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서 '허무', '공허'와 '권태'라는 세 가지는 떼어놓을 수 없다. 허무가 있기에 허무하지 않고, 권태가 있기에 권태롭지 않으며, 공허가 존재하기에 공허하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들은 나의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감정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찾아올 때면 나는 항상 기력을 잃고 만다. 모든 것이 의미 없고, 재미도 없고, 그저 텅 비어버린다. 무얼 먹어도 맛이 없고, 무얼 봐도 웃음이 나지 않는다. 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방 안에만 처박혀 시간만 버리곤 한다.
그런 시간이 더 많아졌던 특정한 시점들이 있었는데, 그중 첫 번째는 스웨덴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2020년이었다. 유럽 대륙을 자유롭게 누비다가 돌아와 보니 코로나 시국이 시작되어 외부 활동이 모두 차단되어 버렸을 때.
두 번째는 2022년과 2024년 즈음. 첫 취업과 이직을 준비하면서 연속된 거절에 익숙해져야 했던 때다. 이제 보니 윤달 마냥 2년 단위로 그런 시기가 찾아오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히 나의 삶에는 공허에 잠식되어 버린 나를 구해주는 여러 존재들이 있었다.
강릉의 바다를 보러 가자고 해 준 엄마와 아빠, 매일 서로의 집 중간 지점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 각자의 할 일을 하자던 친구, 새로 나온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해주던 친구까지.
영화 <오베라는 남자>를 보면서 괴팍한 할아버지 오베에게 나를 동일시하게 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오베가 오랜 공허를 헤어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이웃들 덕분이었으니까.
그렇게 한동안 나의 허무와 권태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주변인들의 노력이 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느낀 것은, 여행이야말로 그 허무와 권태의 덧없음을 가장 잘 알게 해준다는 점이었다. 그 어느 순간보다 몰입하게 하고, 배가 고파지게 하고, 가보지 않은 길로 발걸음을 계속하게 한다.
그런 깨달음을 주었던 여행들 중 특정한 에피소드를 꺼내어보자면 두 곳이 떠오른다.
나의 오랜 권태를 날려 버린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허무주의에 대항하게 한 폴란드 크라쿠프의 이야기로 이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