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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돌 Mar 04. 2024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잠들면 다시는 엄마 못 볼 것 같단 말이에요!

오랜만에(?) 엄마 옆에서 저녁준비를 같이 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띠며 콧노래까지

흘러나왔다. 물론, 엄마 입장에서는 이상하게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만날 맏이라는 이유로 식사 준비는 항상 엄마와 내 몫이었으니깐.

그런데 오늘따라 '뭘 잘못 먹은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니 말이다.

'그래. 이건 분명 꿈일 거야! 그래도 이런 꿈은 만날 꿨으면 좋겠네!'


정성껏 준비한 밥상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부엌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아궁이 위에는 단단하다 못해 총으로 쏴도 깨지지 않을 쇠로 만든

가마솥이 놓여있고, 주변에는 놋그릇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유리잔이 하나도 없네? ㅋㅋㅋ 하긴... 지금 이 시기에 유리잔이 있으면 말이 안 되지...'

방 안에는 내 동생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들이 엄마와 언니가 준비하는데 나와보지도

않고 방안에만 콕 박혀 있는 게 좀 얄밉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 오늘은 참는다! 내일부터는 군기를 좀 잡아야겠는걸?ㅎㅎㅎ'

슬슬 배가 고파왔다. 평소 같았으면 저녁 준비를 할 때면 항상 음식 냄새에 취해 막상 밥을 먹으려고 할 때면

이미 배가 부른 느낌이 들어 먹는 둥 마는 둥 했었지만... 지금은 너무 배가 고팠다.

저녁 상은 두 개로 나누어 준비되었다. 아버지와 막내 남동생이 먹는 밥상.

그리고 여자들이 먹는 밥상...

'에휴~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댄데... 아직도 이렇게 남자랑 여자랑 나눠서 먹다니...'

'준비는 엄마랑 나랑 다 했는데, 왜 크고 이쁘게 만든 반찬은 다 아버지 밥상으로 올려져 있는 건지...'

순간 화가 났다. 그래도 뭐라고 말은 할 수 없었다.

'음... 이것도 내일 다시 한번 얘기를 해봐야겠다. 이제 좀 바뀔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바꿔야지 아님 아예 바뀔 기미가 안 보이는 것 같네.'

마치 '인권운동가'가 된 기분이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운동가?

거의 50년 전의 세계로 돌아왔으니 당연한 모습이긴 했지만, 2024년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모습들이 너무나 많았다. 

'과연 바꿀 수 있을까?' 

그냥 다른 것 보다 엄마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져 이런 생각들이 더 많이 들었던 것 같았다.

마치 지금의... 아니 꿈을 꾸기 전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어쨌든 오늘은 괜히 분란을 만들 필요가 없는 날이었다. 이렇게 가족들이 옹기종기 한 자리에 모여 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얼마만인가?

'영애야! 제발 오늘 같은 좋은 분위기 깨지 말자!'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런데 아무도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엄마 역시도...

주위를 둘러보니, 아버지가 아직 자리에 방에 들어오시지 않은 것이었다.

'어! 그러고 보니 아직 아버지 얼굴은 못 봤네... 어디 가셨지?'

"태준아! 아버지 목소리 들리시던데 어디 가셨노?" 막내 동생에게 물었다.

"아버지 좀 전에 들어오셔서 씻고 계시던데... 원래 이 시간에 오시잖아. 오늘도 약주 한 잔 하신 것 같더라."

그리고 잠시 후...

"아이고! 오늘 뭐 푸짐하네! 자! 다들 밥 묵자!"

순간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참았다.

나도 모르게 예전 개그콘서트에서 나온 대화가 떠오른 순간이었다.

'밥 묵자!"ㅋㅋㅋ 투박하고 친근하게 들려왔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 역시도 지금... 아니 꿈 밖에서의 삶에서 남편을 제외한 장수들과 같이 밥 먹을 땐 이런 말을 자주 하고 있었다.

"자 앉아라! 밥 묵자!" ㅋㅋㅋ 이게 아마 아버지의 말투가 나도 모르게 배어 있었던 것 같다.


"오늘 우리 태준이는 뭐 하고 지냈노? 영애는? 영자는?"

우리는 1남 5녀였다. 아버지는 식사를 하시면서 자식들의 하루 일과가 궁금하셨던지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하루의 일상에 대해 묻곤 하셨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 동생들의 대답은 비슷했다.

"그냥... 학교 갔다가 집에 있었어요."

아버지는 좀 더 상세하고 긴 대화를 듣고 싶어 했던 것 같았으나, 동생들의 대답은 짧게 끝나버렸다.

"아버지! 오늘 일하시느라 많이 힘드셨죠? 전 오늘 학교 마치고 큰아버지랑 천자문 공부도 하고, 맛있는 것도

주셔서 순애랑 같이 먹고 왔어요. 그리고 아버지 오시기 전에 엄마랑 저녁 준비도 하면서 시간 보냈어요!"


솔직히 평소의 나와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의 기분을 재빨리 캐치하여 오늘 겪었던 일상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말씀을 드렸다.

"아이고! 우리 영애가 오늘 고생을 많이 했네! 니가 장녀니깐 동생들 잘 챙기고!"

"이제 우리 영애도 다음 달이면 학교 마치제? 그럼 집안일 더 배우고 해야겠네!"

'잉? 나 벌써 학교 졸업할 때 됐는 거야?'

'그런데... 국민학교 졸업했으면 중학교 가야 되는데 갑자기 웬 집안일을 더 도우려시는 거지?'


"아버지... 저 졸업하면 또 학교 가야 되는데... 마치고 엄마 일 많이 도와드릴게요!"

