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관돌 Jun 10. 2024

남편 코골이가 그리워질 줄이야...

이젠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하는 소리가 되어버렸지만...

집에서 경주까지 가는 길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오랜만에 타 본 거라 낯설기도 했지만, 여전히 안정감이 느껴졌다.

'이 양반... 진짜 운전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는 건 인정!'

"관돌아! 아빠 차 타고 가는 게 그렇게 좋나?"

"당연하지! 난 아빠가 이 세상에서 운전 젤 잘하는 것 같아서 너무 좋은데..."

뒷 좌석에 타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도 밝아보였다.

전혀 아빠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듯 평소와 같은 일상의 모습 그대로였다.

'지금 이대로만 계속 지낼 수 있다면 애들한테도 얼마나 좋을까?'


가는 길에 휴게소에도 잠시 들렀다.

남편이 피곤해서 들렀다기보다, 아이들의 먹거리를 사기 위해서...

아이스크림, 오징어구이, 과자, 호두과자... 이 날 만큼은 거의 어린이날이라고 할 만큼 아이들이

먹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사서 소풍 같은 날을 보내기로 했다.

차 안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남편은 운전을 하면서도 아이들과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등 옆에서 보기만 해도 신나 보였다.


그렇게 1시간 좀 지나서 경주에 도착했다.

그 시절 경주는 학생들의 소풍, 수학여행 메인 코스이기도 했다.

매년 그림 그리기 대회, 백일장이 열리면 항상 첫째와 둘째는 대회에서 상을 타오기도 했다.

누나와 형이 상을 타오고 나면 항상 막내는 부러움의 눈길로 쳐다보면서도 심술이 가득했다.

"왜 나는 상을 안 주지? 내 그림 그렇게 못 그렸나?"

"아니! 우리 아들 그림 얼마나 멋지게 잘 그렸는데? 아빠가 이따 집에 가서 근사한 상 하나 줘야겠네!"

"진짜? 오예! 아빠 약속했데이!"

"알겠다! 우리 아들 이렇게 잘 그렸는데 상 안 주면 큰일 나지!"

이런 식으로 남편이 아들을 달래주면, 그제야 막내의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심술은 사르르 사라지고 만다.

막내를 가장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남편이었고, 막내 또한 나보다 아빠를 더 따르는 편이기도 했다.

그래서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난 뒤, 제일 신경이 쓰였던 부분 중 하나도 막내였다.

아빠의 빈자리를 어떻게 메꿔줘야 되는지... 막막하기도 했지만...

그 부분은 누나와 형이 잘 도와준 덕분에 생각보다 수월하기도 했다.


우선 도착한 경주에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경주 도투락월드'였다.

이곳은 아이들이 가도 가도 매번 경주를 가게 되면 가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 이 지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곳이기에...

첫째와 둘째는 바이킹, 청룡열차 같은 스릴을 느낄 수 있는 놀이기구를 좋아하는 반면, 막내는 키도 작고

겁이 많은 편이라 누나와 형이 타는 것들은 즐기지 못한다.

그래서 남편이 항상 막내의 수준에 맞춰서 같이 기구를 타주는 편이었다.

만약, 남편이 같이 오지 않았다면 이 녀석의 성격을 감당하느라 다들 힘들었을 것이다.

오늘은 다들 재밌는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우선 누나와 형이 타고 싶어 하는 청룡열차와 바이킹을 먼저

타기로 했다. 막내는 남편이 옆에서 같이 타주기로 했으나 끝까지 거부했다.

"아빠가 옆에서 같이 타 줄 건데... 같이 안 탈래?"

"아니... 못 탈것 같은데... 무서워요. 그냥 어머니랑 여기서 구경할게요."

어쩔 수 없었다. 첫째, 둘째도 지네들끼리 타는 것보단 아빠와 같이 타는 것을 원했기에...

"그래. 그럼 당신이랑 애들 같이 저거 타고 와요. 나는 관돌이랑 같이 구경할게요. 애들도 즐겨야지!"

"그럼 관돌이는 이따가 아빠랑 범퍼카 같이타제이! 조금만 기다려라!"

"네..."

서운한 듯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참는 것도 배워야 하는 법이니깐.


첫째와 둘째도 그제야 신이 났는지, 아빠 손을 잡고 얼른 놀이기구를 타러 뛰어갔다.

평소 막내를 잘 챙겨주던 아이들도 여기서는 그저 철없는 영락없는 아이들이었다.

서운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생이 있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는 모습을 보니, 그저 웃음이 나왔다.

"왜! 누나랑 형아 보니깐 서운하나? 니는 못 따는데 지들끼리 재밌게 노는 것 같아서?"

"아이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어머니 옆에 있으니깐..."

"그래! 관돌이도 나중에 형아만큼 더 크면 탈 수 있으니깐 조금만 기다리재이!"

"네."


멀리서 아이들과 남편이 자리를 잡은 모습이 보였다.

나와 막내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어 준다. 그 순간엔 남편도 표정 관리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너무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가 애고 어른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슬쩍 막내의 표정을 살폈는데, 여전히 뚱해 있긴 했었다.

눈앞에 큰 배가 좌우로 지나갈 때, 비명을 지르기도 하면서 양쪽 팔을 번쩍 들면서 흔들어주는 세 사람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그 당시에 만약 지금과 같은 휴대폰이 있었더라면...

동영상도 남기고 SNS 같은 것에도 올리면서 이 좋은 기억을 머릿속에만 남겨 두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건데.

