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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돌 Mar 17. 2024

영애씨... 이건 꿈이 아닙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시간여행 같은 꿈이라 생각했는데...

'딩동! 딩동!' 초인종 소리에 영애 씨는 눈을 떴다.

누군가 문을 열어 준 것 같았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니 둘째 아들이었다.

'이제야 돌아왔구나. 참 꿈도 별 희한한 걸 다꾸네... 휴~'

'참! 밥 하다가 잠들었는데... 나가서 준비해야겠네!'


방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또 한 번 멈칫했다.

꿈속에서 봤던 그 여자 꼬맹이들이 문 앞에 여전히 서있었고, 또 한 번 놀란 건 둘째 아들 옆의 사람들

때문이었다. 아들 옆에는 처음 보는 여자 한 명과 남자아이 두 명이 영애 씨를 보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하아... 아까 꿈에서 딸이 말한 그 상황인 건가?'

'둘째도 가정이 생겼다더니... 그럼 저 여자는 내 며느리인 거고, 남자아이 둘은 내 손주 녀석들이란 말인가?'


"어머니! 잘 지냈어요? 저번에 오려고 했는데 일이 좀 바빠서..."

"할머니! 안녕하세요! 보고 싶었어요!" 그러더니 달려와서 영애 씨 품에 안겼다.

그리고 며느리라는 여자도 인사를 했다.

"어머님! 잘 계셨어요? 주무시고 계셨나 보네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어머님이라니... 난 아직도 우리 애들 결혼식장 혼주석에 앉아본 기억도 없는데...'

'왜 벌써 사위나 며느리를 본거지? 손주, 손녀는 또 뭐고... 도대체 뭐지?'

영애 씨는 또 한 번 혼란스러움에 휩싸였다. 어쨌든 상황파악은 어느 정도 된 것 같기에...

"어... 그래 왔나? 애들 많이 컸네?"

요즘 애들은 눈대중으로 나이를 맞출 수가 없었다. 워낙 잘 먹은 탓에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아서...

영애 씨는 혹시나 아들이 기분 나빠하지 않기 위해 모른 척하며...

"그래. 요즘 애들은 공부 잘하고 있나? 지금 몇 학년이라고 했노? 들었는데 금세 잊어버리네."

며느리라는 여자가 친절하게 알려준다.

"네. 큰 애는 이제 중학교 2학년이고, 작은 애는 6학년 올라가요."

"휴~ 공부한다고 힘들겠네. 많이 키웠다."

눈치껏 손주들의 이름과 나이를 알 수 있었다.

'벌써 중학생과 초등학생이라고? 뭔 놈의 꿈이라도 이렇게 시간을 훅 건너뛰고 꾸는 건지...'


영애 씨도 이제는 부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냥 꿈이라 생각하고 그 상황에 충실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래. 어차피 꺠어나면 끝날 건데... 계속 아니라고 부정하면 뭐하겠노?'

'여기에 맞춰서 지내다 보면 또 금방 끝나겠지...'


"밥 먹었나? 너네들 온다고 했으면 내가 미리 좀 준비해 놓을 건데..."

그때, 옆에 있던 딸이

"어머니! 준비 다 해놨다. 어머니 피곤하신 것 같아서 내가 미리 어른들 먹을 거랑 애들 거 따로 준비했어요."

"그냥 몸만 오셔서 드시면 됩니다!"

'어이구! 참나... 다 컸네? 진짜 결혼하니깐 부엌일도 하고 참나...'

딸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영애 씨는 기특했던지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막내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는 점.

"관돌이는 오늘 안 오나?"

"아! 이번주는 좀 바쁘다고 못 온다고 연락 왔었는데... 어머니한테도 했다고 하던데?"

"아... 그래 연락받긴 했는데, 자고 일어났더니만 정신이 좀 없네. 같이 왔으면 더 좋았을 건데..."

"그러게요. 어머님. 도련님도 같이 왔으면 애들도 좋아했을 건데... 아쉽네요."

그렇게 딸이 준비한 저녁 덕분에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앉아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꿈이라도 좋긴 하네. 잘 자란 모습들을 보니깐 다행이네.'


그리고 또 하나 다행인 건... 아들이 하고 있는 일을 알았을 때다.

둘째는 어릴 때부터 농구를 부쩍 좋아하고,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다.

남편은 아들이 군인이 되기를 원했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와서 장교가 되는 것을 희망했지만, 정작 아들은

군인보다 스포츠 관련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무슨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영애 씨가 물어봤다.

