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는 여름.

by 김 예나



여름으로 내 안은 뜨거워졌다.


그것은 날씨 때문이 아니었다.

여름이 주는 기운이 때문이었다.


나는 여름만이 가진 이미지를 좋아한다.

땀 뻘뻘 흘리며 뛰어노는 아이들, 무더위에 녹아내려 손에 뚝뚝 흐르는 아이스크림, 나무에 매달려 우는 매미 소리, 지금은 들을 수 없지만 밤에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목 넘기는 탄산의 청량함을 나는 사랑한다.


내가 좋아하는 유지혜 작가는 이렇게 써놨다.

여름날.

나는 책도 영화도 싫다.

산책과 노래와 대화만을 원한다.

벤치에 앉아 소설 읽는 일도 멋지기야 하겠다만

여름은 자고로 누가 써 놓은 걸 감상하기보다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밖으로 나가서 걷든, 생각하든,

누굴 만나 사랑에 빠지든,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여름은 그런 계절이다.

대수롭지 않은 날들 가운데

반드시 찾아오는,

마치 기회 같은 여름이었다.

유지혜의 쉬운 천국 중.



그래서 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러 떠났다.

세상으로. 내 안으로. 그리고 여름 안으로.

행동하는 계절답게 행동해야 했다.

이 계절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여름만이 가진 청량함을…

가만히 있어도 더우니까 차라리 땀을 흘려버리자.

개운하게. 몸 안에 있는 땀구멍이 확 열리게

다 쏟아내자고

산책자의 마음으로 여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겁 없이… 당당하게…

여름이면 어디로든 떠나야 하는 병이 있다.

나는 또 집시병이 발동한다.

그래서 나는 상상한다.

지금 당장 떠날 수 있다면, 어디에서 어떤 모습일지.

도시는 뉴욕… 아님 베를린.

뉴욕의 길거리를 걷고 있을 거다.

흰 티에 흰 바지를 입고 쪼리를 신고 천 가방을 메고 있을 거다. 아무런 계획 없이 걸을 걷고 싶다.

음악은 비틀스의 something이나 좋아하는 밴드 인

Belle and Sebastian의 Working Boy in New

York City. 를 들으며.

나에게 결정적인 여름은 그런 계절이다.

이십 대에 패티 스미스의 책을 읽고.

영화 <프란시스 하>를 보고.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집 밖을 나서던 자유로운 날들.

그녀는 자신과 꼭 닮은 여름을 좋아하며 그리워하고 있다. 추억은 그녀 안에 얼려있다.

꽝꽝 얼어 절대 녹을 생각이 없다.

녹일 생각도 물론 없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는 것 같다.

실패와 잘 어울리는 그녀는

매번 실패가 두렵다.

또 실패 할까 봐.

언제나 그렇듯 기대는 또 실망으로 바뀐다.

그래서 그녀는 이제 뭐든 미리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으니까.

실망이 무서워 냉소 뒤로 숨는다.

사실 누구보다 기대하면서

애써 비웃으며.

그러다 그녀는 넷플릭스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다시 봤다.

주인공은 제3의 눈을 이마에 붙이고 무한한 허무와 싸운다. 허무가 발생한 건 주인공이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누구든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후부터다.

난 내게 물어본다. 모든 게 한꺼번에 될 수 있다면

넌 어디에 누구와 함께 무엇이 될래? 내가 조금만 어렸다면 분명 나와 제일 먼 곳으로 가서, 지금과 제일 먼 내가 되겠다고 말하겠지. 그러나 난 알아.

나에겐 오직 이 인생만이 주어졌다는 걸.

결국 내가 될 거라는 걸.

몇 번을 돌려도 다시 제자리로 올 거라는 걸.

난 덕분에 위안을 얻어.

나 역시 허무 속에 희망의 씨앗을 발견할 거라는 걸.

실패도 슬픔도 결국 내 이야기가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아.

결국 주인공 역시 무한한 가능성을 물리치고 자기 자신이 되는 선택을 하듯. 나 역시 그럴 거라는 걸.

난 이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실패해.

나는 또 실패할 준비를 하지.

그리고 기대하지. 얼마나 근사하게 실패를 할지.

난 이런 내가 기특해져서 나를 꽉 안아.

내가 싫어하는 실패를 좋아하는 여름에 한다면

조금은 덜 싫어하지 않을까?

실패와 손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실패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난 또 떠날 준비를 한다.

실패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

나름대로 다시 쓰는 여름이었다.

멋들어진 가짜보다 촌스럽지만 진짜 내 것이 더 좋다.

작지만 확실한 내 것을 모으기 위해 나는 여름을 소비할 예정이다. 부단히, 부단히….

온전한 내 것으로 이름 붙여진.

여름을 닮은 사람이 될 수 있게.

삶을 뜨겁게, 화창하게.

삶의 땀을 흘리며.

무엇이든 될 수 없기에 오히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여름을 닮은 사람.

자연을 닮은 사람이 되기 위해.

풋풋하고, 싱그러운 마음으로

세상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눈을 장착하며

여름이 아무리 뜨거워도 내겐 별 수 없지.

내가 좋아하는 시를 닮아 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난 여름을 소비할 거야.

단단한 각오.

이 문장을 문신처럼 마음에 새기며.

여름 안으로 사라 질 준비를 한다.

아름답게 비밀스러운 사람이 되기 위해.

시를 닮은 사람이 되기 위해.

사라 질 예정.


여름 하늘을 보는 것은 시,

하지만

책에 결코 실리지 않는다


진짜 시들은 달아난다 -


-에밀리 디킨슨.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계절.

가지고 있는 물건. 사유도 가벼워지기 좋은 계절.

삶을 대변하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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