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허무와 권태의 덧없음

by 수경

내 삶에서 '허무', '공허'와 '권태'라는 세 가지는 떼어놓을 수 없다. 허무가 있기에 허무하지 않고, 권태가 있기에 권태롭지 않으며, 공허가 존재하기에 공허하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들은 나의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감정들이다.


tempImageaUKkvm.heic 영화 <오베라는 남자>


하지만 이들이 찾아올 때면 나는 항상 기력을 잃고 만다. 모든 것이 의미 없고, 재미도 없고, 그저 텅 비어버린다. 무얼 먹어도 맛이 없고, 무얼 봐도 웃음이 나지 않는다. 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방 안에만 처박혀 시간만 버리곤 한다.


그런 시간이 더 많아졌던 특정한 시점들이 있었는데, 그중 첫 번째는 스웨덴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2020년이었다. 유럽 대륙을 자유롭게 누비다가 돌아와 보니 코로나 시국이 시작되어 외부 활동이 모두 차단되어 버렸을 때.


두 번째는 2022년과 2024년 즈음. 첫 취업과 이직을 준비하면서 연속된 거절에 익숙해져야 했던 때다. 이제 보니 윤달 마냥 2년 단위로 그런 시기가 찾아오는 건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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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행히 나의 삶에는 공허에 잠식되어 버린 나를 구해주는 여러 존재들이 있었다.


강릉의 바다를 보러 가자고 해 준 엄마와 아빠, 매일 서로의 집 중간 지점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 각자의 할 일을 하자던 친구, 새로 나온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해주던 친구까지.


영화 <오베라는 남자>를 보면서 괴팍한 할아버지 오베에게 나를 동일시하게 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오베가 오랜 공허를 헤어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이웃들 덕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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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동안 나의 허무와 권태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주변인들의 노력이 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느낀 것은, 여행이야말로 그 허무와 권태의 덧없음을 가장 잘 알게 해준다는 점이었다. 그 어느 순간보다 몰입하게 하고, 배가 고파지게 하고, 가보지 않은 길로 발걸음을 계속하게 한다.


그런 깨달음을 주었던 여행들 중 특정한 에피소드를 꺼내어보자면 두 곳이 떠오른다.


나의 오랜 권태를 날려 버린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허무주의에 대항하게 한 폴란드 크라쿠프의 이야기로 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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