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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돌 May 06. 2024

남편의 유언하는 모습... 지켜보는건 쉽지 않았습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 이 세 마디가 전부였지만...

날이 밝았다. 이틀 연속 같은 장소에서 눈을 뜬 건 참 오랜만인 것 같았다.

'아직 병실인가 보네?'

영애 씨는 속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남편과 헤어지기에는 뭔가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오전 7시.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을 쳐다보았다.

아직 자고 있는지 어제 잠들어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이불을 고쳐 덮어주기 위해 남편에게 다가가려고 하는데, 이미 남편은 잠이 깬 상태였다.

몸만 움직이지 않은 상태였지, 눈을 뜨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천장만 응시하고 있었다.

"언제 일어났어요? 난 계속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일찍 깼어요?"

"잠이 안 와요? 언제 일어났는데?"

"아까... 그냥 잠이 잘 안 오네. 하루종일 누워있는데 잠이 잘 오겠나?"

"니는 좀 더 자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노?"

"나도 똑같지머... 좀 앉을래요?"

"그래. 미안한데 좀 일으켜줄래?"

영애 씨는 조심스럽게 남편의 한쪽 손을 잡고, 등을 받쳐서 일으켜 앉혀 주었다.

"그냥 누워있는 게 안 편해요?"

"아니. 계속 누워있으니깐 허리도 아픈 것 같고... 잠깐이라도 앉아있는 게 낫지머..."

"애들은 몇 시에 온다노?"

"10시쯤 넘어서 출발할 것 같은데..."

"휴... 주말에 지들도 아빠랑 엄마랑 해서 같이 놀러도 다니고 해야 되는데... 병원에나 오고 참..."

"그렇게 애들 걱정되면 빨리 일어나던가... 걱정만 하노."

영애 씨는 괜히 남편에게 핀잔을 주었다. 이렇게라도 남편이 빨리 조금이라도 기운을 차렸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나도 빨리 일어나고 싶은데... 그게 생각만큼 잘 안되네."

"미안하데이..."

"또 그 소리다! 별 희한한 소리 요즘 들어서 많이 하네요! 미안하지 말고 그냥 일어나면 되잖아!"

"애들도 다른 친구들처럼 아빠랑 손잡고 놀러도 가고 싶다고 하던데..."

"관돌이는 빨리 아빠가 운전하는 차 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난리다!"

"그래... 그 녀석이 유독 내 차 타는 거 좋아했는데... 빨리 그렇게 해야 되는데..."

막내아들은 유독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가끔은 출근하는 길에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출근 버스 옆에 태워 함께 동행하는 일도 있었다.

"여보... 나 다시 관돌이 차 태워 줄 수 있겠나?"

영애 씨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다.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영애 씨는 병실 문을 열고 서둘러 화장실로 뛰어갔다. 화장실 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걸 살핀 후,

문을 잠근 후 펑펑 울었다. 남편이 아까 던진 질문이 너무 마음 아팠다.

'얼마나 괴로울까?'

'저렇게 자식을 사랑하는데... 고작 차 태워주는 일인데... 그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책할까?'

남편의 상황이 너무 안타깝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남편 앞에서 울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대답 또한 할 수 없었다.

'당신 이제 운전은 할 수 없으니 그런 건 이제 상상조차 하지 말라는....'

남편 또한, 본인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두 번 다시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작은 바람이라고 해야 되나?

어쩌면 남편이 마지막으로 자녀들에게 뭔가 소중한 추억을 심어주고 싶은 바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순간 오늘 날짜가 궁금해졌다.

'벌써... 날짜가 이렇게 됐구나. 벌써...'

그랬다. 이제 불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영애 씨는 직감했다.

과거의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영애 씨가 알고 있는 대로 시간은 흘러갈 것이다.

이렇게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 눈에 보듯 뻔하지만 현실을 바꿀 수 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아니... 이렇게 시간만 되돌려서 오면 뭐 하냐고... 어떻게 내가 손을 댈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도대체 나보고 뭘 어쩌라고...'

괜히 지금 이 상황에 놓인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 나한테 이렇게 두 번 세 번의 시련을 주는 건지... 정말 더 안 보고 싶은데...'

그렇게 꽤 오랜 시간 혼자서 화잔실에서 펑펑 눈물을 쏟은 후,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남편은 여전히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상태 그대로였고, 동생 영자가 와있었다.

