좋겠다. 나나 걔나 사람이었지 감정쓰레기통이 아녔으니까. 맨날 이 새끼 저 새끼 소리 들으면서도 그냥 버티면서 근무했던 그때를, 사실 뒤늦게 후회했다. 나는 1년을 버텼고 몸이 많이 안 좋아졌다. 나는 네가 적어도 상처받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온실 속 화초까지는 아니더라도 야생에 있어도 그냥 잘 자라는 잡초 같은 삶을 살기 바란다.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드라마 질투의 화신 속 조정석은 자신이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고민하는 공효진에게 이런 말을 한다.

''자기 인생에 물음표 던지지 마. 그냥 느낌표만 던져, 물음표랑 섞어서 던지는 건 더 나쁘고. 난 될 거다, 난 될 거다. 이번엔 꼭 될 거다! 느낌표 알았어?"



* 사진은 본가 앞에서 우연히 만난 올해 첫 벚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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