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by 김 예나

그녀가 태어나 제일 먼저 본 여자는 그녀의 엄마다.

그녀의 엄마가 화장대 앞에서 화장을 하고, 멋진 옷을 입고, 뾰족한 구두를 신을 때면 그녀는 엄마를 남몰래 동경했었다. 그리고 엄마가 잠시 외출 한 틈을 타

스리슬쩍 곁눈질로 훔쳐보았던 엄마의 화장품을 하나씩 발라 보거나,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 보고, 엄마의 구두를 하나 꺼내 신어 본다. 그녀는 잠시 잠깐 엄마가 되어 본다. 그녀는 엄마의 옷으로 한껏 치장하고는

거실 한복판을 휘젓고 다니며 그녀만의 패션쇼를 사작한다. 그러고는 거울을 보면서 런웨이 속 모델들처럼

각각의 포즈를 취하고 그녀의 엄마가 돌아 올 시간이 되면 그녀는 신데렐라가 마법에 풀리 듯 재빨리 원래의 옷으로 환복 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티브이를 본다.

그렇게 우리 집은 나와 비밀스러운 비밀을 공유하며 할게 자란다. 알고 보니 나의 여동생도 나와 똑같은 일을 꾸몄었다. 누가 자매 아니랄까 봐 생각도 행동도 비슷하다. 그녀의 어린 시절 저녁풍경은 대충 이랬다.

그녀와 그녀의 동생이 거실 한가운데 나란히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그녀의 엄마는 부엌에서 갓 지은 밥과 국 반찬들을 요리한다.

대체로 김치찌개, 된장찌개, 반찬은 어묵반찬, 멸치볶음, 나물반찬, 김, 생선 구이 등이 주류를 이룬다. 때때로 닭볶음탕이나 생선조림등이 상 위에 올라간다.

그리고 저녁 준비가 완료될 쯤에 그녀와 그녀의 동생에게 아빠 어디쯤 오셨는지 전화해 보라고 재촉한다.

그렇게 그녀의 아빠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와 그녀의 동생은 보던 티브이에서 시선을 거두고

방긋 웃으며 잘 다녀오셨냐는 인사와 함께 참새들처럼 재잘재잘 이야기를 떠들어댄다.

그녀의 엄마는 이런 모습을 약간의 질투심으로 비라보며 얼른 밥이나 먹자고 투정 부린다.

어린 그녀는 해맑게 앉아 그녀의 엄마가 정성스레 준비한 저녁을 맛있게 먹는 것으로 그녀의 마음을 위로한다. 눈을 감이도 선명하게 보이는

그 시절의 풍경들 속 단골손님은 그녀의 엄마가 요리하는 뒷모습. 머리를 집게핀으로 한껏 올린 채

열기로 익어버린 얼굴과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요리하는 모습.

그녀의 엄마가 교회 가는 일요일에만 보여주는

한껏 치장된 모습.

하지만 더 선명하게 기억되는 여자로서의 모습을

잠시 포기하고 엄마와 아내로서의 모습으로 서 있는

엄마의 모습.

그녀의 엄마가 아까워 몇 번 입지 않은 옷장 속

옷들을 보면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니. 도대체 이렇게 예쁜 옷들을 왜 그냥 내팽겨두는 거야.!!!! 아껴서 뭐 해. 그냥 쫌 입어.

나는 그녀의 그런 모습에 짜증이 난다.

여자로서의 모습은 뒤로 하는 모습에..

자신을 소중히 대하지 않는 모습에.

자신은 그저 괜찮다며 웃어 보이느 모습에.

나는 그녀가 엄마 이기 이전에 그녀 자신으로 존재하기를 빛나기를 바랐다.

여자로서의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 밤마다 남몰래 꿈을 꾸고 자신만의 낭만

을 위해 사는 모습.

나와 비슷한 또래 여자의 모습.

내가 그녀의 엄마에게서 보고 싶은 모습은

철없이 해맑음으로 치장한 모습.

때론 케이트 블란쳇 같은 멋진 여자의 모습으로

자신의 곁에 있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엄마와 여자 사이에 다리를 하나씩 걸치고 서서

갈팡질팡 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눈시울이 붉게 물들어진다.

매번 예쁜 옷들과 장신구들 앞에서 고민하다 결국 내려놓는 모습에 짠해지기도 한다.

자신에게 아끼는 여자.

자신을 소홀하게 대하는 여자.

나는 그녀가 자신을 좀 더 예뻐해 줬으면 좋겠다.

자신을 가꾸기를 바라며

가끔씩 그녀는 그녀의 엄마에게

어울리는 옷들을 선물해주고는 한다.

그녀의 엄마가 차마 자신의 손으로는 사지 못할 옷을

그녀는 툭툭 사버리는 재주가 있다.

그러면 그녀의 엄마는 뭘 이런 걸 사. 하면서

히죽히죽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러면서 이거 비싼 거 아니야? 하며 이내 가격부터 걱정한다. 이거 별로 안 비싸. 그러니까 그냥 막 입어. 나는 거짓말로 그녀의 엄마가 부담스럽지 않게 애써 말을 돌린다. 엄마. 그거 진짜 잘 어울린다.

딱. 엄마 거다. 그녀의 동생도 그렇게 공범이 되어

엄마를 속이는데 일조한다.

맞아. 그거 진짜 별로 안 비싸.

그녀의 엄마는 이내 불신을 거두고 그녀가 사준 옷을

만족감 가득한 미소와 함께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여러 차례 둘러보며 연신 행복해한다.

이쁘기는 이쁘네. 하면서.

엄마는 꽤나 옷이 마음에 드는 눈치다.