"언니! 어디 갔었노? 형부 혼자 놔두고..."

"아! 니 또 웬일이고? 어제도 와 놓고서... 니 안 바쁘나? 여기 자꾸 안 와도 괜찮은데..."

"언니는 참... 내가 어제 온다고 얘기했었잖아!"

순간 영애 씨는 어제 동생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아! 맞다. 유언...'

'지금 이 시간에 설마 하려고?'

'아직 남편에게 말도 못 했는데... 그 말을 듣고 남편은 순순히 받아들일까?'

영애 씨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분명 필요한 상황이긴 했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

영애 씨뿐 아니라, 당사자인 남편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기에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궁금했다.

영애 씨는 잠깐 동생을 밖으로 불렀다.

"영자야! 아직 내가 너네 형부한테 거기에 대해서 얘기도 못했다."

"형부도 갑자기 얘기하면 당황스러울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네."

"언니야! 괜찮다. 아까 내가 벌써 형부한테 얘기해 놨다!"

"응? 무슨..."

"형부한테... 우리 언니하고 조카들 이제 아빠 생각나고 보고 싶을 때 어떡해요?라고 하면서..."

"형부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으시더라.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한 번 생각해시라고

먼저 말씀드렸다."

"그러니깐 뭐라고 하던데? 바로 알았다고 하더나?"

"응. 형부도 싫은 내색 안 하시더라."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영애 씨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동생에게 고맙기도 하면서, 남편에게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유언...' 이건 살아있는 동안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누군가에게 남기는 말이라는 의미를...

남편 또한 모르는 상황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한 번에 남편이 응한다고 들었다.

'차라리 동생이 아니라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내는 게 맞았을까?'

남편에게는 어쩌면 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마지막 과업일지도 모른다.

그 중요한 일을 자신이 아닌 동생의 입에서 들었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병실로 다시 들어가 조용히 남편 옆으로 다가갔다.

남편은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뜨더니...

"처제야! 언제 하면 되노?"

"네? 형부 벌써 준비 다 했어요?"

"그래. 난 다 됐다. 애들 오기 전에 빨리 끝내야지."

"여보... 당신 괜찮아요? 내가 먼저 말을 꺼냈어야 되는데... 미안해요."

"아니다. 이건 오히려 내가 먼저 당신한테 부탁을 해야 되는 일이었는데..."

"내가 미안하데이. 말 꺼내기 쉬운 일도 아닌데... 나도 용기가 없어서 부탁을 못했네."

"생각은 다 했어요?"

"그래. 우리 애들한테 아빠가 남기는 마지막 말이 될 수도 있는데... 조금이라도 기운 있을 때 하는 게 맞겠다

싶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정신 있을 때 하는 게 낫다!"

"알겠어요. 그럼 난 그냥 옆에 있을 테니 영자가 하는 대로 잘 따라 해 보세요."

"영자야! 그럼 형부 잘 좀 부탁하재이!"

"그래. 언니는 옆에 앉아 있으면 된다."

그렇게 동생은 준비해 온 카세트를 꺼내서 공테이프를 넣고 녹음할 준비를 했다.


요즘 같은 시대였으면, 간편하게 소형 녹음기나 휴대폰에 음성을 남길 수 있었겠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전자기계가 없었기에... 그나마 목소리를 온전히 남길 수 있는 도구는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할 수 있는 방법이

유일했었다. 드디어 준비가 되고, 동생은 '시작'이라는 신호와 함께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남편은 최대한 힘 있는 목소리로 유언을 시작했다.


"짜잔~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아빠입니다. 하하하.

 아빠가 얼굴은 못 보여주더라도 이렇게 목소리로나마 우리 애들한테 인사합니다.

 우리 이쁜 첫째! 우리 멋진 둘째! 셋째 귀여운 막내 관돌이!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내 아내 영애 씨!

 이 못난 아빠, 남편 지금까지 사랑하고 아껴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아빠가 지금은 몸이 아파서 같이 놀러도 못 다니고, 재미있게 못해줘서 많이 미안하네요."

옆에서 남편이 애써 힘을 내며 녹음을 하는 모습을 지켜본 영애 씨는 숨죽여 흐느꼈다.

