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행복의 눈물... 그 모습에 짠해진다...
"아! 웃겨! 아이고 배야~"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분명 딸아이의 목소리다.
'응? 무슨 일이지? 누구랑 저렇게 재밌게 놀고 있는 거야?'
"아빠! 또 그렇게 하네요. 진짜 내가 아빠땜에 못 살겠다!"
남편과 딸이 밖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듯했다.
영애 씨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하나 걸치고 문 밖으로 나가보았다.
영애 씨는 거실 앞쪽에 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순간 쓰러질 뻔했다.
'저게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그때 다시 뒤돌아서는 두 사람 중 딸이 영애 씨를 먼저 발견했다.
"어머니! 일어났어요? 아... 죽겠다! 어머니가 아빠 좀 가르쳐 줘 봐라!"
"응? 뭘 말이고?"
"아니... 어머니 아빠랑 어떻게 결혼했노? 입장하는데 이렇게 떨고 쑥스러워하시는데...
어떻게 어머니 같이 이쁜 사람이랑 결혼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ㅋㅋㅋ"
영애 씨는 딸의 입에서 나온 결혼이라는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 어머니... 뭐 그리 놀라노? 왜? 내 그냥 결혼하지 마까?"
"어?..."
"딸내미 시집보낼라고 하니깐 아까워 죽겠제?"
"아..."
"아빠! 어머니 보세요. 말씀을 못 하시네. 얼마나 아깝다고 생각하시면... 진짜 파토내뿌까?"
딸은 계속 이상한 얘기만 하는 듯했다. 영애 씨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니... 알아듣기 힘들었다.
'내가 알기로도 우리 딸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이쁜 손녀들도 있다. 내가 키우고 있었다. 그 사위도 나와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다. 난 딸 집에 지금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어제부터... 아니 내가 솔직히 얼마나 자고 일어난 건지 이제 감이 안 온다. 그게 어제 일인지 며칠이 지난
일인지 나도 헷갈리네.'
영애 씨는 지난밤 가족들이 몰래 준비해 준 생일파티가 언제 일어난 일인지 조차도 헷갈렸다.
옆에 놓여 있는 달력을 찾아봤다. 날짜는 어제가 맞았다.
'그럼 지금 이게 하루 만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어제 내 생일이 맞는데...'
'그런데 지금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람?'
'결혼을 앞둔 내 딸... 아마 저 두 사람은 지금 신부행진을 준비하는 거 같은데...'
"근데 니 지금 아빠랑 뭐 하는데?"
영애 씨는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 딸에게 물었다.
"뭐 하기는! 아빠랑 내일 신부입장 하는 거 맞춰보고 있지! 근데 아빠도 슬픈지 긴장 많이 하시네!
아직 실제도 아니고, 그냥 연습일 뿐인데..."
영애 씨가 생각한 대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제부터 그럼 계속 말이 안 되는 일들의 연속인데?'
영애 씨는 의자에 앉아 있는 남편을 힐끗 쳐다보았다.
딸 말대로 그냥 힘이 들어앉아 있는 모습 그대로였다. 아파 보인다거나 몸에 이상이 느껴지진 않은 듯했다.
'멀쩡해 보이는데? 아픈 게 다 나은 건가?'
남편 옆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말을 건넸다.
"당신 괜찮나?"
"왜? 몸 계속 안 좋나? 그만해라! 니도 아빠 편찮으시니깐 이제 그만해라 쫌!"
남편의 죽겠다는 소리에 영애 씨는 예민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딸에게 그만하라고 소리쳤다.
그 순간 정적이 흘렀다.
"어.. 머.. 니.. 갑자기 왜 그러는데..."
"니네 아빠가 지금 죽겠다잖아! 힘들다고 하는데 이거 계속해야 되겠나? 니는 아빠 아픈 거 모르나?"
짜증이 났다. 결혼도 중요하지만 아픈 아빠를 쉬지 못하게 하는 딸의 모습이 야속해 보였다.
영애 씨의 말에 깜짝 놀라는 딸은 오히려 다그쳐 물었다.
"어머니! 아빠 어디 아픈데? 많이 심각하나? 언제부터 아프신 건데? 왜 말을 안 했는데?"
계속 다그치는 딸의 모습에 오히려 영애 씨가 더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가만히 쉬고 있던 남편도 한 마디 거든다.
"응? 내 어디 아프다더나? 누가 그러던데? 내 이렇게 멀쩡한데?"
"니 혹시 아까 내가 죽겠다는 말 때문에 그러나? 그냥 계속 왔다 갔다만 하니깐 힘들어서 해본 말이지...
아마 니 자고 있는 동안 우리 거의 한 시간 동안 계속 마루 왔다 갔다 했을 건데... 이래 했는데 안 힘들겠나?"
두 사람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영애 씨는 혼란스러웠다.
"어머니! 아빠 진짜 아픈 거 맞나? 이제까지 내하고 있을 때도 계속 어디 불편하신 건 전혀 없었는데..."
"그냥... 아빠가 얘기한 대로 계속 왔다 갔다 하니깐... 나도 다리 아픈데 아빠는 오죽하실까...ㅎㅎㅎ"
"아... 미안하다. 내가 너무 예민했었나 보네. 아빠 아프고 그런 거 아니다...'
