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폴란드 크라쿠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하늘

by 수경

2018년의 여름, 매일같이 맑고 아름다웠던 폴란드에서 맞은 두 번째 아침이 되었다. 한 달 동안 유럽을 함께 여행하던 친구들과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는데, 이날의 ‘준비’는 짐보다 마음을 대상으로 했다. 우리가 향하는 곳이 다름 아닌 ‘아우슈비츠 수용소’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정신이 유악한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서, 그 무겁고 처절한 공간을 직접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폴란드에 왔다면 반드시 가야 한다’는 마음 한구석의 의무감이 강렬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잔잔한 초록빛 들판 사이로 철조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공기가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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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해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이곳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유품들이었다. 잔뜩 녹슬은 신발, 가방, 머리카락, 옷 각각의 물건이 하나의 생이었고, 그 생들이 이토록 많이 모여 있다는 게 경악스러웠다.


그렇게 쌓여있는 물건들 중 어린아이의 신발을 마주했을 때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몇 번 신어보지도 못했을, 작고 낡은 신발 한 켤레.


순간 헤밍웨이가 썼다던 세상에서 가장 짧고도 슬픈 글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팝니다: 아기 신발, 사용한 적 없음)"이 생각나며 가슴 깊은 곳이 아려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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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건물에 들어갔을 때는 벽면 가득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다. 수용소에 갇혀있던 사람들의 사진이라던데, 그 아래에는 이름 대신 직업이 적혀 있었다. 익숙한 직업들이 보여 하나씩 읽어보니 ‘의사’, ‘교사’, ‘운전사’로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한참 동안 직업이 쓰인 글자만 일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사진 속 그들이 나를 조용히 바라보는 듯했다. 그 눈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도통 알 수 없었다. 슬픔일까, 분노일까, 혹은 그 무엇도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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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오랜 시간 걷고 또 걸어 마침내, 철길이 이어져 있는 무한한 들판에 도착했다. 기이하리만치 하늘이 맑고 아름다워서 평화로운 낙원과도 같아 보였지만, 실제로는 참혹하고도 무자비했던 곳.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아야 했을 법한 이 들판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화물차에 실려 다녔을까. 처절하게 뛰어 도망치고, 잡혔을까.


그렇게 이곳을 끝으로 아우슈비츠에서 나왔지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았다. 그날 본 풍경들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국에 돌아와서 빅터 프랭클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게 되었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자신의 솔직한 경험담을 털어놓으면서, 인간은 절망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우슈비츠에서도 빵을 나누어먹는 사람들이 있었고, 노을을 보며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냐며 감탄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가혹한 환경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마음은 남아 있다고.


그 책을 덮은 뒤에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의미를 잃은 상태'에 다다르도록 자꾸만 내게 찾아오는 허무주의에 맞서는 방법을. 어둠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은 ‘의미를 만들어 가는 일’이라는 것을.


그렇게 아우슈비츠에 다녀온 경험은 내 삶에서 잊힐 수가 없는 강렬함으로 남았다. 그곳에서 나는 절망의 깊이를 보았고, 동시에 인간이 얼마나 강인하게 ‘살아내는 존재’인지도 알았다.


그래서 나는, 허무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오늘 하루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더 단단히 붙잡으려 한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보고,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허무의 허무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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