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년간의 11월 장태산 기록]
늦가을이 되면 장태산자연휴양림의 시간은 멈춘다. 화려한 빛을 내뿜으며 환상적인 공간으로 바뀐다. 메타세쿼이아 숲의 변신은 그림액자 속 상상의 시공간으로 초대한다. 신록천하 시원한 여름도 좋고, 눈 덮인 겨울의 장태산도 좋지만 붉은 계절 만추의 장태산이 역시 압권이다. 그대는 장태산휴양림의 어느 포인트를 가장 사랑하시는가.
①편안한 휴식을 주는 산림욕장 ②메타세쿼이아와 눈 맞추며 걷는 매력, 아래를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한 출렁다리 ③공중을 걷는 기분, 숲속 어드벤처(스카이웨이, 스카이타워) ④문 전 대통령이 여름휴가 때 사진을 남겨 유명해진 전망대 ⑤전망대에서 조금 더 가면 만날 수 있는 형제봉 전망대 ⑥전망대에서 장안저수지 쪽으로 내려가다보면 만나는 팔마정 ⑦요즘 가장 핫한 출렁다리 위 바위 포인트. 몇 해 전부터 SNS를 달궜던 그 포토존은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조금 위험해서 데크로 막아놨던 그 포인트는 바위 아래 안전시설까지 갖추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서론이 길었다. 과연 이국적인 장태산의 만추, 붉은 가을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최근 3년간의 사진기록을 통해 올해는 언제 절정일지 유추해보자. 결론은, 'OO월 OO일쯤이다'라고 딱떨어지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21~2023년 11월의 장태산 사진을 들여다보고 나름의 전략을 세워보자.
#1. 2021년 11월 5일
다른 곳이 단풍절정 혹은 끝물인 시기다. 11월 넘어갔는데 장태산도 붉은 빛을 보이지 않을까. 사전정보 없이 드론촬영 신고(허가)까지 하고 찾았다. 감탄사 나오는 컷을 드디어 담는구나, 기대에 가득찬 설렘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은행나무는 노란 옷을 입었고, 다른 나무들은 붉은 치장을 했는데 하이라이트 메타세쿼이아 숲은 아직 초록바람. 아주 적은 부분만 살짝 발갛게 바뀌었을 뿐 '아직'이었다.
머릿속에 그렸던 색채의 그림은 아니었지만 드론으로 담은 장태산의 가을은 그래도 아름다웠다. 노랑과 초록과 갈색 물감이 어우러진 풍경은 깨끗한 바람과 만나 살짝 감탄사가 흘러 나오게 했다. 그러나 아쉬움이 없을 수 없었다. 그래서 2주 뒤 다시 장태산을 찾았다.
#2. 2021년 11월 20일
입구부터 만원이었다. 평일(금요일)이고 그리 좋은 날씨가 아니었는데도 주차장은 붐볐고 시내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의 표정에선 설렘이 그대로 묻어났다. 입구를 지나고 메타세쿼이아 숲이 열리자 사람들의 설렘은 행복감으로 바뀌었다. 이곳저곳 모든 곳이 포토존인 장태산. 길에서, 벤치에서, 나무 밑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장태산의 만홍을 즐기고 있었다. 기대감이 점점 커졌다.
한 가족이 눈에 띈다. 엄마는 프레임에서 비켜나 있고 아빠는 쭈그려 앉아서 연신 촬영버튼을 누른다. 찰칵, 찰칵. 두 딸은 펄쩍펄쩍 점프를 한다.
"아냐, 다시. 둘이 같이 !"
"조금 더 뛰어봐, 다시 !"
딸들의 점프샷을 찍는 아빠는 '다시다시'를 외친다. 반복되는 동작에도 딸들은 해맑다. 그리고 잠시 후 네 식구가 휴대폰 속 사진을 보며 까르르 웃는다. 아, 보는 나도 행복하다.
'그 포인트에 사람들 많겠지?' 출렁다리 위 바위 포인트를 올려다 보며 그곳을 향해 오르막길을 밟는다. 흐린 날, 빛이 살짝살짝 비치니 숲 색깔이 또 바뀐다.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다른 세상을 만든다.
숨 헐떡이며 포인트 도착. 역시나 붐볐다. 사진을 찍기 위해, 찍히기 위한 웨이팅 줄은 꽤 길었다. 흐린 하늘이 야속한지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 그래도 행복해 보였다. 표정에서 대화에서 묻어나는 행복감. 혼자 온 낭만객들은 품앗이를 하며 사진을 찍었다. 진한 갈색옷을 입은 숲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내려다 본 스카이웨이와 스카이타워 사람들도 행복해보였다. 썸 타는 그대여, 늦가을엔 이곳으로 오시라.
출렁다리를 건너며 숲속 어드벤처(스카이웨이, 스카이타워)로 간다. 메타세쿼이아 사이를 걷는다. 공중을 걷는다. 여기도 모든 곳이 포토존이다. 스카이타워에 먼저 올라간 일행이 손짓을 하며 외친다. "자, 여기 보세요." 까르르~ 일행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가 숲에 가득 찬다. 스카이타워 위에서 아래를 찍는 사진포인트도 아름답다.
