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마래이! 내만 믿어봐라! 다 고쳐줄께!"
멀리서 봤을 땐 작은 어선이라 생각했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제법 큰 배였다.
그리고 따로 운전을 해주시는 분까지 미리 섭외를 해 둔 것 같았다.
'또 언제 이렇게 준비했대? 귀 뜸이라도 좀 해주지...'
영애 씨는 애들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남편 혼자 준비를 했다는 것이 좀 서운한 모양이었다.
"언제 배까지 이렇게 준비했대요?"
"머! 이 정도야 여기선 아무것도 아니지! 왜? 마음에 드나?"
"아니... 뭐 귀띔이라도 해주지. 내나 애들이나 배 타고 멀미할지도 모르고 하니깐 글치..."
"암말 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타기나 하쇼! 내가 그런 거까지 준비 안 했을라고! 귀미테부터 마시는 것까지
다 준비해 놨습니다! 여왕마님!"
"오예! 우리 아빠 최고네!"
영애 씨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기분이 좋았다.
'원래 저렇게 센스 있는 남자였었나?'
먼저 배에 오른 남편은 아이들과 영애 씨가 안전하게 오를 수 있도록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막내는 아직 겁이 많은 탓에 힘껏 안아서 배에 태워주었다.
"자! 이제 다 탔제? 그럼 출발해 볼까?"
"네에~ 아빠 이제 출발!"
"아빠는 선장님! 그럼... 나는 선장님 바로 밑에 1등 졸병 해야지!"
막내가 신이 난 듯한 모습이었다. 첫째, 둘째도 덩달아 신이 난 듯.
"자! 형님! 이제 출발하시죠! 안전하게 운전 잘 부탁합니다!"
이 배는 사실 남편의 고향 선배 소유의 배였다. 오랜만에 동생의 부탁에 못 이기는 척 들어준 모양이었다.
하긴... 남편의 부탁을 거절할만한 사람은 이 동네에 웬만하면 없는 듯했다.
그만큼 남편이 이 동네에서 평판도 좋고 잘해왔기에...
이런 생각이 들수록 영애 씨는 더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배는 출항했다. 다행히 파도도 잔잔했다.
"아빠! 그런데 이거 타고 가면 상어 잡을 수 있어요?"
"상어? 그런데 상어가 우리 관돌이 막 물려고 덤벼들 수도 있을 건데... 괜찮을까?'
"응? 그건 무서운데... 그래도 아빠 옆에 있으니깐..."
"당연하지! 아빠가 상어가 관돌이 물려고 하면 옆에서 막아줘야지! 그런데 오늘은 상어가 나올지 모르겠네!"
"저 멀리까지 가야 상어를 볼 수 있는데... 오늘은 그냥 조금만 나갔다 올 건데... 관돌이는 아빠가 나중에 다시
혼자만 배 태워서 상어랑 고래 한 번 보여줄게! 그래도 괜찮나?"
"ㅋㅋㅋ 알겠어요! 그럼 그때 꼭 보여줘야된데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이란 걸 뻔히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관돌이도 전혀 모르지는 않았으리라. 그냥 아빠 앞에서 말도 안 되는 어리광을 피운 것일 뿐이었다.
한참을 달린 배가 바다 한가운데 즈음 다다르자 천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뭐지? 왜 갑자기 속도를 줄이지... 어디 도착한 건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불안함이 더 컸다.
"여보! 근데 갑자기 왜 멈추는 건데? 주변에 바다 밖에 없는데? 바다 한가운데 같은데... 뭔데?"
남편도 좀 당황스러운 듯한 기색이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아! 형님이 천천히 구경시켜 주시려고 그런가 보지!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봐라!"
남편은 배를 운전하시는 형님이 계시는 항해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남편이 돌아왔다.
"왜요? 무슨 일이라는데?"
"아! 별일 아니다! 배 안 고프나? 짠!"
갑자기 뒷춤에서 감추고 있던 라면을 꺼내 보여주었다.
