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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돌 Apr 29. 2024

여보! 당신이 보기에 나 지금 잘하고 있는건가요?

나도 혼자 애들 키워보는건 처음이라...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네.

남편은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쉽게 깨지 못했다.

'하긴... 평소보다 말도 많이 하고, 앉은 상태로 오래 있다 보니 많이 힘들었겠지...'

잠든 남편의 모습을 계속 쳐다봤다.

그래도 젊은 시절에는 잘 생겼다는 소리도 많이 들은 남편이었다.

지금은 비록 몸이 아파서 볼살도 많이 빠지고 수척해진 모습이긴 하지만...

얼굴을 계속 쳐다보니 영애 씨는 본인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사람이랑 왜 결혼을 했던 거지? 지금 보니깐 예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데...'

'그때는 어떤 매력이 있어서 결혼을 한다고 했을까?'

영애 씨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과거 연애시절이 떠올랐다.


남편과는 아는 지인의 소개로 만나긴 했지만, 처음부터 호감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키도 작고, 그렇게 재미있는 편도 아니었다. 그 당시에도 술은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 술 좋아하고, 재미도 없었는데 뭐가 좋다고 진짜 결혼을 한 거지?'

남편은 대신 자상한 편이었다. 그리고 영애 씨에게 첫눈에 반한건지 회사를 마치면 매번 영애 씨를

찾아와 얼굴을 보고 돌아가는 등 순애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마 그 자상함과 순애보에 영애 씨는 넘어간 듯했다.

'그때 내가 너무 순진했었나? 이렇게 허약한 사람인 걸 알았더라면 좀 더 고민해 봤을 텐데...'

괜스레 혼자 농담 아닌 농담을 하며 애써 웃어 보이려 했다.


'얼마나 힘들까?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 저렇게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있으려니...'

안쓰러워 보였다. 앙상하게 마른 남편의 모습을 보니...

잠시 후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눈을 떴다.

"어. 니 계속 이렇게 앉아 있었나? 그냥 좀 자고 있지..."

"아니. 잠도 안 오고 해서 그냥 있었지. 배 안고파요?"

"집에라도 가지. 애들도 지네들끼리 있으면 무서울 텐데... 아직 별 생각이 없네."

"무슨 생각으로 밥 먹나? 약 먹어야 되니깐 밥 먹어야지. 좀 있으면 저녁 나올 시간이니깐 드세요!"

"아... 그래."

영애 씨는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약이 먹기 힘들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현재 남편의 몸 상태는 하루라도 약을 거르면 더 악화될게 뻔하는 것도 잘 알고 있기에...

의무적으로 밥을 먹고 약을 복용해야 된다. 그래서 남편의 투정을 받아줄 여유가 없는 상태다.

"니는 밥 먹었나?"

"당신 밥 먹는 거 보고 먹으려고... 나는 신경 안 써도 된다."

"지금 컨디션은 좀 어때요?"

"그냥 좀 힘이 없네. 오늘 말을 좀 많이 해서 그런가..."

"그래요. 그럼 계속 좀 누워 있어요. 이따 저녁 오면 내가 일으켜 줄게요."

자고 일어났지만, 남편의 컨디션은 나아지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지금이 남편에게는 최상의 컨디션이라는 것을.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남편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악화되어 간다.

약은 단지 현재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한 보조일 뿐이었다.


저녁이 나왔다. 남편이 최근에는 잘 씹지 못하기에 저녁은 거의 흰 죽이 나온다.

"저녁 나왔어요. 내가 일으켜 줄게요."

"어..."

남편을 일으켜 베개를 허리 쪽에 받쳐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리고 숟가락으로 죽을 떠다 주었다.

숟가락 들 정도의 힘도 없어 보였다.

"이거 양 얼마 안 되니깐 다 먹는다 생각하시고, 천천히 드세요."

"어..."

많지 않은 양이었지만, 식사는 한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자! 입 한 번 닦아 줄꼐요. 그럼 쉬었다 약 줄 테니 다 드시고..."

크게 거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남편도 알고 있었다. 이 약을 먹는다고 해서 본인의 건강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도 거부하지 않았다. 영애 씨가 시키는 대로 그저 따랐다.


"당신 내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내가 계속 약 먹게 하는 것도 다 당신 위한 거니깐..."

"나도 알고 있다. 약 먹는 거 힘들다는 거..."

말을 하다가 눈물이 나는 바람에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괜찮다. 내가 미안하지..."

"오늘은 집에 들어갈래?"

"왜요? 내 있으니깐 불편하나?"

"니가 힘들잖아. 내일 애들도 온다고 하니깐 같이 오라고..."

"됐어요. 이 시간에 어떻게 가노? 그냥 여기 있을 테니깐 잠 오면 자도 돼요."

영애 씨는 속마음과는 달리 괜히 겉으로는 툴툴거리는 어투로 남편에게 말을 이어갔다.

남편의 모습을 보니 괜히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탓에 말투도 더 강하게 나오는 듯했다.

'아픈 사람한테 왜 이렇게 쏘아붙이지... 속마음은 안 그런데... 잘 안되네.'


