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높이,
언젠가 자장가로 들었던 나라가 있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의 푸른 하늘에서 당신의 꿈이 진실이 되지요.
언젠가 나는 별에 기도하지요.
눈을 뜨면 구름 위에 있게 해 달라고.
거기는 고민이 레몬 드롭처럼 변하는 곳.
당신이 나를 찾아내는 곳.
무지개 너머 파랑새가 날아요.
새는 무지개를 넘는데,
왜 나는 할 수 없지요?
-오즈의 마법사 ost-
헤르만 헤세 <데미안>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수업시간 헤세는 자신의 책에 쪽지 하나가 꽂혀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안에 몇 마디 적힌 문장에 사로잡힌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시스.”
그것은 데미안이 보낸 답장이었다.
헤세가 그린 꿈속의 새가 데미안을 찾아 날아갔고
데미안에게 답장이 왔다.
이 문장은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는데 다음 헤세의 문장이 기어코 나를 넘어뜨리고 말았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가까스로 문장 위로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우며
먼지로 더러워진 마음을 털어내고 자리를 벅차고 일어나려는데 또 다른 문장이 나를 붙잡았다.
이따금씩 저녁에 거리를 걸을 때 그리고 초조함에 자정까지도 집으로 돌아올 수 없을 때, 그럴 때 나는 이따금씩 생각했다. 지금, 바로 지금 틀림없이 나의 연인이 내게 오고 있을 것이라고, 다음 모퉁이를 지나고 있을 것이라고. 그 모든 것이 때로는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워 죽어 버릴 작정도 했다.
나의 연인의 꿈이다.
나의 욕망은 글쓰기다.
나의 고통은 자유롭게 나는 것.
나는 글 속에서 활보하며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이 나의 꿈이다.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는 일 없이 활자 위를
날아다닐 날개가 필요해졌다.
책은 날개가 되었다.
수많은 작가들의 언어와 시유로 쓰인 책들을 날개 삼아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세상에 내 존재와 위치를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그들의 언어와 사유가 아닌 오롯이 나의 언어와 사유가 될 날개로 갈아 끼우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습과 도약이 필요했고 나는 일단 닥치는 대로 읽고 글을 써 내려가며 나의 것을 부단히 만들어냈고 마침내
어느 정도는 만들어낸 듯하다.
이제는 나도 제법 나의 것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가진 듯했다. 이제 모든 준비는 갖추어졌으니 날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나는 법을 몰랐다.
나는 법을 배워 본 적이 없다.
어떻게 날아야 하는지.
안전하게 나는 방법이 없을까 고심하며
하지만 모든 일에는 늘 시작이 있고 늘 배움이 있으며 처음은 늘 서툴고 늘 다치는 게 당연한 일.
몸소 몸으로 배우며 완전히 내 것으로 습득해야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나는 두렵고 겁이 나서 나는 법을 포기했다.
겁이 많아진 어른으로 자란 나는 무모한 모험 대신
안전한 편안함을 선택했고 쭉 그런 어른으로 자라왔다
자신을 내던지는 도약을 위한 홱홱 날갯짓의 대신
두 다리로 길 위를 걷는 안전한 방법을 선택한 나.
그럭저럭 삶은 흘러갔다.
무미건조하지만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거침없이 자신의 날개로 날아가는 새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나도 날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며 부드럽게 저 멀리 어딘가로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을 시샘했다.
나는 무지개 너머 모든 고민이 레몬 드롭으로 변하며
나의 꿈이 진실이 되며 편안한 구름 위를 안전하게 내달리는 세계 속의 나를 상상하며 마음속 파랑새 한 마리를 하늘 위로 날려 보낸다.
저 멀리 무지개 너머 어딘가 존재할 세계에 먼저 닿아내게 전해주라고.
진짜 그런 곳이 존재한다고.
그러니 너도 날아보라고.
날자. 저 멀리 함께 날아가자.
나는 두려움이라는 알을 깨뜨리고 다시 태어난다.
새는 세계가 되며 나는 새에게 날아간다.
작가는 신이 된다.
여기서 새는 책과 글이 된다.
책과 글이라는 속옷을 입고 삶의 외투를 걸치고 거리를 나서면 전에 없던 용기가 쏟아난다.
나는 새로운 용기의 옷을 입고 새롭게 태어난다.
그렇게 희망의 날개를 장착하고 맘껏 자유를 찾아 날아오른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에게는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겁쟁이 사자에게는 용감한 용기를
허수아비에게는 생각할 수 있는 사유를
양철 나무꾼은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심장을
나에게는 전에 본적도 느낀 적 없던 새로운 감각을
삶의 용기를 사랑을 머나먼 꿈을
비가 갠디 햇살이 비추면 눈부신 무지개가 하늘에 피어나듯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기쁨이 자리 잡고 마음에 평안이 피어난다.
삶은 그렇게 멋진 옷을 차려입고 살아낸다.
빈 종이 위를 내달리며 한 발짝씩 발자국을 남긴다.
연필을 손의 꼭 쥐고 부단히 나를 기록한다.
삶이라는 종이 위에 나를 그려내며
아쉬웠던 나, 멋있었던나, 미웠던 나, 앞으로 의 나를 포함하여 전부 인 나를 거침없이 그려낸다.
입가에 묻은 말들을 닦아내며 하고픈 말들은 사랑 앞에 잠시 놓아두고 말없이 꼭 끌어안으며 나를, 가족을, 친구들을, 타인을 위로한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부족함을 서로에게서 채우며 삶을 살아가고 영위해 나간다.
이미 자신에게 있었던 것을 타인을 통해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
우린 그렇게 또 성장해 나간다.
그렇게 우린 또 어른이 된다.
봄이 지나 장마가 시작되고 난 후면 여름이 오고
가을비가 지나고 나면 겨울이 온다
새로운 계절을 마주하기 전에 피할 수 없는 비.
어떤 힘들어하는 이에게 말해주었다
비는 성장통 같은 거야
네가 새로운 뭔가를 배우며 너 자신조차 답답하게 느껴 흘린 눈물은 곧 다음의 너를 위해 흘리는 눈물이야
한 방울의 눈물이
너의 생각을 담은 물웅덩이가 되고
퍼져나가 바다랑 하나가 되는 순간
너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되겠지
비는 하늘에서 흐르는 눈물
비를 맞는다는 건 결국 치유되는 것
깨끗해지는 행위.
잃어버렸던 용기를 되찾고
창문으로 날아갈 준비.
세상 밖으로
훨훨.
다시 돌아갈 안전한 집이 있다는 든든함을 안고.
울어버리자.
울어버리자.
먼지 한 톨 남지 않게
깨끗하게 마음을 헹구는 일.
그렇게 비 속으로 사라 질 준비.
아름답게 눈부신 무지개로 다시 태어 날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