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일 - 1일 = 318일
벚꽃에 흩날린 아름다움과 쓰레기 같은 더러운 기분이 공존했던 하루.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하루인 듯했다.
물론 고민거리로 머릿속은 좀 복잡하긴 했지만... 그래도 차창을 통해 바라보는 풍경은 좋아 보였었다.
그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주말 동안 누나네 집에서 형이 귀국한 이후 거의 2년 만에 제대로 가족끼리 뭉쳐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형이 귀국한 지는 2주 정도 되었지만, 여독을 풀고 개인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제대로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 각자의 고민들을 나누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알찬 주말이었다.
월요일 출근을 위해 아쉽지만 다시 각자의 집으로 떠났다.
형은 KTX를 타고, 난 버스를 타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한 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했다.
다시 시내버스로 갈아타기 위해 터미널을 나섰다.
터미널 입구는 두꺼운 통유리로 된 미닫이 문이었다.
문을 밀면 무게가 있는터라 앞사람이 잡아주지 않으면 바로 닫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약간의 배려가 있다면
먼저 나가는 사람이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잠깐이라도 잡아주면 은근히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그 문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앞 쪽에 20대 정도의 커플이 먼저 문을 열고 나간 후 나 역시 뒤따르는 순간...
먼저 나간 일행은 아쉽지만 문을 잡아주지 않았다. 순간 문이 뒤쪽으로 닫히려는 것을 손으로 잡아 밀고 나가려다
그만 앞서나간 커플 중 남자의 뒤꿈치가 내 신발 앞코에 살짝 부딪혔다.
이건 맹세코... 심하게 걷어 찬 것도 아니었다.
문을 잡는다고 앞만 보고 가던 찰나 그 남자와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정말 살짝 신발
앞쪽 코에 그 뒤꿈치가 살짝 닿았다. 나 역시 깜짝 놀라 미안하다는 액션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며
"죄송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이렇게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당연히 "괜찮습니다", '아! 네" 이 정도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게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던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고 인상을 쓰면서...
씨 X...이라는 욕설의 입모양과 구겨진 인상.
재차 "미안합니다"라는 사과를 건네었으나, 그 남자는 내쪽으로 다가오려는 제스처를 취하며 다시 한번
'씨 X'이라는 입모양과 함께 인상을 쓴 후...
여자친구와 어깨동무를 한 후 껄렁한 모습으로 뒤돌아 서서 본인의 길을 떠났다.
20대 초중반 정도 되었을까?
짜증이 물밀듯 밀려왔다.
'휴~ 한참 어린 저 꼬맹이한테 이런 욕을 들어야 된단 말인가...'
자존심도 상했다. 그런데 실수라고 하지만 어쨌든 내가 부딪힌 상황이었기에 따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순간 든 생각은...
괜히 이런 시비에 말려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무서운 20대'라는 생각도 함께...
솔직히 난 싸움을 잘하지 못핬다. 그래서 더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그 타이밍에 신호등이 바뀌어 나는 길을 건넜고 그들은 길을 건너지 않았었다.
길을 건넌 후,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한 번 쳐다봤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다가 발을 보는 듯하더니, 갑자기 여자친구와 껴안기도 하는 등 부딪힌 뒤꿈치의
상태는 건너편에서 보았지만 전혀 이상은 없어 보였다.
이건 나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살짝... 앞사람과의 거리 간격이 가까워 발걸음에 부딪힌
그 정도의 힘이 가해진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오만 인상과 욕설을 굳이 했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처음에는 실수든 아니든 간에 내가 부딪혔기에 진실로 미안한 마음에 인사를 했었지만...
그 인상과 욕설을 내뱉는 입모양을 보는 순간
나 역시도 마음의 입에서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수만 가지의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물론 그들은 듣지 못했지만...
불과 버스 내리기 전까진 흩날리는 벚꽃잎들을 보며 세상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 사건 이후로는 세상이 메마르고, 무섭다는 상반된 생각뿐이었다.
이해심이 부족한 세상이 된 것 같다. 배려가 없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위아래가 없는 세상이 된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잘못은 내가 먼저 했지만 이해를 구하려고 한다며
꼰대라고 여기는 사람도 분명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꼭 이 일뿐만이 아니라... 단지 이 사건이 나에게는 생각을 되돌려 볼 수 있는 촉매제가 되었을 뿐...
여전히 뉴스를 보면 온갖 험한 사건, 사고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어른들이 말하는 '옛날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이었는데...'라는 말을 다시 한번 공감하게 되었다.
요즘에는 내 자식, 조카들이 아니면 어린 친구들이 담배를 피운다거나 욕설을 하고 다닌다고 해도
그냥 모른 체 하고, 오히려 피하려고 한다.
괜히 휘말렸다가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에...
그만큼 어른... 아니 사회의 선배로서 역할도 하기 힘든 세상이 됐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쉽게 성질을 내고, 아무렇지도 않게 욕설을 내뱉는 그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만, 괜히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한 가지 바람이 있었는데...
'우리 조카들은 절대 저런 가족들이 안 보는 곳에서 저렇게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라며 다소 개인주의적인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메마르고 인간미가 예전보다 없어진 건지...
아니면 내가 변화하는 세상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지 못하는 건지...
뭐가 맞는지 솔직히 알 순 없지만 쉽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씁쓸한 경험을 한 하루였다.
좋아하는 작가님의 문구 중에... 기억을 날조한다는 표현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오늘 이 사긴이 어쩌면 나의 판단이 맞았다기보다는...
'그 남자는 정말 뒤꿈치가 원래 통증이 심해서 아픈 상태였는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하게 그 아픈 부위에
가격을 당해 순간적으로 인상이 쓰이고 욕설을 했었겠지?'라고도 생각해 보고 싶기도 하다.
그 남자의 속사정을 모를 수도 있기에.. 괜히 모르는 사람에 대한 태도를 지적하는 것 또한 편치 않기에..
어쨌든 유쾌한 하루는 아니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