그저 이 순간의 장면을 남길 수 있는 것이라곤 필름카메라가 유일했다.

그 당시에는 몰랐었겠지만, 먼 미래의 삶을 살아온 영애 씨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목이었다.


'아쉽다. 이 순간을 영상으로 남겨두고 나중에 애들한테 보여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네들도 아빠에 대한 추억이 더 생생할 거고...'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어느새 남편과 아이들이 도착했다.

"재밌더나?"

"우와! 어머니도 같이 탔으면 좋았을 건데... 엄청 재밌어요!"

순간 남편은 관돌이의 눈치를 살핀 건지...

"빨리 우리 막내 타고 싶은 범퍼카 타러 갑시다! 많이 기다렸제?"

"아빠가 목마 태워주까?"

"아! 진짜? 오예!"

"자! 조심해서 타봐라!"

"에이! 아빠! 야도 이제 몸무게도 나가서 무겁다. 그냥 걸어가면 된다!"

형이 말렸다. 그러자 관돌이도 목마를 타려다가 순간 멈칫하였다.

"아이다! 무거워봤자 우리 아들인데... 빨리 타라!"

그제야 막내도 더 힘이 센 아빠를 믿고 목마를 타며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아빠 옆자리에 앉아 범퍼카를 타며 소리를 지르는 등 재밌는 시간을 즐겼다.


놀이기구를 타고난 후, 보문호로 이동해서 점심을 먹었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이었지만,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유일했기에 이 날만큼은 술을 마시지 않았다.

"어째요? 술 먹고 싶어서..."

"아이다! 이따 운전도 해야 되고... 그냥 안 마시면 되지! 당신이나 맛있는 거 많이 먹어라!"

"그럼 오늘 고생했는데, 내가 이따 집에 가서 한상 봐줄 테니 저녁에 드세요!"

"오야! 그럼 나야 고맙지!"

그렇게 점심을 먹고 돌아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오리배를 타고 왔다.

정말 옛날 코스 그대로였다.

'어쩜 그 때나 지금이나 코스가 변하지 않지?'

'하긴... 코스가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너무 많이 경험해 보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와서 그런 거겠지?'

역시 오리배는... 남편이 제일 고생이었다.

둘째가 힘을 보태겠다고 열심히 페달을 굴려보았지만, 아직 큰 힘은 되지 못했다.

남편은 힘이 들 법도 했지만, 힘든 내색 하나 없이 그저 웃고 즐기기 바빠 보였다.


이렇게 경주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약속한 대로 고생한 남편을 위해 나름 솜씨를 발휘해서 술상을 봐주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부침개와 두부김치를 만들고 소주 한 병을 곁들어 주었다.

"우와! 천국이 따로 없네! 야들아! 낮에는 아빠, 엄마가 많이 놀아줬으니깐 이제는 너네도 내일 학교 갈

준비 알아서 하고! 아빠랑 엄마 얘기 좀 할게!"

"네!"

"여보! 매일매일이 이렇게 행복하면 얼마나 좋겠노? 난 우리 가족 다 같이 건강하고 재밌게 지내면 더 

바라는 게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그럼 당신도 평소보다 더 술 좀 줄이고! 담배도... 건강 많이 신경 써야 될 건데..."

"에이... 무슨 소리하노! 내 이제 술이랑 담배도 점점 줄이고 있는데..."

"애들이랑 당신이랑 같이 오래 살려면 건강관리 잘할게!"

"나만 믿어봐라!"


이렇게 해맑은 표정으로 다짐을 했던 남편이었는데...

'왜 그 약속은 하나도 못 지키는 건데!'

'돈을 많이 벌어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건강하게 우리 옆에서 같이 살자는 것뿐이었는데...'

더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쉬움은 여전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남편은 약간 취기가 올랐는지, 아이들을 불렀다.

"너네 학교 갈 준비 다했나?"

"네!"

"그럼 오늘 우리 가족 전부다 마루에서 같이 잘래?"

"오예!"

역시나 막내가 제일 좋아했다.

"오늘 날씨도 덥고 아빠는 그냥 같이 다 자고 싶은데... 별로가?"

"그래요. 그럼 같이 자요!"

"이불 가져와서 깔고 준비할게요."

"아이다! 내가 준비할 테니깐 옷 갈아입고 다들 온네이! 아빠 다 해놓을게!"


영애 씨는 생각했다. 

'어떻게 20평 남짓한 그 공간에서 다섯 명의 가족이 지냈을까?'

그때 그 시절은 지금보다 분명 더 가난한 시기였다.

돈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남편의 벌이도 충분하지 못했다.

영애 씨는 아이들을 돌봐야 해서 딱히 수입이 없었다. 

아니 가끔씩 밤을 깎는다거나, 인형 눈알을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그 역시 충분한 수입은 

되지 못했다. 그래도 오히려 지금보다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 비교하면 지금이 더 힘든 것 같다.


'돌이켜보면 정말 이때가 행복한 시절이었네...'

'남편도 참 젊은 나이에 참 고생도 많이 했었네...'

'쫌만 더 살다 갔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러면 애들이 어떻게 컸는지 같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다섯 식구가 나란히 마루에 누었다.

그리고 얼마 후 '드르렁드르렁'하는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자장가 대신 들려왔다.

아이들도 익숙한 탓인지 개의치 않고 깊은 잠이 든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소중한 추억을 이렇게나마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게 해 줘서... 

이제 잠들면 이 순간도 끝이겠죠?'









이전 14화 남편이 회도 썰고, 운전도 한다! 꿈일까? 현실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