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 많았데이! 애들도 잘 키워
줘서 고맙고!"

오늘에서야 드디어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꿈에 그리던 남편에게서...

by 관돌

누군가의 뒤척이는 소리에 조용히 눈을 뜬 영애 씨. 옆을 살펴보니 남편은 없었다.

'아! 여긴 또 어디지? 어제 시댁... 아니 그 바닷가 숙소가 아닌 것 같은데...'

침대에서 내려온 영애 씨는 방 안에 불을 켜고 다시 한 변 주위를 둘러본다.

좀 전까지 분명 누군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었지만, 실제 주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스크린샷 2025-05-11 194946.png 텅 비어있는 집 안에 홀로 앉아 있는 영애 씨... '다들 어디 갔을까?'

남편도, 애들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나만 두고 다들 어디 간 거야?'

문 밖으로 나왔다. 거실 또한 텅 비어 있었다.

창 밖을 쳐다보니 어두컴컴하였다.

'어머! 내가 낮잠을 잔 건가? 아직 한밤중인 것 같은데...'

'그런데 남편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 녀석들은 왜 아무도 안 보이지? 방에서 자고 있는 건가?'

낯선 집이긴 했지만, 구조는 거의 비슷해서 금방 아이들 방이 어딘지 알 수 있었다.

먼저 첫째 방을 열었다. 불이 꺼져있을 뿐, 딸은 보이지 않았다.

곧이어 옆 방으로 이동해 둘째와 셋째가 있을 법한 방의 문을 열어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니 도대체 어디 간 거야? 말이라도 하고 나가던가...'

짜증과 걱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전화기를 찾으러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침대 옆에 놓여있는 전화기를 들고 먼저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기가 꺼져 있어 음성사서함으로....'

남편의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딸에게 전화를 하려던 순간 휴대폰의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다.

'뭐야! 지금 도대체 몇 시지?'


저녁 6시 30분이었다.

'이제 6시 30분이라고?'

'그런데 밖은 왜 이리 어두운 거지? 하긴... 이미 저녁 시간대니 당연히 어두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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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너무 피곤했나? 안 자던 낮잠까지 자는 걸 보니..'

'참! 애들한테 전화해 봐야겠네. 학교 마칠 시간인가?'

아이들이 궁금했지만, 솔직히 알 수 없었다.

지금 여기 이곳에서 아이들이 몇 살인지,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다시 첫째 딸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사진과 책들을 살펴보았다.

딸은 이미 대학을 졸업한 시기인 듯했다. 학사모를 쓰고 찍은 사진의 액자가 책상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학사모를 찍은 사진에는 나와 딸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남편이었다.

애 아빠가 나와 딸 옆에 함께 있는 모습이 아닌가?

'뭐야? 저 사람이 어떻게 옆에 같이 서 있는 거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다.

남편은 첫째가 대학교... 아니 중학생 때 이미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고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딸의 대학 졸업사진에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아... 이거 또 꿈이지. 그런데...'


영애 씨도 꿈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꿈이라는 걸 직감했다.

'이 전에는 분명 과거에도 있었던... 아니 있을법한 일들이 꿈에 나왔었는데... 남편이랑 아이들이 같이 놀던

일이나... 엄마를 만났던 일...'

그렇다. 이제까지 영애 씨가 꿈꿔 온 순간들은 미래보다는 과거 중심의 꿈이었다.

영애 씨가 살아오면서 아쉬웠거나 후회된 순간들이 주로 꿈에 나타났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실제 영애 씨가 겪어 보지도 못한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건 다 겪어 본 일이지만,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네 명의 공간에 마음속으로만 같이 지내왔었던 남편이 떡 하니 현실(?)에 나타났다는 점이다.

'정말 꿈을 꾸고 있는 거 맞지? 이거 현실은 분명 아니겠지?'

'이 사람이 아직도 우리 옆에 있는 게 맞다고? 전화기가 살아 있는 걸 보면 아직 있다는 건데...'

'그럼 아직 우리 가족이 함께 있다는 거잖아...'

어리둥절했지만, 심장이 쿵쾅쿵쾅 심하게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어떡하지?'

'이 양반 어떻게 변했지? 나 못 알아보는 거 아닌가?'

남편이 떠난 지 벌써 십 년도 훨씬 지났다.

영애 씨는 자신만 늙은 건 아닌지 괜히 심란해졌다.

'어떻게 변했을까?'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던 중 벨소리가 울렸다.


"띵동~ 띵동~"

'응? 누구지? 애들인가?'

허겁지겁 달려 나갔다.

"네! 나가요! 누구세요?"

아무런 대답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구세요?"


"띵동~"

대답 대신 초인종만 다시 울렸다. 철문에 귀를 살짝 기울여 보았다.

'누구지? 왜 대답을 안 하는 거야?'

그때, 갑자기 문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문 열어주세요!"

관돌이 목소리였다.

"휴~ 깜짝이야!"

순간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짜증이 확 밀려왔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며 잔소리를 하려던 그 순간...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영애 씨~ 생일 축하합니다~!"


난데없이 생일 축하 노래가 울려 퍼졌고, 그 중간에는 남편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케이크를 들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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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다 뭐예요?"

"오예! 아빠! 계획대로 된 거 맞죠? 정말 성공했네요!"

"어머니 우시는 거 보니깐 완전 감동받으신 거 같은데..."

둘째와 막내가 영애 씨를 보고 놀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영애 씨는 생각지도 못한 가족들의 생일파티에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곧장 감격스러움에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아니... 이게 다 뭔데? 사람 민망하게 미리 말이라도 좀 해주지..."


"아빠가 이번 어머니 생일은 깜짝 파티해드리고 싶다고... 며칠 전부터 계속 준비하시던데..."

"우린 집에 오기 전부터 어떻게 선물드려야 되나 준비도 하고, 아빠 퇴근 다 시간 맞춰 들어오려고 밖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지!"

"어머니! 깜짝 생일파티 성공한 거 맞제?"


그리고 남편이 조용히 다가와 어깨를 어루만져주었다.

"여보... 그동안 고생 많았어. 애들도 이렇게 잘 키워주고... 많이 힘들었제?"

"혼자서 이렇게 잘 살아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영애야! 진짜 고맙다"

남편도 눈물을 글썽거리며 영애 씨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영애 씨는 이상함을 느꼈다.

'혼자서 이렇게 잘 살아줬다고? 설마... 이 사람은 지금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건가?'

'아니겠지? 그냥 나 혼자 착각이겠지?'

어쩌면 영애 씨가 남편의 살아생전 가장 듣고 싶었던 그 말 한마디를 바로 눈앞에서 들었기 때문에...

더 혼란이 왔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말 백번 천 번... 아니 어쩌면 그 이상 꼭 한 번쯤은 들어보고 싶은 그 말이었다.

"혼자서 애들을 잘 키웠다. 그리고 고맙다..."


충분히 족했다. 다른 누군가보다 남편에게 들은 이 한마디가 영애 씨에게는 가장 큰 보상이라 생각되었다.

혼자 자식들을 잘못 키웠으면 어쩌나... 나중에 남편에게 원망 들으면 어쩌나...

그래서 더 악착같이 자식들을 키웠는데...


다행이었다. 아니 이제 다 내려놓을 수 있는 심정이었다.

'꿈속에서라도 이렇게나마 듣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있네.'

'여보! 진짜 내 잘 살아온 거 맞제? 애들도 저만하면 잘 키운 거 맞제'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만나게 되면 그때는 내 해달라는 거 다 해줘야 된데이!"

그렇게 긴 하루를 마친 영애 씨...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른 채 다시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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