"그래. 니는 요즘 하는 일은 어떻노? 안 힘드나?"

"뭐.. 그냥 재밌게 하고 있지. 다음 달에는 미국에 출장 가야 될 것 같아요."

"NBA 농구 취재가 있어서... 내가 르브론 제임스 좋아하잖아요! 그 게임 취재 가야 되는데 운 좋게 뽑혀가지고

다음 달에 출장 갔다 와야 된다!"

'아! 이 녀석이 진짜 농구, 농구 그렇게 외치더니만 결국엔 스포츠 기자가 됐구나!'

영애 씨는 흐뭇했다. 지 아빠가 희망하던 군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본인이 원하는 꿈을 이룬걸 보니...

일하는 걸 재밌어하는 모습을 보니 안도감이 쉬어졌다. 비록 꿈이긴 하지만...


순간 영애 씨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게 꿈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다. 현실이어도 괜찮겠다.'

'애들도 이 만큼 잘 돼있고,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지들 다 원하는 일 하고 사는 거 보면 이것도 괜찮네.'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엄마의 바람이 크게 작용하는 순간이었다.

'다시 돌아가면 또 취업준비하면서 힘들어하는걸 또 옆에서 지켜보려면.... 휴~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잠시 현실과 꿈이 뒤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순간 들기도 했다.

'그래... 이게 예지몽일 수도 있겠지? 애들 잘 자라고 있는 걸 미리 보고 온 거라 생각해도 되겠지.'


며느리라는 여자 아이도 친절하고 착해 보였다.

말수는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시어머니인 나를 잘 챙겨주었다.

먼저 보았던 사위 또한, 어색한 듯 하지만 노력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 또 하나 있었다.

자식이 세 명이었기에... 첫째, 둘째는 이미 결혼을 했기에 내 기억에는 없는 결혼식이었다.

그래서 영애 씨 입장에서는 아직 자녀들의 결혼식을 제대로 본 적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좀 억울한 면도 있었다. 이렇게 잘 키운 아이들의 결혼식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점이...

다행히 막내는 미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관돌이는 아직 결혼 안 했으니깐... 나중에 꿈에라도 관돌이 결혼하는 건 볼 수 있겠네!'

'지 엄마 결혼식 볼 수 있게 하는 건 그래도 막내뿐이네.'

웃을 일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영애 씨는 그나마 자기도 모르게(?) 결혼한 첫째, 둘째한테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막내의 결혼식은 기필코 보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각자 방으로 들어가서 잘 준비를 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자식들의 인사를 받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딸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어머니! 내일 병원 가는 날인 거 알제? 내랑 같이 가제이! 10시쯤에 갈 거니깐 그렇게 알고 계세요."

'병원? 왜? 내가 어디 아픈가?'

"어... 그런데 무슨 병원이었지?'

"고혈압약 타는 날이잖아. 내일 가서 혈압도 재고, 약도 한 달치 받아와야지. 어머니 지금 관리 잘하고 있으니

별 문제는 없을 거예요. 그냥 바람도 쐬면서 같이 가는 거지."

"그래. 그럼 니도 좀 쉬래이."

'다행이다. 무슨 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다. 이 나이에 고혈압은 뭐 당연히 따라붙는 거겠지.'

영애 씨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슨 큰 병이라도 걸린 줄 알고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성인병 수준이었다.

'나이 들어서 제일 걱정했던 게 어디 아프면 어쩌나 그거였는데... 애들한테 짐은 되지 말아야지...'

'내 그래도 이때까지 건강 잘 챙기고, 잘 살아왔네!' 뿌듯함마저 드는 순간이었다.

오늘 꿈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괜찮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만족감마저 들기도 했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오늘은 왠지 꿈에 대한 부담감은 느껴지질 않았다. 편하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옆에서 누군가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살짝 눈을 떠보니 딸이었다.

20대 현실에서의 딸이 아닌 어제 본 40대 모습의 딸. 결혼한 애 둘을 키우고 있는 그 딸이었다.

'맞다! 병원 가기로 했었지?'

"몇 시고?"

"아! 일어났어요? 아직 10시 안 됐는데... 아침 간단하게 먹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병원 갔다가 아침 먹는 게 나은가? 어머니 편한 대로 하세요."

"그래... 아침은 별로 생각이 없네. 병원 갔다가 간단하게 먹는 걸로 하지머."

