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탁몽용부열(托夢用傅說)
1월 21일의 고사성어
탁몽용부열(托夢用傅說)
* 꿈에 기탁하여 부열을 기용하다.
* 《사기》 <은본기>
눈으로 읽으며 낭독하기
중국 역사상 두 번째 왕조인 은나라(기원전 1600~기원전 1046)는 중반에 이르러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반경(盤庚)은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옮기기 위해 도읍을 은(殷)으로 옮겨 중흥에 박차를 가했다. 이곳 은이 바로 유명한 은허(殷墟, 지금의 하남성 안양시安陽市)로 은나라의 마지막 도읍 유적지이다.
반경의 손자인 무정(武丁)은 어린 날 민간에서 생활하다가 임금으로 추대되었다. 쇠퇴하고 있는 은나라를 중흥시키고자 했던 무정은 즉위 후 자신을 보좌할 인재를 찾았다. 그러나 권력 기반이 없던 무정은 자신과 마음이 맞는 인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무정은 민간 시절에 알고 있던 뛰어난 인재 부열을 떠올렸다. 기득권의 반발 때문에 바로 부열을 기용할 수 없었다. 무정은 삼 년을 기다리며 나라와 신하들의 상황을 살폈다. 여기서 ‘삼년불언(三年不言)’이나 ‘삼년무언(三年無言)’과 같은 차분히 형세를 살피며 기다리는 리더의 인내심과 정치적 판단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들이 나왔다.
무정은 부열을 얻기 위해 사흘 동안 기절했다가 깨어나는 연기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무정은 은나라의 기장 중요한 습속이 미신과 점이라는 사실을 이용하여 꿈에서 신령을 보았다는 신탁(神託)으로 신하들의 관심을 끌었다. 무정은 신령이 꿈에서 한 사람을 소개하며 이 사람과 일하면 은나라가 잘 될 것이라고 했고, 신하들은 모두 정말 신탁이라며 그 사람을 찾으라고 했다. 무정은 부열의 모습을 그려 전국에서 그를 찾게 했고, 부험(傅險)이란 지역에서 성을 쌓고 있던 부열을 찾아 자신의 측근으로 기용했다. 은나라는 중흥을 이룩했다.
‘탁몽용부열’은 원하는 인재를 기용하기 위해 3년을 기다려서 쇼까지 한 무정의 인내와 지혜가 돋보이는 고사이다. ‘몽득부열(夢得傅說)’ 또는 ‘야몽득성인(夜夢得聖人)’이라고도 한다. 진정 좋은 인재를 얻기 위해서라면 성심을 다해 온갖 방법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리더십의 우열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의 하나는 어떤 인재와 함께 일하느냐 라는 점이다.
손으로 써보며 생각하기
* 탁몽용부열(托夢用傅說)
* 몽득부열(夢得傅說)
* 야몽득성인(夜夢得聖人)
* 삼년불언(三年不言); 삼년무언(三年無言)
* 참고영상
하루 명언공부: 1월 21일 – ‘점자자지미목(點者字之眉目).’ '점이란 글자의 눈썹이자 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