녹음기를 들고 있는 처제도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어쩔 수 없이 옆에서 형부의 얘기를 들으며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 또한 아내와 처제의 모습을 눈으로 지켜봤지만, 애써 못 본체하며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첫째는 지금처럼 동생들 잘 챙겨 주세요. 아빠가 우리 딸내미 시집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결혼식 때 같이

손잡고 들어가 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할 수 없게 돼서 많이 미안합니다. 그래도 우리 딸 많이 사랑합니다.

힘들겠지만, 옆에서 엄마도 잘 챙겨주고, 동생들도 잘 돌봐주세요.

그리고 우리 듬직한 둘째 아들! 아빠가 건강해서 계속 같이 있어줘야 되는데 그렇게 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

아빠 대신 엄마가 힘들 때 항상 옆에서 든든하게 자리 좀 지켜주고, 항상 씩씩하고 멋진 남자가 되었으면 좋겠

습니다. 아빠는 우리 아들이 꼭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음으로 우리 막내! 막내는 지금처럼 밝고 착하게 잘 커줬으면 좋겠습니다.

아빠하고 장기도 같이 두고, 아빠가 차도 더 태워주고 해야 되는데 그렇게 못해줘서 미안하네요.

그래도 누나야랑 형아가 있으니깐 말 잘 듣고, 항상 밝게 지내야 됩니다.

아빠는 우리 막내 정말 사랑합니다."


병실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진료를 보러 들어오던 의사와 간호사도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잠시 진료를 멈추어

대기를 하며 소리 없이 흐느끼는 모습이었다. 남편은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아니 애써 모른 척하며 밝은 모습으로 계속 이어나갔다.


"그리고 사랑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내 아내 영애 씨!

 그동안 못난 남편 만나서 잘 참아주기도 하고, 애들 잘 키워줘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잘해준 것도 없는데, 큰 부담감만 남기고 가는 것 같네요.

 내가 지금은 먼저 가더라도 나중에 꼭 보답해 줄게요.

 우리 애들 잘 부탁하고, 당신은 꼭 건강해서 오래오래 애들이랑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그리고 너무너무너무 사랑합니다."


네 명의 가족 각자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남긴 후, 보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을 한 번씩 부른 다음 끝이 났다.

"이상! 여기까지! 다들 모두 건강하시고 난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라는 인시말을 마지막으로 남편은 말을 마무리했다.

짧은 시간 동안 말을 너무 많이 한 탓에 바로 지쳐 앉아 있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의사가 진료를 본 후 다시 침대에 누웠다.


"괜찮아요? 그냥 천천히 짧게 얘기해도 되는데... 몸 좀 생각하지..."

영애 씨는 남편의 마음을 알면서도 한 편으로는 상태가 더 악화될 것 같은 노파심에 걱정이 되었다.

"내 잘했나? 우리 애들한테 얘기 잘한 거 맞제?"

"네. 그 정도면 너무 잘했네요! 이제 애들도 아빠 밝은 목소리 들어서 너무 좋아하겠네요."

"휴... 다행이다. 하다가 말 안 나오면 어떡할지 걱정됐는데..."

"잘했어요."

사실 남편 또한, 녹음하는 내내 울먹였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마지막 임무를 다 해야 된다는 그 책임감에

소리 내 울지 못한 것뿐이지,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흘러내렸고 속으로는 누구보다 많이 흐느낀 상태였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영애 씨는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9시였다.

남편이 이미 지친 상태였으나, 곧 애들이 올 시간도 되었다.

아픈 모습의 아빠를 보여주기 싫었다. 남편 또한 보다 기운 있는 모습으로 애들을 맞이하고 싶어 했다.


"좀 누워 있어요. 내가 밖에서 애들 몇 시에 오는지 확인해 보고 같이 점심 먹고 들어올게요."

"그때까지 좀 잤다가, 내가 이따 깨워줄게요."

"그래줄래? 나도 지금 많이 힘들어서 애들이 내보면 걱정할 것 같네."

"알겠어요. 그러니깐 나도 나가 있을 테니깐 혼자 좀 쉬고 계세요."

"그래. 그럼 내 좀 자고 있을게."


남편의 잠든 모습을 보고 영애 씨는 병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공중전화로 달려가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아직 출발하지 않은 상태였다.

시간 약속을 정해서 병원 앞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이들은 그저 엄마와 함께 점심을 먹는다는 사실에 신나 하는 반응을 보였다.

전화를 끊고 영애 씨는 천천히 병원 밖을 나서 아이들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걸어갔다.


'참 힘든 시간이었다...'


다음 회차에 계속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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