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팔을 벌린 채 서로를 향해 달려온다.
활짝 웃으며 소리친다, 드디어! 마침내!
둘 다 두꺼운 겨울 외투 차림,
두툼한 털모자에,
장갑,
그리고 부츠,
하지만 단지 우리의 육안으로만,
그들 자신은 이미 알몸이니까.
-비스 와바 쉼보르스카.
얼마 전 예주와 함께 전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작년 여름 후쿠오카 이후 오랜만에 여행을 떠났다.
지난 부산의 여행이 질문과 답을 찾기보다 되려 버려두고 오는 여행. 헤매는 여행이었다면
이번 전주 여행은 물을 주는 여행이다.
각자 자신 안에 있는 삶을 꽃을 피운 후
다른 이의 회분에 물을 주고, 햇빛도 주고, 영양분을 주어 서로 자라나는 여행.
이번 여행의 핵심 주제이자 목적.
우린 그렇게 전주로 떠났다.
짧은 1박 2일 동안.
우리는 요즘 심플하게 사는 법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이번 여행도 최대한 간소하게 짐을 꾸리고
비워내는 여행. 그러면서 다른 것으로 채우는 여행.
삶에 많은 것이 덧입혀 있어 피곤한 요즘.
우리는 알몸으로 벗겨지길 원했다.
우리에게 걸쳐진 삶의 옷들을 하나씩 벗어던졌다.
가벼워지고 싶어서.
단순함이 주는 아름다움.
모든 걸 겪어내고 덜어낸 진짜 아름다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낸 간결한 삶.
나는 아름다움의 정의를 다시 설정한다.
아름다움은 불러야 하는 기다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적극적인 방문이다.
서로의 아름다움에 직접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아름다움을 마음에 품고 사는 행복은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스스로 결단 짓는 용기에서 오는 것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더듬 감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전에 알았던 사실을 다시 한번 더 자세히 알기 위해
혹은 몰랐던 사실 하나를 발견하기 위해.
아름다움은 서로에 의해 증명된다.
우리는 소비하는 방식에서 저항하는 방식으로
삶을 바꾸는 중이다.
여행도 그렇게 바뀐다.
우리 사이에 다른 것들이 침범하지 못하게
서로를 묶어주는 여행으로.
언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둘의 언어가 하나로 합쳐진다.
언어가 방향성을 잃는다.
언어를 잃어버린 여행.
나의 언어가 다른 낯선 언어로 가닿는 순간이다.
그렇게 언어는 재창조된다.
여행도 새롭게 재창조된다.
다시 쓰는 여행.
삶이 다르게 적힌다.
하나의 언어가 둘로 쪼개진다.
나의 언어가 너의 언어가 되고
너의 언어는 나의 언어가 된다.
서로의 언어는 곧 서로가 된다.
우리의 여행은 언어가 되었다.
아름다운 서로의 언어.
여행하면 한번씩 읽게 되는 다와다 요코의 책.
그녀는 방랑자답게 떠나는 이야기를 잘 쓴다.
그녀는 일본에서 태어나 열아홉 살 때 독일로 건너갔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다만 집을 새로 지은게 아니라 언어를 통해 두 개의 집 사이에서 살고자 했다.
일본어와 독일어를 번갈아 가며 글을 쓴다.
이곳 저곳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
갈팡질팡, 횡설수설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모르게 엉켜버린,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향하는지 모르고
무작정 가야 도착하는 기차 같은 삶.
그녀의 책을 읽고 있으면 언어의 경계가 흐렸해진다.
국경과 국경 사이에 두 다리를 걸치고 있는 듯하다.
다시 한번 떠나라고 내게 말한다.
그녀의 인물들은 주로 어딘가를 여행한다.
이번 소설 역시 실어증에 걸린 친구를 위해 여행하는 우정 네트워크가 담긴 이야기다.
실어증이 의심되는 susanoo를 코펜하겐 의사에게
보내고 Hiruko와 친구들이 각자만의 여정을 거쳐 병원으로 향하는 이야기이다.
자아도 사랑도 갈팡질팡 하는 나누크.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두려운 노라.
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망설임 없이 지구를 제 집처럼
누비는 아카슈.
그리고 언어학자 크누트와 Hiruko.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넘나들며
시공간을 초월하는 언어 여행자들의 우연과 환상이 가득한 이상하고 아름다운 모험. 책은 이렇게 말한다.
두 곳 모두 맴도는 삶은 불투명하다.
그녀처럼 삶을 용기 있게 사는 사람은 드물기에
나는 용기가 필요할 때마다 그녀의 글을 마구 찾아 읽는다. 그녀는 헤매는 내게 안경을 쥐어준다.
그것은 물안경이다. 잠수해야만 앞이 보이는 안경.
일상에서는 필요 없지만
잠겨있는 삶에는 필수적인 안경.
그녀는 내게 말한다.
삶은 전진하는 게 아니라 부유하는 거라고 말한다.
그녀의 글은 삶의 부표 같다.
나는 덕분에 안전하게 헤엄친다.
나는 덕분에 삶을 용감하게 헤엄친다.
“우리는 안다.
우리가 사는 이 별이
우연이라는 그물로 어른어른 하지만
아주 촘촘하게 짜 여 있다는 것을. “
- 다와다 요코 -
다와다 요코 소설 속 인물들은 짧은 여행 동안
서로 다른 존재가 되어 간다.
스스로 선택했거나, 예측하지 못한 방법으로
여행이란 그런 것.
평소 나라고 굳게 믿었던 것들을 버리는 것.
소설은 말한다.
나는 모든 걸 버릴 준비를 한다.
나 자신조차도.
바람처럼 훌훌 가볍게 날아다니는 삶.
우리는 서로에게 영감을 준다.
서로의 화분에 물을 흠뻑 적셔준다.
잘 자라라고.
씩씩하게, 다정하게
그리고 내 화분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 심어야지.
그리고 다른 이의 화분도 준비해야지.
이제 옮길 때가 되었다고.
쿡쿡 옆구리 쑤셔야지. 다정하게.
삶이 옮겨진다.
그렇게 제법 닮아간다.
서로라는 꽃으로…
나는 이제 물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 된다.
우리는 그렇게 자라난다.
용기 있게, 아름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