"알겠어요. 그럼 준비해래이."


옷을 차려있고, 딸이 운전을 해서 병원으로 향했다.

"저번에도 갔을 때, 혈압 계속 나아지고 했다니깐... 어머니 약도 잘 챙기고, 관리 잘하고 있으니깐

이번에도 큰 문제없을 거예요."

'저번에? 처음 가는 병원이 아니구나... 다행이다 그래도. 나아지고 있다니...'

병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왠지 이곳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여태까지 꿈에서 본 것 중에 제일 익숙한 느낌이네? 진짜 여길 몇 번 와보긴 했나 보네.'

딸이 대신 접수를 하고 대기표를 뽑은 뒤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5번 영애님"

대기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얼마 후 바로 이름이 불렸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지긋한 의사 선생님이 친절한 미소로 반겨 주었다.

"잘 지내셨어요? 그동안 불편한 건 없으셨고요?"

"네. 뭐 그럭저럭 지냈어요."

의사 선생님은 영애 씨와 자주 만난 사이인 듯 살갑게 진료를 해주었다.

"집에서 혈압 관리 잘하시고 있나 보네요? 전에 보다 혈압도 많이 낮아지고 정상 수치인 것 같네요."

"네. 애들도 잘 챙겨주고, 저도 신경 쓰고 있어서..."

"앞으로도 계속 신경 쓰셔야 됩니다. 혈압이라는 게 순간적으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라서..."

"스트레스 관리도 중요하고, 음식 관리도 잘하셔야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딸아이도 어머니의 혈압이 호전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뻐했다.

그렇게 진료를 마치고 나가려는 순간, 의사 선생님이...

"아! 영애님! 아니... 따님은 먼저 나가셔도 될 것 같아요. 별일은 아니고 어머니한테 말씀드릴 게 있어서..."

딸도 놀라고 영애 씨도 당황했다.

"네? 무슨 일로..."

"아! 다른 건 아니고 어머니께 당부드릴 말씀이 있어서... 어디가 안 좋아지고 하는 문제는 전혀 아니니 안심

하시고 따님은 먼저 나가셔도 될 것 같아요."

병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안심을 하며 딸은 먼저 진료실을 나가주었다.

"선생님. 무슨 일이시죠?"

"음... 다른 게 아니고... 혹시 요 근래 다른 일은 없으셨나요?"

"네? 다른 일이라면..."

"잠은 잘 주무시고 계세요?"

"잠이요? 그냥 평소처럼 자는 것 같기는 한데... 왜 제가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니요. 전에 잠을 잘 못 주무신다고 하셔서... 혹시 꿈은 자주 꾸는 편인가요?"

'꿈'

순간 당황스러웠다.

'이 선생님 뭔가 알고 계신 건가?'

"꿈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음... 특별히 어떤 꿈이라고 제가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일종의 시간여행 같은 꿈이라고 할까?"

"네? 시간여행요?"

"왜 그렇게 놀라세요?"

"혹시 선생님... 뭔가 알고 계세요? 제가 혼자 답답해서 아무 얘기도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도 꿈이 아닌가요?"

영애 씨는 의사 선생님의 답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시선이 온통 의사 선생님의 입에 집중되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의사 선생님은 입을 떼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영애님. 지금 이 순간은 꿈이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네? 현실이라구요? 꿈이 아니라구요?"

영애 씨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알고 있지? 이 사람 정체가 뭐지? 의사가 맞나? 나한테 뭘 속이고 있는 건가?'


"당신 누구세요!"

"어떻게 이걸 알고 있는 거죠?"

갑자기 쏘아붙이는 영애 씨의 모습에 의사 선생님 또한 적잖이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저 혹시 그때 저랑 했었던 얘기 기억이 잘 나지 않으신가요?"

"그때 제가 염려했었던 것도 혹시나 이러한 것들 때문이었는데..."

"네? 염려라니 무슨 말씀이시죠?"


그럼 다음 편에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에필로그

꿈과 현실이 뒤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을 잠시 가지기도 했었던 영애 씨.

그리고 처음 보지만, 왠지 익숙한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

지금까지 모두 꿈이라 여겨왔었던 일들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마저 현실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마치 영애 씨의 현재 상황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의사 선생님.

과연 이 의사 선생님의 정체는 뭘까?

그리고 왜 영애 씨는 현실과 꿈을 혼동하게 되었을까?

의사 선생님은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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