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115만 킬로미터의 필름

by 수경

나의 평범한 순간들이 모여 한 편의 영화가 될 수 있음을 깨달으며, 내게 두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하나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다. 예상치 못한 역경이 닥칠 때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으레 맞닥뜨리는 ‘위기’의 순간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모든 영화가 갈등과 반전을 통해 더욱 풍성해지듯, 삶도 그러한 것이라고. 다른 하나는 나의 결핍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영화 속 모든 캐릭터는 저마다의 결핍을 안고 있다. 그 결핍이 캐릭터를 살아 숨 쉬게 하고, 더욱 사랑스럽게 만든다.




이를테면 <토이 스토리>의 카우보이 장난감 ‘우디’는 주인 ‘앤디’의 사랑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며, 새롭게 등장한 장난감 ‘버즈 라이트이어’를 경계하고 질투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자신이 받은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성장해 나간다. 그런 우디의 여정이 우리를 몰입하게 하고, 응원하게 만든다.


그렇게 내 인생을 한 편의 영화라고 생각하니, 나 역시 나의 결핍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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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삶이란, 수많은 장면이 이어져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영화와도 같다. 때로는 웃음이 넘치는 순간이, 때로는 가슴 아픈 시간이 스크린 위를 스쳐 지나간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 필름 위에 또 하나의 장면으로 새겨지고 있다. 그리고 모든 영화에 러닝타임이 있듯, 우리 인생에도 한정된 시간이 있다.




일본의 록밴드 오피셜히게단디즘(Official髭男dism)의 곡 ‘115만 킬로미터의 필름(115万キロのフィルム)’은 바로 그 시간을 숫자로 표현한 노래다. 115만 킬로미터는 80년 동안 영사기로 상영할 수 있는 필름의 길이, 곧 한 사람의 인생을 상영할 수 있는 단위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내 인생이라는 필름에는 어떤 장면들이 담겨 있을지, 앞으로 어떤 순간들이 이어질지 떠올려 보게 된다. 이제 곧 서른. 지나온 필름은 약 43만 킬로미터, 앞으로 펼쳐질 여정은 72만 킬로미터 남짓이다.


그렇다면 남은 러닝타임은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까. 나의 생은 어떤 장면들로, 어떤 이야기로 기억될 수 있을까. 이곳엔 정해진 결말도, 스포일러도 없다. 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일은 결국 오롯이 내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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