"너희들 배 위에서 라면 안 끓여 먹어 봤제? 여기 새벽에 잡은 조개도 있고, 해산물도 있어서 넣고 끓이면.."
갑자기 라면을 먹자고 한다.
그런데 시간을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지나긴 했다. 배를 타고 오는데 집중을 한 탓인지 점심을 먹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애들을 둘러봤다.
"너희들 배 안 고프나? 아까 아침도 먹는 둥 마는둥했는데... 아빠가 라면 끓여준다는데, 지금 먹을래?"
"오예! 라면! 라면!"
그저 신났다. 평소 밥보다 라면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녀석들이다 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물어 무엇하랴...
남편은 배 위에서 라면 끓일 준비를 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김치, 파, 온갖 재료들이 펼쳐져 있었다.
'하긴... 이 사람들도 배 타고 끼니를 때워야 되니깐... 이 정도는 항상 준비되어 있겠지.'
이 배 또한, 엄연한 직장이라고 생각하면 이 상황 자체를 아무런 의심 없이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라면이 다 익어갈 때 즈음되니 부르지 않아도 애들은 그 주위를 빙 둘러앉았다.
'이놈들! 평소에도 이렇게 엄마 목소리 톤 안 올리게 미리 말 좀 잘 들었으면...'
영애 씨는 아이들이 귀여우면서도 한 편으론 꽤 심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 먹자! 아빠가 그릇에 떠 줄 테니깐 쫌만 기다려봐래이!"
"어! 그런데 여보! 형님도 같이 드셔야지! 오시라고 해라!"
잠시 머뭇거리는 남편...
"아! 아이다. 형님은 지금 속이 안 좋으시다고... 우리끼리 먹으라고 하시더라!
니도 신경 쓰지 말고 먹기나 해라. 내가 떠줄게!"
"아.. 그래도 같이 드시지... 미안하게."
'같이 드시기 불편해서 그런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고 일단 남편말대로 라면을 먹었다.
맛있었다. 집에서 먹던 그 라면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애들도 너무 좋아했다.
"아빠! 맨날 이렇게 라면 끓여주시면 안 돼요? 맨날맨날 먹고 싶은데..."
"우리 관돌이 그렇게 맛있나? 알겠다! 아빠가 내일도 끓여줄게!"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게눈 감추듯 후다닥 먹었다.
그리고 소화를 시킬 겸 30분 정도 누워있었다. 미동도 없는 배 위에서...
30분이 지나도 배는 꿈쩍도 안 했다. 아니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다시 처음의 불길함이 밀려들었다.
'뭐지? 이제는 쫌 돌아가야 되는 거 아닌가? 벌써 시간이...'
조심히 남편을 다시 불렀다. 그리고 속삭였다.
"뭔 일 있나? 왜 이렇게 안 움직이는 건데? 솔직히 얘기해래이!"
그제야 남편이 입을 열었다.
"아.. 아까 형님이 그러던데... 배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금방 손보면 된다고 하시던데..."
"밥 먹고 있는 동안 다 끝날 것 같다고 하셨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는가 보네."
영애 씨의 불길한 예감이 맞았던 것이다. 솔직히 고장까지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제발 심각한 고장은 아니길 바랐다.
괜찮았던 속까지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멀미하는 모습을 갑자기 보여줄 수 없었다.
속을 진정시킨 채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너희들 괜찮나? 안 춥나?"
"응. 괜찮아요. 그런데 왜 배가 안 움직이지?"
아이들에게도 더 이상 숨길 수만은 없었다.
"아! 배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해서... 지금 아빠랑 아저씨랑 고치고 있는 중이라고 하네."
"뭐요? 고장! 그럼 우리 집에 못 가는 거예요? 내 수영도 못하는데..."
예상했던 대로 막내가 불암함을 보였다. 다행히 첫째와 둘째는 담담한 듯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빠가 지금 고치고 있는 중이니깐, 관돌이도 누나야랑 형아처럼 좀 기다릴 수 있제?"