이제 메타세쿼이아가 쭉쭉 서있는 나무 아래 산림욕장으로 갈 차례. 앗,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메타 숲에서 물 한 모금, 심호흡 몇 번 하고 전망대로 향한다. 전망대에서 장안저수지 뷰 살짝 보고 형제봉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형제봉에선 출렁다리와 숲속어드벤처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까 갔던 바위 포인트 사람들도 보인다. 갈붉은 메타세쿼이아 숲. 식상한 표현이지만 한 폭 수채화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 22번 안. 승객들의 표정에도 옷에도 붉은 가을이 내려앉아 있었다.
#3. 2022년 11월 11일
2022년은 예년보다 단풍시기가 조금 일러서 장태산도 2021년보다 한 주 일찍 찾았다. 아, 이번엔 햇빛이 장태산에 왕림하시었다. 빛이 감싸안은 메타세쿼이아 숲은 온통 포토존. 무슨 말이 필요할까, 사진이 말해준다.
#4. 2023년 11월 17일
이상기후 탓일까. 지난해는 전반적으로 단풍이 늦었다. 아니, 늦었다기보다 괴팍했다. 어떤 곳은 예년보다 단풍이 빨리 들고, 어떤 곳은 은행나무들이 노란잎 대신 초록잎을 떨어뜨렸다. 단풍 색채도 인상적이지 않았다. 얼마나 장태산 단풍이 진행됐는지 사전정보 없이 시내버스를 탔다. 깊은 만추는 아니어도 살짝궁 가을데이트를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입구에 섰다. 버스 타고 오면서 슬쩍 봤던 진입로의 메타세쿼이아는 늦여름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초록색이었다. 부분부분 울긋불긋했지만, 초록빛이었다. 폴킴이 부릅니다. 초록빛. 버스에서는 윤도현 가객이 스케치해준 가~을우체국 앞 풍경을 들으면서 꽉 찬 가을빛을 상상하며 왔는데 초록빛이었다. 거기다 하늘도 잔뜩 흐리다. 구름 낀 하늘은 왠지 네가 살고 있는 나라일 것 같아서, 실망감을 애써 누르며 입구를 통과했다.
제법 사람들도 많았다. 타 지역 사투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외국인도 많이 보였다. 에고~, 저 분들 모두 멀리서 장태산 가을빛 풍경을 떠올리며 오셨을텐데... 아쉬운 탄식이 섞인 대화를 들으며 그 바위 포인트로 오른다. 그런데...
눈발이 날렸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쓰려고 했던 내 마음을 위로라도 하듯 굵은 눈송이가 날렸다. 출렁다리가 보이고 시야가 트이자 점점 강해졌다. 이게 뭔 조화랴, 가을 보러 갔는데 겨울을 만나다니...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졌다. 예상치 못한 선물.
그 바위 포인트는 오늘도 웨이팅. 눈 나리는 포토존에서 찰칵 소리가 웃음소리와 함께 퍼진다. 소녀가 된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가 장태산을 지배한다.
의외로 눈이 많이 온다. 다른 포인트로 접근, 자리를 잡고 눈 내리는 가을을 감상한다. 한참 퍼붓는다. 가을눈이라 쌓이지는 않는다. 덜 익은 가을풍경에 실망한 사람들을 위해 자연이 준비한 이벤트 같다. 눈발 때문에 메타세쿼이아 숲이 잘 보이지 않는다. 초록 숲이란 것밖에. 30분 남짓 퍼붓더니 잦아드는 눈발. 그 뒤로 숲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울긋불긋하지만 흐린 날씨 탓에 잘 보이지 않는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햇빛이 조금씩 왔다갔다 한다. 빛이 드리울 때마다 초록숲이 연두-노랑으로 변신한다.
포인트에서 내려와 출렁다리 지나 스카이웨이, 스카이타워 갔다가 메타숲으로 들어오니 이번엔 이슬비가 내린다. 산책하는 이들의 표정에선 여유가 읽힌다. 하나의 우산을 쓴 커플도 보인다. 한 커플은... 만난 지 얼마 안 됐나 보다. (*위 사진 속 커플은 아님) 말투도 몸짓의 뉘앙스도 좀 애매하다. 저 커플 이곳에서 나갈 때는 훨씬 가까워졌으리라. 그렇다. 썸 타는 그대여, 이곳으로 오시라.
! ) 장태산 만추의 붉은 가을은 언제 올지 알 수가 없다. 올해는 11월 20일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할 뿐이다. 가장 확실한 건 사전정보다. 다녀온 이들의 사진기록을 보시라. 그게 가장 확실하다.
'단풍이 산에서 내려와 사람 사는 마을 안쪽까지 온통 물들이는 이유는, 곧 겨울이 닥친다고, 비어 있는 연탄창고에 연탄을 채우고, 때 절은 이불 홑청은 빨아 하늘에 내다 널고, 아직도 사랑에 빠지지 않은 자들은 어서 뜨거운 사랑의 국물을 끓이라고 귀띔해 주기 위해서'(안도현, 단풍이 남하하는 이유)라고 하던데. 그대, 부디 따뜻하고 외롭지 않은 계절 보내길 바라요.
♠042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