영애 씨는 얼른 상황을 무마했다. 계속 아무도 모르는 상황을 더 어렵게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 상황 역시 분명히 현실이 아니라는 게 분명하기에 더 얘기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것 또한 꿈이다. 꿈이니깐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 벌어지는 거겠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그냥 일어나는 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어차피 꿈에서 깨면 이 좋은 순간들도
다 허상으로 돌아갈 건데... 즐길 수 있으면 나도 즐기자!'
영애 씨는 생각을 달리하기로 또 다짐했다. 쉽지 않지만...
그리고 두 사람이 연습하는 모습을 다시 쳐다보았다. 아까 전과는 다르게 더 유심히 살폈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을 지금 눈앞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기에...
'남편과 딸아이가 신부입장을 위해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정말 꿈속에서만 그려 봤던 모습인데 이 걸 지금
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장면인가?'
님편도 한 명뿐인 딸아이를 결혼시키는 일이 처음이라 당황스러운 듯했다. 아니 딸의 손을 잡고 함께 입장
하려니 떨리는 듯했다. 제일 아끼는 자식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아프기 전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학교에 태워다 주는 열정을 보인 남편이었다.
아니, 아빠였다. 눈에 넣어도 전혀 아프지 않은 그런 첫째 딸이었다.
그런데 시집을 간다고 저렇게 신나 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아빠에게 보여주고 있다.
당연히 걸음을 맞출래야 맞출 수 없는 상태다. 누가 봐도...'
영애 씨는 남편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그래도 기뻤다.
현실에서는 큰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가야 했기에, 그 모습 자체가 보기 싫었던 영애 씨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내 남편, 딸 아빠가 직접 자신의 손으로 시집을 보낼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생각에 영애 씨도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한 마디 건넨다.
"아니! 당신은 결혼 안 해본 것도 아니면서... 왜 처음 하는 딸내미 보다 더 못 걸어가노?"
"내 보다 딸이 더 예뻐서 그런 거가!"
아빠에게 핀잔을 주는 모습이 재밌는지 딸은 옆에서 까르르 웃으며 자지러졌다.
그리고 영애 씨의 말에 멋쩍은 듯한 남편...
"아니... 그건 아니고! 하도 오랜만에 이런 거 해보려니깐 잘 안돼서 그런 거 아이가?"
"그럼 니가 한 번 해볼래?"
"참나... 내가 아빠도 아닌데 그걸 왜하노? 난 우리 아들들이랑 할 건데!"
"하하하하하~"
"빨리 연습 좀 더하고 밥 먹어요! 이제 하루도 안 남았네. 그래도 딸내미 시집은 잘 보내줘야 될 거 아니에요!"
"알겠다. 내 집중 좀 더해볼게. 그리고 내가 실전에 또 강한 편이잖아! 아무 걱정 안 해도 된데이!"
"니도 안심해라! 아빠가 또 마음만 먹으면 잘한다 아이가!"
"알지! 우리 아빠 잘하는 거...ㅎㅎㅎ 그런데 내일 울면 안된데이!"
울지 말라는 딸의 질문에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남편이었다.
그렇다. 남편은 울보였다.
마음이 여리고 착한 사람이었다.
안 봐도 뻔했다. 분명 내일 결혼식장에서 제일 많은 눈물을 흘릴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신부도 아니요! 영애 씨 본인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내일 주인공은 신부인 딸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남편이 주인공은 될 수도 있다. 그 많은 사람 앞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릴게 뻔하니깐...
'그럼 더 바랄 게 없겠네!'
그렇게 30여분 정도 더 연습을 한 후에야 남편과 딸의 연습은 종료되었다.
한참을 연습하고 나니 세 사람 모두 허기가 느껴졌다.
'꼬르륵~ 꼬르륵~'
"저녁은 뭐 먹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아니! 준비하지 마라! 이따 애들이 집에 오면서 사 온다고 하던데?"
"응? 애들?"
"그래. 둘째랑 막내 이따 집에 잠깐 들른다고 하더라. 누나야 결혼하기 마지막이라고...
그래도 마지막 날은 가족들끼리 밥이라도 같이 해야 되는 거 아니냐면서..."
하도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둘러보니 아들 두 녀석이 안 보였다는 걸 영애 씨는 이제 알았다.
'그럼 얘들은 같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얘들 어디 갔는데? 놀러 갔나?"
"응? 아니... 자기 집에 있다가 이제 오는 거지. 요즘 일이 바빠서 그런지 놀 시간도 없다더라?"
"그래도 둘 다 저거 누나 결혼이라고 오랜만에 시간 내서 와주니 고맙지머..."
딸의 결혼식... 출가한 두 아들...
텅 비게 될 집안...
그런데 집이 비어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럼 난 지금 남편과 단 둘이 이 집에서 살고 있는 거야?'
현실에서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한 영애 씨...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긴 했지만,
싫은 상황만은 아니었다. 한 번쯤 '어땠을까?' 라며 상상해 본모습이 현실이 된 것이다.
'나도 애들 세 명 다 출가시키고, 우리 부부끼리 살았으면 어떤 모습이었을까?'라는 그런 상상이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진짜 현실인 것 마냥...
영애 씨는 이 사실이 분명 꿈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제 더는 깨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보다 어쩌면 이곳이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씩 머릿속에 스며들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벨소리가 울린다.
"띵동!"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