그제야 차분해진 막내. 막내는 항상 아빠가 뭘 하고 있다면 다 믿어주었다.
그만큼 든든한 지원자이자 열렬한 팬이라고 해야 될까?
솔직히 영애 씨도 불안하긴 했지만, 아이들 앞에서 더 내색은 할 수없었다.
그렇게 막내를 달래고 있는 사이 뒤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리 다 했어요?"
"그럼! 형님이랑 내가 금방 고쳤지! 안 춥더나? 안에 좀 들어가 있을래?"
"아니. 난 괜찮아요. 애들도 아직은 좋아하고... 빨리 출발해요. 감기 걸릴라."
"알겠데이! 그럼 출발한데이! 형님 가시죠!"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처음 배을 탔던 그 장소로 다시 도착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출발할 때는 기대감과 설렘으로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탓이었던 것 같았다.
돌아올 때는 솔직히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기에...
'애들 내일 감기 걸리지 않으려나?'
'저 사람은 괜찮나? 몸도 안 좋으면서 계속 찬바람 맞으면 안 되는데...'
영애 씨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무사히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아무 일 없이...
아니 아무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또 다른 추억이 하나 생긴 거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나중에 또 생각할 수 있는 추억거리 하나 만들어줬네.'
영애 씨는 갑자기 괜한 심술이 났는지 별별 생각이 다 들기도 했다.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영애씨는 얼른 씻고 저녁 먹을 준비를 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거기서 뭐 하는데?"
남편이 먼저 부엌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늘 그냥 쉬라고 했잖아! 내가 다 한다고... 뭐 밖에 나와서까지 니가 다 하려고 하노?"
가스레인지 위에는 이미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 잡아온 생선인지 몰라도 이미 도마 위에 생선 한 마리를 놓고 횟감을 뜨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통닭도 한 마리 주문해 놨다고 한다.
"아니. 언제 이렇게 또 다 준비했는데? 아까 내하고 같이 들어왔으면서..."
"오늘 완전 내 호강하는 날이네!"
영애 씨는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에 놀라기도 하면서도 한 편으론 너무 좋았다.
"오늘만 하지 말고 앞으로 계속 좀 해주면 안 되나?"
남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영애 씨의 애절한 표현이었다.
"왜 안되노? 니가 해달라는데 내가 그거 하나 못해주겠나? 앞으로 집에서 밥 하지 마라! 내가 다할게!"
영얘씨는 눈물이 날 뻔했다.
남편의 저 말이 절대 지키지 못할 약속...
아니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가슴이 메어져 왔다.
저 해맑은 표정을 보니 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됐고! 앞으로 후회하지 말고 오늘만이라도 음식도 최고로 맛있게 만들고!
애들한테도 앞으로 안 잊혀지게 최고로 좋은 추억될 수 있게 한 번 해보소!"
영애 씨의 당부 아닌 당부였다.
남편은 멋쩍었는지 '씩' 웃으며 남은 음식 준비에 만전을 가했고, 성공적으로 저녁 식사도 마무리되었다.
오늘 하루는...
남편이 가족을 위해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애써준 하루가 분명했다.
그리고 앞으로 평생 잊히지 않을 추억까지 선사해 준 멋진 하루라고 해도 이견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긴 하루가 또 마무리되었다.
피곤했던 탓인지.. 아니면 좋아하는 약주를 기분 좋게 한 잔 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은 눕자마자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영애 씨도 아이들이 잠든 걸 확인하고 그제야 남편의 옆 자리에 누웠다.
'드르렁~ 드르렁~'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남편이 코골이.
옆자리에서 잠들기 쉽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영애 씨는 아무 말 없이 누웠다.
흔들어 깨울 수도 있었지만, 곤히 잠든 남편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남편이 코 골면서 자고 있는 이 모습조차도 자신의 기억 속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