그녀는 엄마의 환한 얼굴에 괜히 기분이 오묘해진다.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툭툭 사서 입는 옷을

그녀의 엄마는 남의 옷을 훔쳐 입은 것 마냥 손을 벌벌 떨며 연신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따끔거려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자신의 옷 하나 사서 입는 것도 이렇게 남 눈치를 보는데 그녀의 엄마가 그녀의 옷 가격텍을 보면 기염을 토할게 분명하다. 가끔이라도 이렇게 엄마를 위해 작은 환대를 발휘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제 돈 주고 못 사 입는 옷을 그녀는 퍽퍽 잘도 사 입으니까. 가격은 영원히 비밀에 부쳐두고…

그녀의 엄마는 아마도 홀로 자립한 탓에 아끼는데 도가 텄고 그런 게 습관이 되어 버린 게 분명하다.

혼자서 살아남아야 했던 엄마의 어린 시절.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크고, 혼자 벌어먹고

살아야 했던 지난날의 외로움을 보상할 여유는 사치였을 것이다. 그녀의 엄마가 느끼는 고단함과 헛헛함이 어떤 것 인지 그녀는 알 길이 없다.

그녀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종류의 감정이다.

그녀는 부모의 사랑의 빈자리를 느낀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지나친 관심과 사랑에 체 할 것 같았고 피곤했던 그녀의 어린 시절.

그래서일까 그녀와 그녀의 엄마는 상반대 되는 성격에 자주 충돌이 일어났다.

그녀는 만산에 태평하고 자유로운 반면 그녀의 엄마는 자신에게 강압적이고 항상 어딘가에 얽매여 있는 사람처럼 행동 했다. 그녀는 그게 어린 시절 부모에 대한 부재의 결핍. 빈자리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도 거기서 온 것 같다.

아끼는 마음과 퍼주는 마음과의 대결.

그녀는 엄마가 자신을 좀 더 아껴주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중이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중년의 여성이 되기를.

자신의 삶에 중요한 것에서 떠나기를 두려워하지 않기를. 그런 섹시한 다짐을 가지기를.

독단적인 서늘함이 있기를.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기를.

결연하는 마음으로.

진득하고 끈적이는 사랑으로 그녀는 엄마를 남몰래 응원한다.

그녀가 여름이라면 그녀의 엄마는 가을의 여인이다.

그녀가 텁텁한 더위와 촉촉한 습기를 지녔다면

그녀의 엄마는 선선한 기운과 쓸쓸함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다. 95세 할머니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상이 있다.

영상 제목은 “ To be in Awe-Awe 안에 있기. “이다.

할머니는 말합니다. 지금 이 시간은 미치 두 번째

어린 시절 같아요. 행복한 유년기요.

이제야 노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노는 것이란 탐구하는 것이고, 실험하는 것이고

궁금해하는 것이고, 보고, 바라보고, 내 몸을 받아들이고, 살아있음을 느끼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유로움을 느끼는 그 자체인 것 같아요.

그녀가 그녀의 엄마에게 해주고 싶은 말.

그녀의 엄마가 어렵고, 힘들었던, 때론 비참했을 유년시절의 아픔을 뒤로 물리고 행복한 두 번째 유년시절을 보내기를. 그녀의 엄마가 놓친 그 시절의 시간들을 자신 안에 차곡차곡 쌓기를. 공백을 기억하고 비밀을 만드는 연습을 통해 그녀 자신 안으로 들어가기를.

자신의 시절을 수집하기를.

빈 페이지 속에 무한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를.

삶의 과정들을 모두 겪고 살아내기를.

없었던 기억들은 새로움의 옷을 입고 아름답게 추억되길. 찬란한 시절이 되길. 그녀는 생각했다.

영원한 낯섦 속에 놀라움과 경의로움으로 가득 찬 아이가 되어 살아있는 신비로움과 기적을 느끼며 끊임없이 자신을 탐구하고, 발견하는 삶을 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빛을 내보여야 한다는 거다. 다른 것을 내 안에 들임으로써 다른 내가 될 수 있다는 혁명… 그리고 믿음.

자신 안에서 자신을 밝히고, 발견하는 기쁨과 환희를 알게 되며 아이 같은 무해함으로 세상을 더듬으며 웃음 속에서 살아내기를. 그래서 우리가 서로 임을 알게 되고, 우리가 결국 같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서로의 다른 버전을 보게 될 거라고. 우린 서로의 또 다른 버전의 나 인 셈일 테니. 엄마는 나이고, 나는 엄마예요.라고

엄마에 등 뒤에서 말해주고 싶다.

서로의 동반자가 되어

서로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서로의 시선을 넓히며

서로를 들뜨게 만들고

서로의 힘듦과 괴로움도 보며

어둠 속에 빠져 버린다면

손을 뻗어 사다리를 내려 줄 수 있기를.

아님 구멍 속으로 내려가 함께 춤을 출 수 있기를.

손을 잡고 삶을 넘을 수 있기를.

작은 구멍 틈 사이로 보이는 행복을 발견하고 웃을 수 있기를.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긴 다리로 시원하게 걸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훌쩍 떠나버리는 그런 여자가 되길.

주머니 속 그녀를 닮은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 중이다.

엄마의 여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엄마는 아직 겨울잠을 자고 있다.

이제 곧 봄이다.

삶이 달아오른다.

모든 여자들을 제치고 맨 앞에 서 있는 여자.

그 여자는 엄마로 불린다.

모든 여자들 위에 서 있는 여자.

여자들 중 최상의 여자.

엄마는 강하고 섹시하다.

나의 여자가 되는.

엄마.



그녀의 이름은 엄마라는 이름 뒤에 잠시 숨어 있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되찾아주고 싶었다.

경숙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녀를 부르고 싶다.


사랑해. 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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