"뭐라고! 니 또 학교 가나? 여자가 무슨 학교를 그렇게 많이 다닐라고 그라노?"

"집에서 일이나 더 배우고 시집가면 되지! 그래야 동생들도 니 보고 더 배우지!

  학교를 뭘 더 다니려고 그러노! 그냥 이번에 마치면 집에서 엄마 일이나 더 도와주고 해라!"

"아버지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노! 가시나가 집안일 잘 배우는 게 최고지 뭘 자꾸..."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계속 말을 했다간 밥상 분위기를 망칠 것만 같았다.

"네..."

그 순간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그냥 아무 소리 하지 말고 밥 먹어라...' 이런 말을 눈빛으로 하시는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느꼈다.

그래도 엄마는 아버지처럼 막무가내로 '어디 여자가!'라는 식의 눈빛은 아니신 듯했다.

나를 안쓰럽게 보고 계시는 듯했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인지라 가부장적인 현재 이 꿈속의 세상에서는 엄마도 아무런 발언권을 가진 것 같지는

않아 보이셨다.


'아... 이때부터였구나! 내가 아버지를 종종 원망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그랬다. 난 학업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지금도 늦게 시작은 했지만,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 당시 우리 집안의 형편이 나쁜 것도 아니었는데, 아버지는 딸이라는 이유로 학업에 크게 신경을 쓰신 편은

아니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때, 내가 바락바락 우기는 바람에 중학교까지는 마칠 수 있었다.

비록 야간 중학교였지만....

고등학교는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 두부공장 운영이 힘들어져 가세가 기울어진

부분도 있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아버지께서 원치 않으셨기에...

그때 조금만 지원을 해주셨더라면 아마 지금...

2024년을 살고 있는 지금 내 모습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운 생각이 꽤 자주 든다.

어쨌든 현실에서는 검정고시를 마치고, 대학교를 다니고 있을 정도로 그때 못했던 학구열이 남아있던 탓인지

계속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오랜만에 뵈어서 좋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데 하필 이 타이밍으로 돌아왔을까?' 하는 생각도 순간 들기도 했다.

'어쨌든 이건 분명히 꿈일 테니깐... 언제 깰지 모르는 꿈이니깐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자!'라고 다시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렇게 화기애매(?)한 저녁 시간이 끝나고 엄마와 난 평소 일상처럼 설거지로 마무리를 했다.

'이건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네. 어휴~'

'엄마는 어떻게 이렇게 군말 없이 평생을 해오셨는지...'

엄마의 지금 표정은 어떨까라는 궁금한 생각이 들어 살짝 쳐다봤는데...

힘든 표정이셨지만, 내색은 하시지 않았다.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신 듯했다.

한창 설거지를 하던 중, 엄마가 갑자기...

"영애야! 아까 많이 속상했제? 학교 그렇게 가고 싶나?"

순간 뜨끔했다.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는데... 내 속을 훤히 다 꿰고 계셨다.

"응? 아니... 그래도 다른 애들도 학교 가고, 나도 계속 다니고 싶긴 하니깐..."

"그래. 엄마는 니가 학교 계속 다녀서 많이 배우고 훌륭한 사람 됐으면 좋겠는데... 니네 아버지가 저러시니..."

기뻤다. 그냥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 순간에는 다 필요 없었다.

내 마음을 콕 집어 알아주시는 엄마가 옆에 계신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야가 와 이러노! 울기는 왜 우노! 빨리 못 그치나?"

"그냥 좋아서 그러지... 아무 일도 아니다! 엄마가 그렇게 말해주니깐 고마워서 그러지..."

"진짜 오늘 싱겁네! 빨리 씻고 이제 드가서 자라!"


그러고 보니 이제 자야 될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은 정말 잠들기 싫었다. 아니 똑바로 말을 하자면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이 꿈속에 있는 시간이니깐...

"빨리 니 방 가서 동생들 챙겨서 자라!"

"오늘은 엄마하고 자면 안 되나?"

"야가 뭔 소리 하노! 빨리 가라!"


솔직하게 얘기를 하고 싶었다. 

'엄마! 지금 이거 내가 꿈꾸고 있는 거예요! 꿈에서 이렇게 만난 건데 지금 자면 깰 것 같아서 자기 싫어요!'

'그래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엄마 옆에서 자고 싶다는 거예요!'

라고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방으로 돌아오니 동생들은 이미 꿈나라에 가 있는 듯, 이불을 발로 걷어차는 등 제각각의 모습이었다.

이불을 다시 챙겨서 덮어주고 나도 자리에 누웠다. 

'아... 지금 자면 이대로 끝이겠지?'

'잠드는 순간 꿈에서 깨는 거겠지? 엄마랑 제대로 얘기도 못 나눠봤는데...'

'엄마한테...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엄마! 나도 살아보니깐... 

지금 내한테도 엄마가 너무 필요하고 옆에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지금 딸한테 엄마 역할은 처음이라...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엄마가 필요한데...'

라는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은데...


이제 꿈에서 깨고 나면 다시 볼 수 없을 텐데...

'잠들면 안 된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백 한.. 마.. 리...'

이렇게 영애는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아니 현실의 꿈에서 깨지 않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보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눈을 떴다.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어! 여긴...'


에필로그...

과연 영애 씨가 눈을 뜬 장소는?

여전히 엄마와 살던 추억이 깃든 고향집일까?

아니면 4명의 장수들을 책임져야 되는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가 이루어졌을까?

그렇다면 이건 진짜 영애 씨가 생각했던 것처럼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다음 회차에서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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