"혹시 당신은 내일 애들 오면 뭐 하고 싶은 거 없나?"

화제를 한 번 돌려보기로 했다.

"애들 얼굴 보면 좋은 거지. 지금 내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아니... 뭐 놀고 뛰고 하는 거 말고... 그냥 애들 오면 같이 할 수 있는 것들 있잖아."

"막내 노래 부르는 거 들어보고 싶을 수도 있고... 뭐 그런 거 있잖아!"

"허허허... 노래 들으면 좋지."

"우리 막내가 내 닮아서 노래도 잘하지."

"치... 자기 닮기는. 그럼 내일 애들 오면 노래라도 한 번 불러보라 해야겠네."

"막내가 아빠 보고 싶어 죽을라 하는데..."

갑자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영애 씨의 말을 듣고 남편이 울기 시작했다.

"관돌아...아빠가 미안하데이..."

"갑자기 왜 이래요? 울지 마라!"

남편을 달래는 영애 씨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런 모습이 남편 입원 후에는 거의 일상이었다. 주변에서도 안타까운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영애 씨는 정신을 차리고 얼른 남편의 눈가를 닦아 주었다.

"내일 애들 보면서 또 울 거가? 그럼 애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아이다. 안 울 거다. 그냥 좋아서 그런 거지..."

"좋은데 왜 울어요? 내일은 울지 마래이!"

남편을 다독이면서 영애 씨는 더욱 굳게 마음을 먹었다.

'내가 강해져야 된다. 그래야 애들을 지킬 수 있다. 남편 앞에서 이제 울지 말자!'


남편은 낮에 잠을 많이 잔 탓에 잠이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눈을 뜬 상태로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짐이 더 안 와요?"

"어. 낮에 많이 자서 그런지.. 아직 잠이 안 오네."

"니는 안자나?"

"여보! 혹시 우리 애들이 나중에 뭐 했으면 좋겠는지 생각해 봤나? 어떻게 컸으면 좋겠노?"

영애 씨는 궁금했다. 남편이 바라는 자녀들의 미래 모습이...

영애 씨는 알고 있지만, 그 모습이 남편의 생각과 일치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살아가면서도 항상 스스로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들었었다.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당신 없는 동안 내가 우리 애들 잘 키웠는지 모르겠네. 당신이랑 같이 있었으면 지금보다 더 나았겠지?'

'궁금하네. 당신은 우리 애들이 어떤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는지... 어떤 사위, 며느리가 좋은지...

어떤 사람으로 컸으면 좋은지.. 나중에 내가 당신 만나러 갈 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


남편은 영애 씨의 질문에 아직 답을 하지 않았다.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잠시 후 남편은 입을 뗐다.

"우리 애들 다 잘될 거다. 내가 옆에 없더라도 니가 잘 키울 거잖아."

"나는 니 믿는다. 우리 애들도 믿고..."

"아니! 그런 거 말고... 애들이 뭐 했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이랑 결혼했으면 좋겠다. 이런 거 없나?"

"첫째는 선생님. 둘째는 육사 가서 군인. 막내는... 아직 잘 모르겠네."

그랬다. 남편은 첫째에게는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똑똑한 첫째 딸이었기에 당시 제일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선생님이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둘째 또한 당시 군인... 특히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장교가

되면 어느 정도의 삶이 보장될 수 있었기에 군인을 희망했다.

막내는 아직 어린 탓에 그저 귀엽고 착하게 크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똑같네. 선생님, 군인..."

"만약에 그렇게 안되면 어떻하노? 괜찮겠나? 내가 그러면 잘못 키운 거 아닌가?"

"아이고.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내 말대로 다 되면 어짜노? 그냥 지들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거지."

"니도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내처럼 아프면 안된데이..."

"니 없으면 이제 애들 고아다. 알겠제?"

'고아?....'

생각해보지도 않은 단어였다. '고아...'

'부모가 없으면 고아가 맞다. 그래 내까지 없으면 이 녀석들은 고아가 된다.'

영애 씨는 남편의 말에 뜨끔했다. 아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애들 그렇게 안 만들 테니깐 당신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세요. 그래야 애들 선생 되는 것도 보고

군인 되는 것도 볼 수 있지."

"그런데 막내는 뭐 됐으면 좋은 거 없어요?"

"허허허... 그놈은 지하고 싶은 거 하면 된다. 마음이 여려서 걱정이지..."


남편은 어떻게 보면 자식들과 긴 시간을 가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자녀들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만큼 자녀들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이었다.

'미리 얘기를 해줘야 하나? 우리 애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영애 씨는 현재 삼 남매의 모습도 알고 있기에 미리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내 임무는 우리 삼 남매 잘 키우고, 나중에 떳떳하게 말해주는 거네. 그래... 당신도 거기서 잘 지켜

보고 계세요. 내가 나중에 가서 꼭 얘기해 줄게. 그때는 내 칭찬도 많이 해주면서...'


영애 씨는 남편과의 짧은 대화였지만,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 좋았다.

'이제 숙제를 제출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네...'


그 의사와의 약속한 시간 중 이미 절반이 흘렀다. 서서히 정리해야 되는 시점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는 곧 남편과 이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회차에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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