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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사콜라 Oct 05. 2022

내가 살고 있는 곳,

모든 날의 흔적으로 채워지는 공간.

나는 서울 강북의 어느 한 작은 동네에 살고 있다.


큰 아이가 아기였을 때 이곳에 이사를 왔으니 벌써 족히 20년 가까이 살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시골과 지방의 중소 도시보다 아마도 나 역시 태어나서 가장 긴 기간 동안 산 곳일 게다. 이곳은 나에겐 아무런 연고도 없던 곳이었으며, 누구나 그렇듯 아이를 낳고 키우며 좀 더 넓은 공간을 찾아 조금씩 평수를 늘려가며 찾아 이사 온 곳 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선 아이 엄마가 한 손엔 장바구니를, 유모차엔 두 아이를 앞뒤로 태우고 낑낑 대며 퇴근하는 나를 마중 나왔던 그 지하철 역과, 아이들과 아침마다 눈물의 이별을 하던 어린이집, 아이들이 처음으로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던 골목과 건물들이 아직 그대로이다. 

아이들이 엄마 손잡고 코 훌쩍이며 걸어갔던 소아과 병원도 그대로이고 (사장님은 몇 번 바뀌었지만) 건물 지하에 있는 꽤 큰 규모의 동네 마트와 애들이 크면서 다니기 시작했던 피아노 학원이나 영어학원도 모두 그대로이다. 

학교 앞 골목이 더 넓어지고 깨끗하게 단장되었고 동네 사거리 상가 건물은 리모델링되어 좀 더 깨끗해졌지만 오후 시간 초등학교 교문 앞에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풍경과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 북적이는 아이들의 모습도 역시 그대로이다. 


20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세상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다.

대대적인 재개발과 재건축이 없는 동네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때의 그 모습에서 지금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의 모습까지 그리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아기였던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커서 대학과 고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다. 아마도 가장 많이 바뀐 건 아이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우리 동네에 20여 년을 가깝게 살아오면서 나는 늘 집과 지하철역, 마트, 극장 그리고 그 주변 커피숍이나 식당 등을 가본 게 전부였다. 가끔 아이들 학원에 데려다주거나 동네 식당에서 외식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나의 동선은 지극히 단순하고 제한 적이다. 

물론 밤늦게 퇴근하거나 주말에 가끔씩 다니는 산책 정도가 다 이었기에 그럴 수 있지만 나는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서 그 많은 시간 동안을 잘 모르고 단순히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최근에 차보다는 걷는 시간이 많아지고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다 보니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많아졌다.

이곳에는 오픈 한지 몇 년 안 되는 꽤 큰 규모의 도서관이 있고, 체육관, 문화 센터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동네 골목골목에는 최근 들어 작지만 소소한 카페들이 많이 생겨 났다.

전에는 모르고 있던 칼국수 맛집과 명절이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정겨운 시장 또한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가게가 없어지고 어떤 가게가 새로이 생겨 났는지도 점차 보이기 시작한다.

모르고 있진 않았지만 가보지 않았던 많은 가게들과 장소,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보통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평범하지만 사람 냄새나는 작지만 큰 동네였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태어나고 자라온 곳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나 역시 내가 태어나서 자란 그 시골의 정서와 느낌을 기억하고 있고 우리 아이들 역시 태어나고 자라온 이곳의 환경과 정서를 고스란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 너무나 변화 없고 평범하고 특색 없는 서울 안의 작은 동네이지만 그런 모습들이 주는 세월의 향기와 기억들은 아마도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크고 독립해서 어떤 동네에 또 정착해서 살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든지 돌아와서 엄마 아빠와 함께 했던 기억만으로도 편안 함을 느끼는 고향 같은 곳으로 이곳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 


서울도 고향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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