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를 꿈꾸며.

by 김 예나

나는 어린 시절 흥이 많은 아이였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것을 즐겼으며

내가 서 있는 곳은 언제나 나의 광활한 무대였다.

타인의 시선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나만의 세계에 푹 빠져 무아지경인 상태에 이르렀다.

무아지경이란 내가 없는 지경이라는 뜻으로

정신이 한 곳에 빠져 스스로 잊어버리는 경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나조차 잊는 몰입감.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상태.

나는 그렇게 뭔가에 단단히 쓰여있는 상태,

무엇에 홀린 사람의 모습을 맘껏 즐겼다.

춤을 추고 싶으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싶으면

맘껏 불러 재껴 되는 그런 아이였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표현해 내며 느끼는 아이였다.

꿈이 가수였던 아이는

어느덧 시간이 흘러 조금씩 자신을 인지하게 되었고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모하게 용감했던 그 어린아이는 사라지고

어느 정도 알만큼 아는 어른으로

어느 정도 체면과 품위를 지킬 줄 아는 교양인으로 성장했다.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뭔가를 느끼기도 전에 포기해 버리기 일쑤인 사람으로 자라왔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해 내는 방법이 이제는 어렵고, 어색해졌다.

마치 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껴입은 듯한 불편함 마저 느꼈다.

그렇게 정직한 청량함을 잃어버렸다.

나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내가 싫어하던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부인해 왔던 고리타분한 꼰대 같은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다 뜻밖에 장면을 포착했다.

어김없이 집 앞 카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는데

조그마한 남자아이와 아이엄마로 추정되는 앳된 여성과 중년의 남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카페 사장님 지인분들 있듯 서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이는 밖에 나와 들뜬 것인지 아님 이곳 카페가 마음에 들었는지 매우 신이 난 상태였다.

처음에는 천진난만하고 까르르한 발랄함이 귀여웠으나 조금씩 예민해졌고 점차 시끄럽게 느껴졌다.

도저히 책에 집중할 수 없어 내심 얼른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러고 시간이 지나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듯했다.

나는 솔직하게 너무 기뻤다.

그렇게 다시 평화가 찾아왔고 나는 나만의 세계로 들어가 책을 읽으며 조용한 흥분을 느끼고 있을 무렵

카페 사장님이 조심스레 다가오며 “ 아까 너무 시끄러웠죠..? 죄송해요. 이건 서비스예요. 하시며 조그마한 귀여운 붕어빵 세 마리가 가지런히 올려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접시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얼굴이 붉어졌고 괜스레 나만 아는 미안함이 들어 그 접시를 받기가 부끄러워졌다.

사실 그 나이 때는 그게 자신만의 의사표현이며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정직한 청량함,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제대로 씹고 삼키며 소화시키는 일련의 과정 일 뿐인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다.

나도 저 나이 때에 저리 행동 했을게 분명한데

거대한 세상 밖으로 나왔다고 우물 안 시절은 까맣게 잊은 채 자신의 한 때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차는 모습이라니 우스웠다.

나는 아직도 부족함 많은, 아직 배울게 남은 그런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그저 매일이 같이 새로운 경험 일 텐데 지금 이 순간 또한 처음일 텐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게 견딜만해졌다.

내게도 모든 것이 처음인 때를 상기해 보았다.

저 아이처럼 하품도, 투정도, 웃음도, 울음도 극적인 자기표현이었던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해 보았다.

저 나이 때에는 원래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나만 아는 이기적임이 통하는 나이. 자기 자신의 감정을 마음대로

표출하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나이.

그런 무수한 행동들을 스스로 선택하며, 자기 권리를 거리낌 없이 행사할 수 있는 때가 또 있을까.

그것이 귀여움으로 통하는 유일한 시절.

그렇게 행동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나이.

심지어 이쁨 받기까지 하는 나이.

오롯이 저 나이 때에만 할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런 천진난만함, 발랄한 기운이 내심 부러웠다.

매번 새로운 발견을 쌓아가며 아이들은 자란다.

그러므로 이 교양 없는 아이는 커서 교양 넘치는 어른으로 자라 나는 중 일 것이다.

그리고 한참 뒤 어른이 되면 자신의 철없던 어린 시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말끔한 교양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해 자신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교양이 있었던

사람인양 사람이 많이 모인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아이들을 보면 혀를 내두르겠지.

지금의 나처럼.

진지함으로 무장한 꼰대 같은 어른이 되어 있겠지.

사실 이 아이에게 교양이 무슨 소용일까.

그저 겉치레한 사치일 뿐.

아이에겐 그저 어떠한 흥미도 찾지 못할 재미없는 단어에 불과하겠지.

나는 덜 느끼고, 덜 존재하고 있다고 느낄 때

이 아이를 떠올린다.

천진난만함으로 무장한 아이를 볼 때면 나도 주어진 삶을 향해 직진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모든 게 처음인 듯 반짝인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새로워진다.

별거 아닌 일에 울거나, 웃어버리는 게 쉬워진다.

웃고 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울 수 있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내 감정의 상태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타인의 감정에 더 심의를 기울였으며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내 감정을 쉽사리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 어른이었는데 ….

이제는 생각하기 전에 느껴버리며.

다시 아이가 된다.

마치 신경질 나게 짜증 났던 일이 언제 일어난 것 마냥 어느새 웃음으로 변해버리는 일.

카페 사장님의 조그마한 붕어빵 또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귀여운 일상이 되게 하는 것들은 사실 별거 없다.

누군가의 사소한 다정함.

그 정도로 충분한 얼굴들은 내 일상에서 한 발짝 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혐오가 가득해져 버린 이 시대에 선함은 동화처럼 여겨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게 더 쉬운 냉소적인 시대에 사랑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며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 호구가 되어 버린 시대에

나는 누군가의 선함으로 다시금 세상을 믿어보고 싶어 졌고

다정함은 똑똑하지 못한 것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진짜 지혜로운 사람은 많은 것을 경험한 뒤 최종적으로 다정함을 선택한다는 것을 다시금 배우며

누군가에게 먼저 다정한 웃음을 지으며 다정한 손을 내밀 줄 알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묶어 주는 최소한의 여자아이로 자라가기를 바라며

일기를 마무리하는데 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청년다방 어때요..?

난 이 귀여운 제안을 흔쾌히 허락하고는 서둘러 일기를 마무리하고 남은 빵은 포장 한채 카페를 나섰다.

책을 덮고 거리를 나서니 나는 전에는 본 적 없는 새로운 것을 발견한 듯하다.

원래는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줄 아는 새로운 눈이 하나 더 생긴다.

나도 한때는 조르바였다.

그리고 다시금 조르바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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