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휴양의 진정한 의미

by 수경

2025년의 2월, 우리 가족에게는 축하할 일들이 여럿 있었다.


아빠는 35년 넘게 다닌 회사에서 퇴직을 하셨고, 엄마도 오랜 시간 몸과 마음을 쏟던 자리를 내려놓으셨다. 동생은 군복무를 건강히 마치고 돌아왔고, 오빠는 사업이 자리를 잡아 새로운 사무실을 열었다. 그야말로 우리 가족의 인생에서 ‘안정기’라 부를 만한 시기였다.


하지만, 오직 나만은 그 한가운데서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2024년 봄, 나는 오랜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둔 뒤로 1년 가까이 재취업에 실패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날씨가 너무 좋은 날이면 괜히 심술이 나 암막 커튼을 쳐둔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며,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한 나날을 반복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살아간다기보다 견뎌내는’ 시간이 되어갔기에, 여행은 내게 너무 먼 단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가 뜬금없이 제안을 했다. 아빠의 퇴직 기념으로, 처음으로 가족 다섯 명이 다 같이 해외여행을 가보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취준생 신분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겼지만, 다섯 명이 시간을 맞추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 맞았기에, 살짝씩 마음이 움직였고, 결국 우리는 저녁 식탁에서 회의를 시작했다.


그렇게 따뜻한 바다와 석양이 아름답고, 반딧불이로 유명한 곳.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로 떠나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 여행이, 나를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권태의 긴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낼 줄은.





새벽 비행기를 타고 말레이시아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낯선 언어로 적힌 표지판 사이로 정신없이 걷다가, 처음 써보는 그랩 어플로 숙소에 가는 택시에 올라탔다.


창 밖으로 보이는 야자수와 모스크, 알록달록한 간판, 그리고 양옆을 달리는 오토바이들. 도심인데도 정글처럼 풀이 우거져 있었고, 길가에 자라는 동글동글한 잎사귀들까지 정말 이국적이었다.

그렇게 창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지나가는 풍경 하나하나를 눈에 담고 있으니, 내 안에서 오랜만에 설렘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그 작은 방에서 벗어났어!', '하나도 지루하지가 않아!'라고 내 머릿속 기쁨이가 쾌재를 부르는 듯했다.





첫째 날에는 맹그로브 정글 탐험을 하며 긴 꼬리 원숭이와 반딧불이를 만나고, 둘째 날에는 모두가 기대하던 곳으로 향했다. 바로 '가야나 마린 리조트'라는 곳인데, 수상 가옥 형태의 숙소라 문만 열면 바다가 펼쳐지고, 발끝 바로 아래에는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곳!


배를 타고 가야나 섬에 들어가 체크인을 한 뒤, 우리 가족은 모두 수영복으로 환복을 했다. 그러곤 하나둘씩 바다에 뛰어들어 카약을 타고, 스노클링을 했다. 열대어들이 내 앞을 지나가고, 산호초가 햇살에 반짝였다. 물속에서 숨을 고르며 떠 있는 동안, 그동안 나를 짓눌러오던 권태가 파도에 쓸려나가듯 멀어지는 걸 느꼈다.


사실 나는 구명조끼가 없으면 수영을 하지도 못하고, 태생적으로 게으름에서 도피하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휴양지에 여행을 가면 재미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진정한 휴양이란 이런 것이구나, 알게 되었다.



비록 잠시 맑았던 하늘은 온갖 먹구름으로 가득해지고, 여행을 끝내는 날까지 그토록 멋지다는 석양을 한 번도 볼 수는 없었다. 날씨 운이 이렇게 안 좋을 수가 있나, 투덜거리다가도 오징어 튀김을 입에 넣으면 기분이 잘도 좋아졌다.




휴양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편안히 쉬면서 몸과 마음을 보양함'이라고 한다. 사전에서 말하듯 휴양지에 가면 단순히 몸을 쉬게 하는 것만 아니라, 지친 마음까지 보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떠나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코타키나발루 여행의 첫날부터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프리랜서 작가로서의 첫 원고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8개월이 흐른 지금은 장기 계약을 맺고 꾸준히 글을 쓰며 내 삶을 다시 내 손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따금 권태가 고개를 들 때면 나는 평일에도, 주말에도, 아무 때나 짐을 싸서 다시 길 위에 오른다. 암막 커튼을 친 방 안에서 권태에 젖어드는 일은 더 이상 없다.


문을 열고 나가면, 삶은 다시 나를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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